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중징계로 오심 논란 일단락? 불씨는 여전히 숨어있다

by

V리그 사상 최악의 오심 논란이 '일단' 마무리됐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21일 오전 상벌위원회를 열어 해당 경기 진병운 주심과 이광훈 부심에게 무기한 출장 정지, 어창선 경기감독관과 유명현 심판감독관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당초 KB손해보험이 요청한 재경기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역대 최고 수준 징계임은 분명하다. 또 KOVO는 상벌위원회 징계 결정 사항 외에 추가적으로 신춘삼 경기운영위원장과 주동욱 심판위원장에게는 관리의 책임을 물어 엄중 서면 경고 조치를 했고, 재발방지를 위해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경기 및 심판 운영 선진화 작업을 앞당겨 조속한 시일내에 시행키로 했다.

사건은 19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전력-KB손해보험전 3세트에서 벌어졌다. 20-20 팽팽한 상황에서 진 주심은 이재목(한국전력)의 캐치볼 파울을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상대 터치네트에 대해 비디오 판독 요청을 했고, 심판진은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논의 끝에 한국전력의 득점으로 정정됐다. 이는 명백한 오심이었다. 캐치볼이 터치네트에 우선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다. KB손해보험의 항의에도 변한 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심판진은 4세트 22-23에서도 하현용(KB손해보험)의 터치네트를 선언했다. 이 역시 오심. 네트를 건드린 건 하현용이 아닌 전광인(한국전력)이었다. 참다 못한 권순찬 KB손해보험 감독이 재심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술 더 떠 심판진은 KB손해보험에 퇴장 지시를 내렸다. 퇴장 명령을 받은 사람은 항의를 한 권 감독이 아닌 이동엽 코치였다.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KOVO는 즉각 오심을 인정하고, KB손해보험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KB손해보험이 KOVO를 방문해 재경기를 요청하고, 팬들마저 청와대 국민청원사이트에 재경기를 요구하는 등 파문이 커졌다. KOVO는 발빠른 움직임으로 중징계를 내리며 사태 진압에 나섰다. 당사자인 KB손해보험도 중징계 발표 후 "우리가 이의 제기한 내용에 대해 단호한 조처가 내려졌다고 보고 KOVO 입장을 존중하겠다.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한다"고 밝혔다. 파문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실 이번 오심 논란은 모두가 가해자이자, 모두가 피해자다. KOVO는 9월27일 기술위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2017~2018시즌에 적용할 새로운 경기규칙들이 논의됐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재심 폐지, 캐치볼 등 비디오판독 불가 영역 확대, 경기위원장·심판위원장의 경기 관여 불가 등 3가지였다. 이유가 있었다. 재심의 경우, 악용사례가 많고 그로 인해 경기가 지연된다는 논리다. 경기위원장·심판위원장이 경기에 직접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경기감독관의 역할과 권한을 늘려주기 위해서다. 신 경기운영위원장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스로의 권위를 떨어뜨린, 스스로의 손발을 묶어버린 선택이 됐다. 당시 논란의 중심이 된 부분은 캐치볼이냐 아니냐, 터치네트냐, 아니냐의 부분이 아니다. 결국 경기 운영과 규칙 적용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권 감독이 재심을 요청한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재심이 폐지되며 이 길이 막혀버렸다. 경기위원장·심판위원장이 경기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한 점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이들의 관여가 최소화될 수록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명확히 정리해줄 필요도 있다. 배구는 객관적 규칙 하에 진행되는 스포츠다. 축구의 '비신사적인 행위'같이 주관적인 영역이 많지 않은 종목이다. 정확한 상황 정리는 경기감독관, 심판들의 위신을 오히려 살려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오심 논란은 심판, 감독관들의 보신주의, 편의주의, 권위주의가 빚은 합작품이었다. KOVO는 심판과 경기감독관 교육 및 운영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심판의 보다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헤드셋 구입에만 2000만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완벽한 판정은 없다. 하지만 납득할 수 있어야 하고, 혹 문제가 생겼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기본을 놓친 지금, 논란은 끝없이 되풀이 될 수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