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2연패와 'V12'를 위한 열정 앞에 한파가 녹았다.
그늘지고 사람이 없는 광주 월드컵경기장에는 바람마저 강하게 불었다. 가뜩이나 일년 중 가장 추운 시기다. 미세먼지도 적잖게 끼어있는 날씨. KIA 타이거즈 허영택 사장은 "날을 조금 잘못 잡은 것 같다. 선수들이 무척 힘들어보인다"며 마치 고생하는 자식들을 바라보듯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KIA 선수들의 열정이 식을 리 없다. 온몸으로 땀을 뿜어내면서 KIA 선수들은 월드컵경기장 트랙을 뛰고 또 뛰었다. 단 한명의 낙오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정규리그 및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달성한 KIA 선수단이 강도높은 체력 테스트로 공식적인 2018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18일 오전부터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와 월드컵경기장에서 1, 2군 선수단 대부분이 모여 인바디 시스템을 통한 체성분 측정과 단거리, 장거리 러닝을 통해 체력 검정을 치렀다. 이날 1, 2군 통틀어 약 70명의 선수들은 오전에는 챔피언스필드에서 인바디 측정을 받은 뒤 월드컵 경기장으로 이동해 오후 1시경부터 50m 전력 질주와 4㎞ 러닝을 통한 체력테스트를 받았다.
이번 KIA 선수단의 체력테스트는 2년만에 부활했다. 2015년 KIA 지휘봉을 잡은 김기태 감독은 부임 첫해와 이듬해에 걸쳐 체력테스트를 통해 비시즌 동안 선수들의 몸상태를 점검해왔다. 이를 토대로 개인 훈련량이 부족했다고 판단되는 선수는 스프링캠프에 데려가지 않았다. 때문에 선수들은 비시즌에도 개인 훈련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지난해에는 스프링캠프 전 체력테스트를 따로 치르지 않았다. 지난 2년간의 경험을 통해 선수들이 알아서 각자 잘 준비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KIA 선수들은 2016시즌을 마치고 각자 열심히 몸을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지난해 통합 우승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그랬던 김 감독이 올해 다시 체력테스트를 시행한다고 공표하자 KIA 선수들은 잔뜩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각자 운동을 해왔지만, 아무래도 '테스트'이기 때문. 사실 김 감독이 노린 점도 바로 이런 선수들의 '긴장감 조성'이었다. 통합 우승으로 인해 다소 풀어지기 쉬운 선수들의 긴장감을 다시 끌어올려 올 시즌 추진력으로 삼기 위한 노림수가 있었다.
이런 '노림수(?)'는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선수들은 이날 체력테스트를 위해 기존에 해오던 개인 훈련의 피치를 끌어올렸다. 특히 2차 드래프트나 트레이드로 팀에 새로 합류한 유민상, 이영욱 등은 "여기서 좋은 기록을 세워 내 가치를 어필하고 싶었다"며 비장한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스트레칭에 이어 단거리 질주 테스트, 그리고 잠시 휴식 후 장거리 러닝이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원래 이범호와 김주찬 등 베테랑 선수들도 이날 테스트에 참가하기 위해 오전에 챔피언스필드에 나왔지만, 부상을 우려해 김 감독이 일부 베테랑은 러닝 테스트에서 제외했다. 그래도 테스트에 참가한 인원만 60여명이나 됐다. 선수들이 얼마나 이날 테스트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구단도 이날 테스트를 중요하게 여기긴 마찬가지다. 허영택 사장과 조계현 단장이 직접 월드컵 경기장에 나와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격려하는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렇게 2018시즌 우승을 항해 호랑이 군단은 힘찬 시동을 걸고있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