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만의 일은 분명 아니다. 이제와 새삼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두고 보는 건 더 이상하다.
한국 남자프로농구(KBL)는 이제 완전히 외국인 선수에게 지배되고 있다. 재능 넘치는 토종 신인 선수가 나와도, 오랫동안 대기록을 세워온 레전드가 은퇴 투어를 해도 일회성 관심에 그친다. 더 중요한 건 현장 지도자들이나 관계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성적을 위해 오로지 '좋은 용병'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똑똑한(농구 잘하는) 용병 한 명만 데려오면 일년 농사 끝이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다닌다.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실제로 외국인 선수의 활약에 따라 팀 성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주 DB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DB는 시즌 개막전까지만 해도 우승 후보로 거론되지 못했다. 허 웅과 김창모의 입대, 박지현과 김봉수의 은퇴 등 전력 약화 요인이 있는데다 김주성의 노쇠화와 윤호영의 컨디션에 관한 물음표 등 팀 전력에 관한 불확실성도 컸다. 게다가 이상범 감독도 부임 첫 해였다. 잘해야 중상위권 정도로 분류된 게 사실이다. 지난 시즌에는 5위였다.
그러나 4라운드가 한창인 현재 DB는 당당히 리그 단독 1위다. 5일 기준 22승9패로 2위 전주 KCC(21승10패)를 1경기차로 따돌렸다. 이상범 감독의 치밀한 계산에 기반한 작전이 빛을 발한데다 두경민이 예상 이상으로 에이스 역할을 잘 해주면서 리그 초반부터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역시 DB 순항의 가장 큰 힘은 외국인 선수 디온테 버튼의 활약 덕분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버튼이 없었다면 DB가 이 정도까지 잘 할 수 있었을까. 많은 현장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러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한 구단 관계자는 "순위가 안돼 불가능한 일이지만, 만약 우리가 버튼을 데려왔다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순위에 있었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이 감독이나 국내 선수들의 실력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KBL의 현실이 그렇다. 다른 팀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선수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방송사의 경기 하이라이트, 그리고 경기 후 쏟아지는 기사만 봐도 온통 외국인 선수들 뿐이다. 급기야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진 오리온 외인 선수 버논 맥클린이 최근 화제로 떠올랐다. 어느 팀이 트레이드로 데려가 순위 경쟁에 써먹을 것인가라는 게 요즘 KBL판의 핫 이슈다. 마치 맥클린을 잡는 팀이 대권을 잡기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영입의 대가는 신인지명권이나 핵심 선수다. 이러면 장기적 관점에서는 결국 팀 자생력이 사라진다. 맥클린이 당장 이번 시즌만 하고 떠나버릴 수도 있는데, 고정 자원을 내주는 건 너무 근시안적이다. 그럼에도 '순위 상승을 위해 영입해야 한다'는 식의 목소리가 크다. KBL 경기가 점점 뻔해지고 재미없어지는 이유를 이런 분위기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