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둘러싼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양질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개인의 특성을 중시하는 일반 사회조직과 마찬가지로 프로야구 선수단도 다원주의,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프런트 역시 '정(情)'보다는 철저한 '이(利)'의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 지금은 그런 시대이고 개인과 조직 모두 그 원칙을 따라 움직인다. 주장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주장을 뽑는 방식도 바뀌었다.
1990년대 이전에는 주장을 뽑는 방식이 다양했다. 선수들이 투표를 통해 뽑는 팀이 있었고 감독이 선임하는 팀도 있었다. 심지어 '힘'을 가진 프런트가 주장을 지명하기도 했다. 프로야구선수협회 창립 이후, 즉 2000년대 들어서는 선수들이 투표를 통해 주장을 뽑는 방식이 일반화됐다. 선수단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 많아지면서, 민주적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됐다. 권위의식이 지배하던 선후배 간 질서도 많이 약화됐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최근에는 감독이 주장을 뽑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단이 하나로 똘똘 뭉쳐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데 대한 선수들의 암묵적 동의다. 감독 권위에 대한 존중보단 팀 성적이 곧 나의 가치로 연결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스태프와 선수들간 신뢰도를 높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프런트도 반기고 있다. 주장의 자격 요건도 까다로워졌다. '주장의 3요소'로 실력, 소통, 흥(興)이 꼽힌다.
LG 트윈스는 박용택이 주장으로 선임됐다. 지난해 10월 부임한 류중일 감독이 고심 끝에 박용택을 선택했다. 지난 5일 선수단 시무식서 류 감독은 박용택을 주장으로 선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실 지난해 일본 고치 마무리 훈련을 진행하면서 결정된 사안이다. 류 감독은 "선수들이 투표를 해서 주장을 뽑아왔다고 하는데, 난 내가 뽑고 싶었다. 주장은 야수가 해야 한다"면서 "후보로 3명의 고참 선수가 더 있었는데 모두 떠나 박용택을 선택했다. 주장은 의사소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류 감독은 마음을 정하자마자 박용택을 불러 "네가 주장을 맡아라"고 전했다고 한다.
박용택은 "예전에도 주장을 해봤는데 부담이 있지는 않다. 내 생각을 배제하고 정확히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어디까지나 중간 역할"이라면서도 "그보다 야구를 잘해야 면이 선다"고 했다. LG 관계자는 "사실 박용택이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온화하면서도 카리스마도 있다. 감독님 선택이 옳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롯데 자이언츠 역시 감독의 선택으로 이대호가 주장을 맡게 됐다. 지난해 말 선수단 납회에서 조원우 감독이 이대호를 따로 불러 "내년에도 네가 주장을 해라"고 요청했다. 이대호는 다른 사람이 했으면 하는 생각을 조 감독에게 전했지만, "그래도 네가 하라"는 힘있는 한마디에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조 감독의 설명은 이렇다. 팀을 대표하려면 야구를 잘해야 하고 훈련장이나 더그아웃에서 파이팅을 이끌어 낼 '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롯데가 지난해 후반기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팀 분위기에서 비롯됐는데, 주장 이대호의 역할이 컸다.
두산 베어스 주장은 오재원이다. 2015년과 지난해 후반기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 15일 시무식에서 김태형 감독은 "고참 중 한 명이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괜찮은 것 같다"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오재원은 "처음 맡았을 때는 사실 힘들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고참들이나 선배들이 당연히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올해는 마지막에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감과 각오를 밝혔다. 오재원의 트레이드마크는 승부욕 '넘치는' 제스처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진 팀을 다시 일으켜 세워달라는 주문이 담긴 선임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성 라이온즈 김한수 감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김상수를 선택했다. 지난 8일 시무식에서 "작년에는 주장 역할을 많이 못해 올해는 1군 풀타임을 뛰면서 역할을 잘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김상수는 지난해 42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했고, FA 자격도 1년 뒤로 미뤄졌다. 올해 다시 주장을 맡아 야구도 열심히 하고 팀도 잘 이끌어달라는 김 감독의 요구가 담겼다는 해석이다.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은 지난해 11월 사령탑 취임식에서 최진행을 주장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고, 최진행은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 캠프 임시 주장을 맡았다. 마무리 훈련이 끝난 뒤 한 감독은 "최진행은 리더십도 있고 성실하다. 늘 눈여겨 보고 있었다"고 했다. 구단 주변에선 고령팀 팀 이미지를 벗기 위해 30대 초반인 최진행(33)을 선임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NC 다이노스는 손시헌이 새롭게 주장이 됐다. 손시헌은 지난 11일 시무식을 마치고 "개인보다는 팀 성적이 우선이라는 메시지를 선수단에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NC는 이호준 은퇴 후 첫 시즌에 손시헌이 선수단을 대표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손시헌은 지난 12월 2년간 총액 15억원에 FA 계약을 하며 각오도 새롭게 다지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는 서건창이 2016년 이후 3년째 주장을 맡는다. 또 한 명의 든든한 리더인 박병호가 돌아와 서건창으로서도 선배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kt 위즈 박경수도 2016년부터 3년 연속 완장을 찼다. 재신임은 본인 뿐만 아니라 선수단과 프런트 모두 원했다. 박경수에게 올해는 FA 재자격이 걸린 시즌이기도 하지만, 구단도 올해를 박경수를 중심으로 한 단합된 힘으로 탈꼴찌 숙원을 풀 기회로 보고 있다.
SK 와이번스는 트레이 힐만 감독이 합류하는 2월 미국 플로리다 전지훈련서 주장을 정할 계획이다. 힐만 감독은 지난해 선수들의 의견을 청취한 뒤 박정권을 지명했다. 올해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박정권 최 정 등 간판타자들이 후보들이다. KIA 타이거즈는 최근 오랜 줄다리기를 끝내고 FA 계약을 완료한 김주찬이 다시 주장 완장을 찰 지 주목된다. 김기태 감독의 마음은 김주찬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18일 선수단 미팅서 결론이 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