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최근 한국 드라마는 '다시 보기'에 빠져 있다. 신작 드라마들이 새롭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더 큰 자극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고,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다시 보기'를 보겠다는 시청자들이 줄을 이었다. 이 때문인지 '하얀거탑'의 승승장구와 '리턴 몰아보기'의 시청률 1위가 이해가 된다.
SBS는 지난 주 종영한 '의문의 일승'(이현주 극본, 신경수 연출)의 자리를 후속 드라마가 아닌, 수목드라마인 '리턴'(최경미 극본, 주동민 연출)의 '몰아보기'로 채웠다. 후속작인 '키스 먼저 할까요'(배유미 극본, 손정현 연출)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여파로 오는 20일로 첫 방송 편성이 확정됐고 동계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비어있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지금까지 방송됐던 '리턴'의 1회부터 12회를 2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줄여 방송한 것. '리턴'을 애청하는 시청자들에게는 빠른 속도감으로 '리턴'을 다시 즐길 수 있어 좋고 그동안 '리턴'을 보지 않은 시청자들에게는 중간 입문 전 드라마가 거쳐온 스토리를 훑을 수 있으니 좋은 결정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같은 결정이 옳았는지 5일과 6일 방송된 '리턴 몰아보기'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기존 방송되던 월화극인 KBS2 '라디오 로맨스'(전유리 극본, 문준하 황승기 연출)까지 제쳤다. 5일 방송된 1부와 2부는 각각 닐슨코리아 전국기준 6.6%와 7.2%를 기록했고 6일 방송된 3부와 4부도 각각 6.4%와 7.3% 시청률을 기록하며 양일 5.2%와 5.6%를 기록한 '라디오 로맨스'를 이겼다. 이미 방송된 분량을 모아놓은 '몰아보기'가 본방송을 이긴 셈이다.
이뿐만 아니었다. MBC가 지난달부터 다시 방영하고 있는 '다시 만나는 하얀거탑 UHD 리마스터드'의 시청률도 '라디오 로맨스'를 따라잡고 있다. 5일 방송된 13회와 14회는 3.7%와 4.7%를 기록했고 6일 방송된 16회와 15회는 4.2%와 4.9%를 기록하는 등 '라디오 로맨스'를 바짝 추격 중이다. 그만큼 지금 드라마 업계가 '다시 보기'에 눈이 더 쏠리고 있다는 증거다. 신작 드라마들이 힘을 못 쓰고 오히려 '잘 빠진' 수사극의 몰아보기 버전이 더 인기를 얻거나 그보다도 더 옛날 버전인 11년 전의 작품이 시청자들을 더 만족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드라마 제작자들과 현재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는 유쾌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공들여 찍은 작품들이 오히려 재방송에 해당하는 다시 보기에 밀리는 현실은 안타깝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만큼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들이 '신선하지 못하다'거나 '그 드라마가 그 드라마 같다'는 평을 받고 있다는 것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중 안정적으로 10% 시청률을 넘기는 드라마는 "선정적이다. 폭력적이다"라는 평을 듣고 있는 '리턴'이 유일할 정도이니 월화극의 참사 역시 단번에 이해가 된다.
사실상 방송사들이 재방영을 선택하는 것에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가 먼저 깔린다. '하얀거탑'은 파업 여파로 인한 장기간 결방을 대비한 결과물이었고 '리턴' 역시 동계올림픽에 따른 결방에 대비한 것이었다. 이 점에서 방송사들이 선택은 어찌 보면 '자존심 상하는' 일일테지만, 방송 후 상황을 보면 전혀 달랐다. 새 내용을 방송하는 드라마보다 오히려 시청률 면에서 더 낫다는 결과가 나왔으니 앞으로 방송사들이 피치못할 경우 선택할 선택지에 '재방영'이라는 세 글자가 더해질 것으로도 예상되고 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스포츠조선에 "지금은 '명작이니까'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것들이 많지만, 이후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이어진다면 시청자들은 또다른 피로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재방영 열풍이 계속된다면 방송사는 더더욱 드라마 제작에 정성을 쏟지 않게 되고 동시에 드라마 품질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한탄했다.
이 가운데 '리턴 몰아보기'와 '하얀거탑' 등의 짧은 승리가 앞으로의 '드라마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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