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은 우리에게 낯선 종목이다. 그런데 4년 전 소치동계올림픽에 이어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사람들에게 쏠쏠한 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서울에서 딸을 데리고 컬링 경기를 보러 왔다는 주부 강씨는 "컬링이 정적이고 섬세한 종목 같았다. 또 두뇌싸움이 계속 이어지고 계속 스톤이 왔다갔다 하니 얼음판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컬링은 13일 현재 메달을 따주지 못했지만 평창올림픽 초반 분위기를 잡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번에 처음 정식 종목이 된 믹스더블(혼성 2인조)의 두 젊은이 장혜지(21)-이기정(23)은 "비록 4강에 들지 못해 아쉽지만 우리가 국민들에게 컬링을 많이 알린 것 같아 만족한다"고 말했다. 오전 9시 이전에 시작된 믹스더블 경기(9일 한국-노르웨이전)의 TV 시청률이 6.6%(KBS1)나 나왔을 정도다. 믹스더블 예선전 평균 좌석 점유율은 90%에 달했다.
해외 컬링 전문가들은 한국의 컬링 대표팀 수준이 매우 빠르게 성장하는데 주목했다. 장혜지-이기정조는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상위권의 중국, OAR(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과 연장 접전 명승부를 펼쳤다. 스위스 믹스더블의 제니 페렛은 "한국이 비록 4강에 오르지 못했지만 정말 멋진 경기를 펼쳤다"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4일부터 예선전을 치르는 컬링 여자 4인조는 이번 대회 첫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잡고 있을 정도로 실력이 많이 올라왔다.
한국 컬링은 역사가 짧다. 세계컬링연맹 자료에 따르면 1983년 한국에서 컬링이 시작됐고, 1994년 대한컬링경기연맹이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올림픽에 첫 출전한 게 2014년 소치대회였다. 그때 여자 4인조의 경기를 보고 국민들이 컬링의 매력을 사실상 처음 접했다고 볼 수 있다.
컬링은 쉽게 표현하면 규격을 정한 빙판 위에서 돌(스톤)을 밀어서 그려진 표적(하우스)에 가장 근접한 쪽이 승리하는 겨울 스포츠다. 일명 '얼음 위의 체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컬링은 양궁, 당구 등 여러 스포츠의 면면을 섞어 놓은 느낌이 든다. 표적의 정중앙을 향해 스톤을 던지는 건 양궁을 닮았다. 또 상대 스톤을 자신의 스톤으로 때리는 건 당구와 비슷하기도 하다.
그런데 컬링을 보고 있으면 싸우는 두 팀의 보이지 않는 두뇌싸움이 치열하다. 하우스의 정중앙 버튼에 스톤을 위치시키기 위해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고수들은 바둑이나 장기 처럼 상대가 어떤 식으로 나올 지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스톤을 던진다.
그렇다고 구상한 대로 스톤이 나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머릿속 구상을 실천에 옮기는데 팀 플레이와 섬세한 손재주가 필요하다. 믹스더블은 남녀 1명씩 혼성으로 이뤄져 두 사람이 모든 역할을 다 한다고 보면 된다. 반면 4인조의 경우는 리드, 세컨드, 서드, 스킵으로 역할이 세분화된다. 따라서 한 팀으로 똘똘 뭉쳐야만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
최은기 컬링연맹 사무처장은 한국인들의 섬세한 손재주를 주목한다. 컬링은 얼음 위에서 스톤을 놓을 때 미세한 손의 감각이 중요하다. 그 세기와 방향에 따라 스톤의 최종 위치가 정해진다. 또 하나는 '스위핑(빗자루 질)'. 빗자루(브러시)를 빠르게 문질러 스톤의 지향 방향을 바꿀 수도 있고, 3~5m 더 나아가게 할 수도 있다.
결국 컬링 경기력의 수준차는 미세한 섬세함에서 드러나고 있다. 세계 최강국 캐나다는 16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컬링을 국민스포츠로 발전시켰다. 장반석 한국 믹스더블 대표팀 감독은 "캐나다 선수들의 정교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고 말했다. 캐나다 선수들은 45m 떨어진 곳에서 스톤과 스톤의 좁은 틈에 자신의 스톤을 자로잰듯 밀어 넣었다.
컬링은 후공하는 팀이 유리한 종목이다. 대개 선공하는 팀이 방어를 하고, 후공이 공격을 해서 점수를 가져가는게 일반적이다. 마지막에 스톤을 던지기 때문에 유리하다. 그런데 최강 캐나다의 경우는 선공일 때 상대가 쉽게 공격할 수 없도록 기가막힌 위치에 포석을 둬 상대 스톤의 길와 공간을 막았다. 후공을 잡은 팀 선수들의 머리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어 놓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컬링도 다른 스포츠 처럼 경험이 중요하다. 세계적인 컬링 선수들은 자신들의 생업을 갖고, 컬링을 스포츠로 즐긴다. 캐나다 믹스더블의 존 모리스는 소방관이고, 그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캐이틀린 로이스는 언어치료사이기도 하다. 30년째 컬링을 하고 있다는 란타마에키(핀란드)는 컨설턴트로 일한다.
컬링은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스포츠다. 대신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관중 소음에 대비해 모의 시뮬레이션 훈련까지 했다고 한다. 시끄러운 소음을 녹음해서 모의 평가전을 갖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컬링은 '반짝' 관심을 받고 있다고 보는게 맞다. 아직 대중화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현재 우리나라엔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컬링장은 단 4군데 뿐이다. 일반인이 컬링을 하고 싶어도 정식 규격 빙판에서 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컬링이 '보는 스포츠'로 우리 국민의 눈과 귀를 끌 수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분명히 재확인됐다. 강릉=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