당연하지만, 명확한 사실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삼성 부동의 에이스는 리카르도 라틀리프다. 이미 입증된 선수. 여기에 귀화를 하면서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리그 최고의 더블더블 머신이다. 설명이 필요없다.
삼성은 라틀리프 위주로 돌아간다. 시즌 전부터 그렇게 준비했고, 계속 그렇게 운영됐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라틀리프가 좀 이상하다.
▶라틀리프의 두 얼굴
한마디로 최근 경기에서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최대 강점은 뛰어난 몸싸움 능력. 그리고 끊임없이 달리는 농구를 한다는 점이다. 그가 블록슛이 부족하고, 공격 기술이 다양하지 않지만, 두 가지 장점은 그의 약점을 충분히 덮는다.
때문에 최근 몇 년간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경기력은 '롤러 코스터'를 타고 있다. 그는 지난 1월16일 42일 만에 부상에서 복귀했다. 그리고 18일 KGC전에서 데이비드 사이먼을 골밑에서 압도하며, 25득점, 16리바운드로 팀 승리를 견인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라틀리프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경기였다.
하지만, 2월9일 KCC전부터 이상해졌다. 특유의 몸싸움이 나오지 않는다. 치열한 몸싸움 대신 쉬운 미드 레인지 점퍼를 공격옵션을 많이 사용한다.
우선, 최근 5경기(2월18일 SK전 제외) 슛 분포도를 살펴보자. 그리고 올 시즌 기록과 비교해 보자.
올 시즌 슛 분포도를 보면, 라틀리프의 공격 1옵션은 골밑(로 포스트)다. 강력한 몸싸움과 리바운드에 의한 풋백 득점이 주된 공격 루트. 그의 강점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야투율이 무려 61.1%에 달한다. 반면 최근 4경기 분포도를 보면, 골밑보다 미드 레인지 점퍼의 비율이 올라간 것을 알 수 있다. 야투율은 59%로 살짝 떨어졌다.
슛 거리가 멀어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 2점슛 야투율이 떨어졌다고, 라틀리프의 플레이를 비판할 수 없다. 라틀리프의 강점 중 하나가 정확한 미드 레인지 점퍼 이기 때문에 그의 선택을 겉으로만 봐서는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문제는 실제 경기 내용이다. 9일 KCC전에서 찰스 로드에 완전히 밀렸다. 이후 적극적 속공 가담이나, 몸싸움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6강 싸움의 마지막 기회였던, 18일 KGC전에서도 사이먼에게 밀렸다. 골밑 몸싸움은 거의 볼 수 없었다. 공이 투입되면, 곧바로 미드 레인지 점퍼를 던졌다. 골밑에서 '전투'를 완전히 포기한 모습. 180도 달랐다. 대표적 예로 천기범이 골밑을 돌파하면서 슛이 불발됐다. 하지만 라틀리프는 상대 골밑으로 가지 않고, 일찌감치 백코트를 해 버리는 모습이 있었다. 이날, 라틀리프는 31득점, 1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데이터는 너무 좋았지만, 실제 경기력은 낙제점이었다. 오히려 끝까지 뛰던 커밍스와 천기점 이동엽 등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라틀리프가 소극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삼성에게는 재앙이다. 대체 불가능한 카드. 여기에 삼성은 국내 토종 빅맨도 없다. 때문에, 삼성은 라틀리프의 골밑 전투력을 '상수'로 놓고 시즌을 운영했다. 하지만, 6강 최대 고비에서 라틀리프는 엄청난 '롤러 코스터'를 탔다. 삼성의 6강 실패는 어찌보면 당연했다.
▶라틀리프의 민감함
의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왜 라틀리프는 소극적으로 급변했을까.
9일 KCC전을 보자. 찰스 로드와 경기 초반 기 싸움을 벌이던 라틀리프는 휘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기서부터 라틀리프가 '틀어졌다'고 몇몇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그동안 가졌던 판정 불만이 터져 버리면서, 롤러 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온전히 설명이 안된다. 휘슬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대부분 외국인 선수들도 슛을 쏜 뒤 불만을 제기하지만, 다음 게임에서 경기력이 급변하진 않는다.
여기에는 라틀리프 특유의 '민감함'이 긴밀히 작용한다.
라틀리프는 2012년 KBL 리그에 들어왔다. 당시 라틀리프를 지도했던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라틀리프는 성실하다. 미드 레인지 점퍼를 익혀올 정도다. 하지만 '섬세한 성격'은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얼마나 '섬세'할까. 대표적 예를 들려줬다. 당시 팀 훈련을 하던 라틀리프가 갑자기 별 다른 이유없이 말이 없어지면서, 훈련에 집중을 못했다. 팀 분위기가 다운될 정도였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해가 되지 않던 유 감독은 라틀리프의 어머니에게 얘기를 듣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유 감독은 "라틀리프 어머니가 한국에 오신 적이 있다. 나에게 오셔서 '어릴 적부터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 사흘 정도 그냥 놔두면 스스로 풀린다'고 했다"고 밝혔다.
실제 삼성에서도 라틀리프의 이런 성격은 '문제'가 됐다. 심하진 않았지만, 자신에게 패스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면, 경기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침체되곤 했다. 이 사실을 모비스 뿐만 아니라 삼성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모두가 알고 있다.
결국, 라틀리프의 최근 '롤러코스터'는 자신의 민감함과 판정의 은근한 불만이 결합되면서 '시발점'을 만들었고, 장기적으로 이어졌다.
라틀리프는 18일 SK전에서 오랜만에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33득점, 1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활발하게 움직였다. SK가 라틀리프를 막을 빅맨이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팀은 90대100으로 패했다. 그동안 부진을 만회하기는 이미 늦어 버렸다.
그동안 라틀리프는 고군분투했다. 삼성의 가드진이 라틀리프에 입맛에 맞는 패스를 완벽히 해주지 못한 것도 맞다. 하지만, 라틀리프는 부동의 '에이스'다. 부족한 팀원을 독려하고, 팀 성적에 끝까지 책임지는 게 에이스가 해야 할 일이다. 대표팀에서도 이런 '롤러 코스터'는 위험하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