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장점이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필자는 한국에서 유학 생활했고 취재 활동을 계속하는 일본 사람 입장에서 이렇게 느낀다. '뭔가를 만들어 낼 때 한국인의 장점은 빠른 결단력, 일본인의 장점은 사려깊게 준비하는 신중함'이다.
요즘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자신들의 이런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는 한 제도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가 진행됐다. 바로 비디오 판독이다.
한국은 2014년 전반기 초반 오심 논란이 이어지자 빠른 대응력을 발휘, 후반기가 시작된 7월 22일부터 TV 중계화면을 활용한 심판 합의판정 제도를 도입했다. 만약 일본에서 그런 오심 문제가 발생했다면 시즌 중에 제도를 바꾸자는 목소리는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비디오 판독은 그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올해부터는 비디오 판독 센터를 설치하는 등 제법 익숙한 제도로 정착돼 가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 비디오 판독은 아직까지 친숙한 제도가 아니다. 일본의 비디오 판독은 2010년 도입돼 홈런 타구를 판단하는데만 적용하다가 2016년부터 홈에서의 아웃과 세이프 사항이 추가된 정도다. 그것도 감독의 신청이 아닌 심판원의 필요에 의한 비디오 판독이었다. 이에 일본은 내년부터 영상을 활용해 판정하는 '리퀘스트 (request) 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KBO리그나 메이저리그와 같은 비디오 판독을 도입한다는 이야기다.
일본에서 한국과 같은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지 못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한국에서 홈경기는 제1 홈구장과 제2 홈구장에서만 개최되지만, 일본에서는 구단 연고지와 상관없는 소규모 도시에서도 경기를 한다. 지역 곳곳에 프로야구 흥행을 돋우기 위한 것인데, 1년에 한 번 정도 밖에 열리지 않는 야구장에 홈구장과 같은 수준의 중계 장비를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은 KBO리그처럼 비디오 판독센터가 없어 중계 영상이 잘 준비되지 않으면 비디오 판독을 할 수 없다. 4D 리플레이 등 새로운 기술이 담긴 중계 장비를 전 경기에 도입하는 한국에 비해 일본은 일본시리즈 등 큰 경기에서만 특수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한 가지는 심판원들의 권위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심판원의 존엄과 존중을 중요시하는 정서가 크다. 한국에서는 중계방송할 때 해당 심판원의 경력이나 스트라이크 존의 특성을 말하거나 그래픽으로 소개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한 방송사 PD는 "아나운서나 해설위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제작자 측에서 심판원에 대해 일부러 언급하거나 카메라로 잡거나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일본의 경우 카메라가 잡은 '진실'의 화면보다 심판원이 내린 판정을 존중해 왔다는 이야기다.
올시즌 한화에서 활동한 나카시마 데루시 코치는 KBO리그의 비디오 판독에 대해 "일본도 한국처럼 했으면 좋겠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른 일본인 코치들도 비슷한 의견을 냈고, 일본 프로야구 현장에서도 리퀘스트 제도 도입을 환영하고 있다.
한국보다 3년 정도 늦었지만, 어쨌든 일본은 많은 고민 끝에 장비와 심판원에 대한 정서 문제 등을 해결하면서 내년부터 감독이 요청할 수 있는 비디오 판독 제도를 시행한다. <무로이 마사야 일본어판 한국프로야구 가이드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