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멈췄다. 이유가 아쉽다. 부상 때문이었다. 양쪽 발바닥에 잡힌 물집과 통증이 세계 테니스계 '신성' 정 현(22·삼성증권 후원)의 위대한 도전을 싱겁게 가로막았다.
부상은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4위)와의 3회전 이후 찾아왔다. 그래서 전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14위)와의 16강, 테니스 샌드그렌(미국·97위)과의 8강에는 진통제 주사를 맞고 코트에 서야 했다. 그러나 악순환이 이어졌다. "경기 당시에는 고통이 없는 상태였지만 격한 경기 뒤 부상이 악화됐다." 정 현의 고백이었다.
부상은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2위)와의 4강 직전 최고조에 달했다. 결국 극단적인 처방을 해야 했다. 물집을 떠나 속살이 보일 정도로 굳은살까지 다 긁어냈다. 페더러와의 충돌을 앞두고 오른발은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네빌 고드윈 코치와 손승리 코치는 정 현의 부상 상태를 보고 기권도 권유했을 정도. 정 현도 "'기권을 하면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페더러와 같은 멋진 선수와 팬 앞에서 경기하면서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 경기는 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라는 고민을 마지막까지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양발에 통증을 가지고는 더 이상 제대로 된 경기를 보여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과거에도 같은 부위에 물집이 잡혔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큰 대회에서 4강까지 오르다 보니 내 몸이 한계를 느끼지 않았나 싶다. 이번 경험을 통해 몸이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정 현의 만신창이가 된 발은 '슈퍼스타'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그만큼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을 치러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한 증거였다. 정 현의 발은 이미 세계 또는 아시아 최고가 된 국내 스포츠 스타들의 발과 닮았다. 공통분모는 '노력'이다.
우선 축구계에선 '아시아축구의 별' 박지성(37·은퇴)의 발과 흡사하다. 수원공고 졸업 시절 프로 팀에서 러브콜도 받지 못했던 박지성의 발은 스물 세 살일 때 조선희 사진작가를 통해 공개됐다. 박지성이 어릴 때 발의 감각을 키우기 위해 맨발로 축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 작가는 카메라 포커스를 얼굴에서 발로 옮겼다. 당시 공개된 박지성의 발은 상처투성이였다. 평발인데다 발톱은 이미 거멓게 죽어 있었고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많았다. 그러나 이 흔적들은 박지성의 노력을 대변했다. 2000년 일본 교토상가에서 프로에 데뷔한 박지성은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을 거쳐 월드클래스급 기량을 갖춘 스타들이 모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맨유에서 8년간 활약했다. 박지성은 언제 고장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한폭탄인 무릎을 이끌고 수많은 업적을 이뤘다.
'빙속 여제' 이상화(29)의 허벅지와 발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당시 스케이트를 벗고 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발바닥 전체에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스피드스케이트 선수들은 얼음의 느낌을 좀 더 받기 위해 맨발로 스케이트를 신는다. 무엇보다 강도 높은 하체훈련으로 다져진 23인치의 허벅지 사이즈도 노력의 산물이다. 그 결과, 이상화는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특히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선 3연패에 도전한다.
'피겨 여왕' 김연아(28·은퇴)의 발도 2010년 밴쿠버올림픽 때 공개됐다. 당시 역대 올림픽 최고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는 코리안하우스에서 캐나다 방송과인터뷰를 할 때 살짝 위로 올라간 바지 사이로 발등과 발목이 드러났는데 피멍이 심하게 엿보였다. 김연아는 빙판 위에서 점프를 연습하기 전 지상에서도 같은 점프를 연습하기 때문에 항상 발목에 부상을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세계를 매혹시킨 연기와 고난도 점프로 '피겨 여왕'이 됐다. 김연아는 2014년 소치올림픽 이후 공식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한국 스포츠계 스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