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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모순', 투자 없는 빅클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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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클럽으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의 지원을 할 것이다."

안승희 단장 겸 대표이사의 말이다. 안 단장은 제주의 2018년 목표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4강, K리그 우승을 꼽았다. ACL 4강에 K리그 우승. 본격적으로 빅클럽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ACL 4강과 K리그 우승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과실이 아니다. 피땀 어린 준비가 필요하다. 리빌딩은 필수다. 제 아무리 명문 강팀이라 해도 적절한 보강을 하지 못하면 언제든 곤두박질 칠 수 있다. K리그는 결코 만만한 무대가 아니다.

'클래식 최강자' 전북을 비롯, 다음 시즌 K리그 우승을 노리는 모든 팀들이 활발히 보강을 하고 있는 가운데 제주의 겨울은 이상하리 만큼 조용하다. 울산은 A대표급 자원 박주호를 품에 안았고, 황일수 영입에도 근접했다. 수원은 '골잡이' 데얀에 '전천후 공격수' 임상협을 영입했다. 포항은 송승민-김민혁 '광주 듀오'를 영입한데 이어 인천의 수비수 하창래를 손에 넣었다. 이에 질 새라 서울은 에반드로, 김성준 박동진 정현철에 조영욱까지 영입했다. 두텁디 두터운 스쿼드를 자랑하는 전북도 손준호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고, 아드리아노, 홍정호 등 대어급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경쟁팀들이 뜨거운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제주는 조용하다. 신인선수와 브라질 출신 공격수 찌아구, 호벨손이 전부다. 이 와중에 주축급 이탈도 있었다. 윤빛가람 안현범은 각각 상무(군팀), 아산(경찰팀)으로 입대했다. 주전 왼쪽 풀백 정 운은 4월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위해 팀을 떠난다. 끝이 아니다. 지난 시즌 이창근과 함께 제주의 골문을 지켜온 베테랑 수문장 김호준은 강원으로 이적했다. A대표팀급 자원으로 성장한 플레이메이커 이창민은 아랍에미리트(UAE) 알 아흘리 이적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지난 시즌 알찬 영입으로 이적 시장을 주도했던 제주다. 그렇게 탄탄해진 스쿼드의 힘으로 숱한 고비를 넘겨 K리그 2위로 시즌을 마치며 팀 창단 최초로 2년 연속 ACL 진출 위업을 달성했다. 2017년 ACL에서도 K리그 팀 중 유일하게 16강 진출을 이루기도 했다.

안 단장은 "지난 겨울 다수의 선수를 영입했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은 알지만, 이번엔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며 "그렇다고 보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브라질 선수 2명에 신인선수들도 수급했다"고 했다.

지난 시즌에 많은 선수들을 데려왔으니 조직력만 다지면 될 것이라는 게 안 단장의 생각인데, 이는 지금까지 그 어떤 강호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제주가 가겠다고 한다. 용기는 인정할 만 하다. 한데 이는 철학이나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다. 현실인식의 문제다. 투자 없이 성공을 말하는 것은 오판이자 명백한 '모순'이다. 지금까지 숱한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기존 주축들로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다. 여기에 약점은 채우고, 강점을 키우는 게 진정한 의미의 보강이다. 안 단장이 말한 조직력과 완성도 강화는 다른 경쟁자들도 기본적으로 하는 당연한 일이다. 타 팀들은 한 발 더 나아가 공격적인 영입으로 크고 바람 한점 들어올 작은 빈틈이라도 꼼꼼하게 메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물며 핵심 자원 다수가 이탈해 큰 구멍이 숭숭 뚫렸는데도 제주는 조용하다. 외인 2명과 신인선수는 진정한 의미의 보강이라 할 수 없다. 빅클럽을 바라보는 입장이라면 이를 두고 보강이라고 섣불리 평가해선 안될 일이다. "보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안 단장의 말 속에는 안일한 현실인식이 담겨있다. 2년 연속 ACL 진출과 K리그 2위란 지난 시즌 성과가 올시즌 성적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올시즌 출발점은 2위가 아니라 제로베이스에서다. 순위가 반짝 올랐다고 해서 자신감이 과도하게 붙은 것이 아니길 바란다.

축구공은 둥글고, 정상을 위한 왕도는 없다. 돈 안 쓰고 성공하는 팀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빅클럽을 향한 제주의 고요한 발걸음은 나름 신선한 시도로 볼 순 있겠다. 세간의 의구심에도 안 단장의 목소리는 확고하다. 그는 "조성환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 프런트도 선수단을 적극 지원해 제주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현실적 전력보강이 없다면 확신에 찬 안 단장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매년 에이스급 이탈을 지켜보는 서포터스는 어떤 마음일까. 어쨌든 제주의 목표이자 꿈은 빅클럽이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