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재 체제가 출범하고 열흘 가까이 흘렀다. KBO(한국야구위원회) 행정은 멈춤듯 느릿 느릿이다. 정 총재는 업무파악에만 주력하고 있다. 지난 9일 실행위원회에서 10개 구단 단장들을 만나고, 10일 신인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는 등 공식업무는 차질없이 이어가고 있지만 굵직한 현안 처리는 늦춰지고 있다. 실무를 처리할 사무총장 인선이 옴짝달싹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총재는 지난 3일 취임식에서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다. 좀더 생각하겠다. 좋은 분을 모시겠다. 공모제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로선 공모제 시행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공모 자격, 공모 시간, 인선 과정 등 갈 길이 멀지만 공모제 시행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정 총재가 취임식에서 강조한 프로야구 산업화, 합리적인 중계권 협상 등 야구계 미래를 결정할 현안은 산더미다. 중계권은 올해부터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계약이 만료된다. 올해 모바일 중계권, 2019년 지상파-케이블TV 중계권, 2020년 IPTV중계권 등 계약 주체마다 일전을 벼르고 있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KBO 사무총장은 프로야구 통합마케팅을 담당하는 KBOP(KBO 마케팅 자회사)의 대표이사를 당연직으로 겸한다. 프로야구 산업화와 중계권 협상의 실무 총책임자다. 공석으로 오래 비워둘 자리가 아니다.
내부승진과 외부영입으로 크게 가닥이 잡힌 가운데 시간이 흐를수록 하마평만 무성하다. 정 총재는 정치권의 입김을 무조건 차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입김'은 언제든지 '적임자 추천'이라는 베일 뒤에 숨을 수 있다.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결국 총재의 결단이 중요하다.
양해영 전 사무총장의 거취도 뒷말을 낳고 있다. 정 총재가 취임하면서 구본능 총재는 물러났다. 구 전 총재를 6년간 보좌했던 양 전 사무총장도 같이 임기를 마쳤다. 양 전 사무총장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을 겸하고 있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은 KBO 사무총장의 당연직이 아니다. 구 전 총재가 협회 행정을 도우라며 양 전 사무총장을 파견식으로 보냈던 터였다. 임기가 끝나 자연인 신분인 양 전 사무총장은 협회 부회장직을 수행중이다. 이를 바라보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관계자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차기 KBO 사무총장이 부회장으로 오면 업무가 더욱 원활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총재 보좌역에 관한 부분도 논란이다. 구 전 총재는 앞선 이상일 사무총장의 선례를 들어 양 전 사무총장에게 1년 보좌역, 1년 고문 등 2년간 예우를 결정했고, 이 사안은 정식 이사회를 통과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신임 총재와 사전조율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보좌할 신임 총재의 100% 동의없이 미리 결정된 사안이라 모양새가 이상해졌다. 정 총재는 보좌역 임명 동의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적잖이 불편해 한다는 전언이다. 깔끔한 새출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