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111.12m의 링크를 27바퀴를 도는 종목이다. 보통 체력이 떨어져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레이스 후반 실수가 자주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한국은 레이스 초반부터 변수에 사로잡혔다. 23바퀴를 남기고 이유빈이 갑자기 중심을 잃고 얼음 위에 넘어졌다.
망연자실한 상황. 팬들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쇼트트랙은 한 번 넘어지면 좀처럼 만회하기 힘든 종목인 걸 알고 있었기에 대부분이 한국의 탈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한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에이스' 최민정(20·성남시청)이 번개같이 달려가 빙판 위에 넘어져 손을 쓸 수 없이 미끄러지던 이유빈과 터치한 뒤 질주본능을 깨웠다.
이 때부터 믿기 힘든 대역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앞서가던 캐나다, 헝가리, 러시아와의 간극을 좁힌 최민정은 다시 해결사로 나섰다. 11바퀴를 남기고 헝가리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기록으로도 증명됐다. 13바퀴를 추격하는 동안 한국의 한 바퀴 랩타임은 8초대였다. 9초000이 한 차례 나왔지만 11바퀴를 8초대에 끊었다. 가장 빠른 랩타임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8초610. 보통 레이스 초반부터 폭발적인 파워와 스피드를 요구하는 500m에서나 나올 법한 랩타임이다.
또 남자선수들 못지 않았다. 남자 선수들도 신경 써서 타야 나오는 랩타임이기도 하다.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임효준도 8초740이 가장 빠른 랩타임이었다.
반면 한국이 8초대 랩타임을 기록하는 동안 헝가리는 네 차례나 9초대 랩타임을 기록했다.
심석희가 9바퀴를 남기고 2위에서 1위로 올라설 때도 8초대 랩타임을 찍었다. 인코스를 파고들어 순식간이 1위로 치고 올라갔다. 그리고 승부는 마무리됐다. 어쩔 수 없이 스피드를 최고로 올릴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스피드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승부는 한국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이어졌다.
그만큼 여자 선수들은 절실했다. 올림픽을 100일, 30일을 앞둔 시점에도, 결전을 앞두고도 여자 선수들은 계주 금메달을 바랐다. 당연히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해야 하지만 계주 금메달이 더 값진 이유는 함께 만들었다는 것 때문이다. 올림픽을 위해 함께 피땀 흘린 선수들은 마지막에 받을 수 있는 보상이 계주 금메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살려낸 여자 선수들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강릉=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