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사과한 대표이사는 떠나고, 그 뒤에 숨은 단장은 여전히 책임지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K리그의 대표 구단이었다가 '추락한 명가'가 돼가고 있는 수원 삼성이 처한 현실이다.
수원 구단 식구들은 22일 남다른 송별식을 갖는다. 이날 송별식은 최근 제일기획 내부 인사개편에 따라 사의를 표명한 김준식 대표이사를 위한 자리다.
지난 2015년 12월 부임한 김 대표의 송별식은 이전 이석명 단장이 떠날 때의 분위기와 크게 다를 전망이다. 이석명 전 단장은 2012년 6월부터 재임 3년 6개월 동안 특유의 대외 친화력과 대내 포용력으로 수원을 잘 이끌었다는 평가 속에 박수받으며 떠났다.
으레 송별식은 작별의 아쉬움을 삼키는 대신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고, 남는 이에게 덕담을 주고받으며 훈훈하게 마무리돼야 할 자리다. 그러나 김 대표가 떠나는 지금, 수원 구단은 내부인사 잡음, 박주호 영입 실패, 조나탄 이적설 등 구단 경영 난맥상을 드러내며 도마에 오른 상태다. 그렇지 않아도 가라앉을 송별회 분위기는 참담해지게 생겼다.
김 대표는 2016년 FA컵 우승을 지원하고 수원월드컵경기장 사용권을 따내는 등 적잖은 공로를 남겼다. 이런 공로에도 사퇴하기 직전 최근에 서정원 감독 재계약 과정, 전력 보강, 내부 융화 부족 등 잡음도 많았다. 여러 잡음 가운데 결정적인 일은 FA컵 준결승에서의 이른바 '조기퇴근 사건'이었다. 지난 10월 25일 부산서 승부차기 혈투가 벌어진 수원-부산의 FA컵 준결승이 끝나기도 전에 KTX 시간을 이유로 먼저 자리를 떴던 일이다.
이후 축구계의 비판과 수원 서포터스 '프렌테 트리콜로'의 해명 요구 성명이 이어졌고 급기야 김 대표는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당시 김 대표는 '프렌테 트리콜로'에 보낸 메시지에서 "프렌테 트리콜로의 지적에 대해 겸허히 수용합니다. FA컵 4강전 부산 원정경기에서 다음날 일정 때문에 연장전 중반에 마지막 KTX 열차시간에 맞춰 먼저 자리를 이석한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내부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선수단과 팬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자리를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쿨'하게 고개를 숙였다.
여기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 김 대표와 함께 자리를 뜬 박창수 단장은 교묘하게 대표 뒤에 숨었다. 스포츠조선 확인 결과 김 대표는 FA컵 준결승 다음날 일정이 있었다. K리그 구단 대표자 회의가 26일 오전부터 잡혀 있었다. 반면 축구인들이 "축구단에 FA컵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다 못해 둘 중 한 명이라도 자리를 지켰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목했던 '한 명', 박 단장은 사정이 달랐다. 그는 김 대표의 대표자 회의처럼 이튿날 오전 특별한 업무상 일정이 없었다. FA컵 준결승 도중 김 대표와 함께 자리를 떠난 그는 새벽 1시쯤 상경했다는 이유로 26일 오후에 구단 사무실에 출근했다. 나머지 구단 직원과 선수단은 경기를 다 마친 뒤 심야 버스를 통해 새벽 4시가 돼서야 수원에 도착했다.
'조기퇴근 사건'에 대한 사과 입장을 밝히는 과정에서도 박 단장은 빠졌다. '프렌테 트리콜로'에 전달된 사과 메시지는 김 대표 명의로 작성된 것이다. 업무상 일정 때문에 자리를 떠야 했던 최고 수뇌부는 겸허하게 사과하며 수습에 성의를 보인 반면 공동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단장은 상급자의 사과에 교묘하게 묻어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박 단장은 박주호를 영입하려던 과정에서 김 대표와 달리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했고, 계약 옵션을 바꿔가며 시간을 끌다가 울산에 빼앗기고 말았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한 대표는 떠나고, 남은 단장은 한마디 사과 조차 없는 상황.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김 대표는 삼성전자 출신이고, 박 단장은 제일기획 소속이다. 삼성전자 시절 수원 삼성과 제일기획 휘하의 수원 삼성은 이렇게 달랐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