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아(터키)=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쉽지 않아요.."
30여분의 인터뷰 중 이 말만 여러번 나왔다. 적어도 6~7차례였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초보 감독이기 때문이었다. 자신감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만큼 현실을 직시했다. 이상한 꿈같은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냉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팀을 만들어나가겠다고 했다. 대전 시티즌 신임 감독 고종수를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지에서 만났다.
▶감독은 또 다른 세계
고 감독은 코치 생활만 7년을 했다. 수원 유스인 매탄고부터 시작해 수원 삼성에서 서정원 감독을 보좌했다. 한 팀에서 코치로 7년. 짧은 시간은 분명 아니다. 그 사이 감독의 꿈도 그렸다. 나름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도 많이 했다. 그러나 실제 감독의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어요. 왜 감독님들이 '힘들다. 힘들다'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진짜 쉽지 않아요. 코치하면서 여러가지를 머리 속으로 그렸는데, 실제로 되고 나니까 생각만큼 안되더라고요. 모든 것을 다 해야 하고요.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요. 전체적인 틀을 잡아야 하는데 정말 쉽지 않아요. 진짜로."
다행스럽게도 초보 고 감독에게 가장 힘이 되는 존재가 있다. 바로 김호 대전 대표다. 김 대표와는 수원 삼성과 대전에서 사제 지간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수원 스카우터 자격으로 브라질에 있었어요. 김 대표님이 연락이 왔죠. 대전을 맡아달라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서정원 감독님한테 전화를 드렸죠. 서 감독님은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전해봐라. 그래서 왔어요. 김 대표님 아니었으면 더 힘들었을 거에요. 대표님이 워낙 베테랑이니까요. 다른 분들과는 다르잖아요. 큰 의지가 됩니다."
▶쉽게 얻어터지고 와서 울지 말자
고 감독의 전훈 생활은 단조롭다. 훈련을 지도하고 경기를 한다. 그리고 매일 밤 코칭스태프들과 미팅을 한다. 통영에서 1차 전지훈련을 하며 체력을 끌어올렸다. 안탈리아에서는 연습경기를 통해 감각과 전술을 조율하고 있다.
고 감독의 말대로 '쉽지 않은' 작업들이다. 그래도 이 시간을 통해 조금씩이나마 대전의 틀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 감독은 '어떤 어떤 축구'를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원칙은 가지고 있었다.
"감히 처음 감독을 하는 사람이 어떤 축구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제 갓 시작했을 뿐인데요. 다만 하나는 선수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쉽게 얻어터지고 돌아와서 울지 말자'고요. 이길 때는 실력으로 압도하고 싶어요. 모든 감독들의 바람이겠죠. 그러나 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상대가 이기더라도 '아 정말 이 팀은 힘들게 이겼다'라고 생각하게끔 만들고 싶어요. 그걸 위해 지금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팀에 맞는, 그리고 상대할 팀에 맞는 퍼즐을 맞추는 것 같아요. 일단은 쉽지 않지만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시즌 후에는 선수가 빛날 것
시즌 시작 전 현재 대전의 스타는 고 감독이다. 미디어들 모두 고 감독과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사실 감독이, 아니 감독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팀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축구는 선수가 한다. 결국 좋은 팀은 선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동시에 감독도 스포트라이틀 받는다. 고 감독도 이런 팀을 꿈꾼다. 시즌 말에는 스포트라이트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선수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 우리 팀에는 배고픈 선수들이 많아요. 그렇기에 우리 팀은 지금 우리 선수들에게는 기회가 될 거에요. 여기에 K리그2에서는 22세 이하 선수가 의무적으로 나서야 해요. 조금만 하면 자기 꿈을 펼칠 수 있어요. 확답은 못 드리지만 시즌 말에는 번쩍번쩍한 선수 한 두명은 나올 겁니다."
승격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K리그2 팀들의 가장 큰 목표는 역시 K리그1으로의 승격이다. 고 감독은 조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의 역할을.
"사실 지금은 당장 K리그1으로 갈 수 있는 실력이 아닙니다. 더욱 발전해야죠. 만약 운이 좋아서 올라간다고 해도 지금 실력으로는 금방 떨어질 수 있어요. 일단은 승격에 대한 것보다도 팀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K리그1에 가는 것 그리고 K리그1에 가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들어야죠. 만약 그 때의 감독이 저가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저는 일단 제 역할은 그런 힘을 만드는 것이라고 보고 있거든요. 그를 위해 오늘도 한 발씩 더 움직여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