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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인터뷰①] 나문희 "모든 할머니들에게 희망-용기, 수상만큼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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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나의 친구 할머니들, 늙은 나문희가 이렇게 큰 상을 받았어요. 다들 열심히 해서 상 받으세요. 하우 아 유(How are you)? 아임 파인 땡큐, 앤 유(I'm fine thank you, and you)?"

지난달 25일 열린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나문희(76)의 유쾌, 상쾌, 통쾌했던 수상소감이다. 청룡영화상 역대 '최고령' 여우주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린 나문희. 올해 76세, 데뷔 57년 차를 맞은 그는 심사위원 8인과 네티즌 표까지 더해 '만장일치'라는 기록을 낳으며 수상을 거머쥐었다. 심사위원으로부터 '감을 평을 할 수 없는 경지의 연기 신'이라는 심사평을 받은 나문희. 청룡영화상에게도, 나문희에게도 의미 있는 영예의 순간이었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기쁨을 만끽할새 없이 부산에서 드라마 촬영에 한창이었어요. 틈틈이 많은 축하를 받았고 또 감사했던 분들에게 한턱 쏘느라 정신이 없었네요. 하하. 상금이 나온다는데 어떻게 하면 요긴할 쓸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심사위원분들과 네티즌 여러분의 표를 모두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걸 들으면서도 '올해 내 운이 정말 좋구나' '어떻게 이런 행운이 있나'라며 감사해 했어요. 올해 정말 큰 복을 타고난 것 같아요. 운이 좋았어요(웃음)."

수상 이후 본지와 단독인터뷰를 진행한 나문희. 충무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나문희는 여배우들의 자랑이자 자존심, 그리고 더 나아가 충무로의 상징이 됐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여전히 부끄러워했다. '여배우들의 자존심'이라기 보다는 '할머니들의 희망'이 될 수 있어 기쁘다며 모든 영광을 동료 할머니들에게 돌렸다.

"여배우들의 자존심이라고 하는데 그런 수식어가 정말 어려운 자리를 만들어요. 전 중간만 하고 싶어요. 하하. 수상 소감에서도 말을 했지만 제가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할머니들에게 희망이 된 것 같아 기뻐요. '우린 아직 살아있다' '우리도 상을 받을 수 있다' 용기를 준 것 같아 뿌듯해요. 아주 많이. 또 개인적으로는 이 나이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같아 스스로 대견하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봐도 우리나라 여배우들은 너무 연기를 잘해요. 얼마 전 JTBC '전체관람가'에서 전도연이 나온 단편영화 '보금자리'(임필성 감독)를 봤어요.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지, 만약 올해 청룡영화상 후보였다면 여우주연상을 받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보니 이번 여우주연상 수상은 운이 컸네요. 하하."

나문희의 저력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뿐만 아니었다. 여우주연상에 앞서 인기스타상을 수상한 그는 올해 청룡영화상 유일한 2관왕이었다.

"남편도 TV로 청룡영화상을 본방송을 사수했데요. 남편이 하는 말이 1부에서 제가 인기스타상을 받게 되면서 여우주연상 수상을 포기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웃음). 1부 인기스타상만 보고 자려다 그래도 끝까지 봐야겠다 싶어 2부까지 지켜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기대도 못 한 여우주연상을 받자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남편뿐만 아니라 딸들도 정말 많이 기뻐했어요. 올해 96세이신 어머니도 좋아하셨죠. 여러모로 자랑스러운 딸, 자랑스러운 아내, 자랑스러운 엄마가 된 것 같아 행복해요. 어머니가 몸은 좀 불편하시지만 아직 정정하시거든요. 제가 하는 연기 활동을 관심 있어 하는데 이번 수상으로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행복해요. 하하."

앞서 언급한 나문희의 수상 소감 외에도 큰 화제를 모았던 대목은 바로 '종교 대통합'이었다. 나문희는 수상 당시 "지금 96세이신 친정어머니, 어머니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나문희의 부처님께 감사드린다"고 재치있는 소감으로 청룡영화상을 뜨겁게 달궜다.

"'종교 대통합'이라니요.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당치 않아요. 하하. 종교를 이야기한 것은 그냥 그 자리에서 문득 든 생각이에요. 배신을 할 수 없었어요. 물론 배신도 아니지만요(웃음). 어머니가 지금 제 나이에 하나님을 믿으셨는데 지금도 신앙을 이어가시고 계세요. 지금 그 신앙으로 제가 있을 수 있었고요. 반대로 저는 아이들 키우면서 부처님을 믿게 됐어요. 어머님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제가 좋아하는 부처님께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어요. 어머니의 신만 이야기하면 섭섭하니까요. 하하."

나문희와 청룡영화상은 비단 올해가 처음은 아니었다. 2007년 열린 제28회 청룡영화상에서 '열혈남아'(06, 이정범 감독)를 통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나문희. 10년 만에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감독, 영화사 시선 제작)로 얻은 두 번째 결실이다.

"상의 경중이 어디 있겠어요? '열혈남아'로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때도 너무 행복했어요. 그런데 이번 여우주연상은 상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시기가 시기라 더욱 뜻깊게 다가온 것 같아요. 사실 연기를 그만둬도 될 나이인데 이런 내가 상을 받았으니까요.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감동했어요. 지금도 행복하고 아마 1년, 10년, 죽을 때까지 행복할 것 같아요(웃음). 청룡영화상이 과감한 선택을 했네요. 70세가 넘은 여배우를, 대개 다른 영화상에서는 공로상을 줄 법한 나이인데 여우주연상을 주시다니 감사해요. 앞으로도 제 뒤를 이어 과감한, 파격적인 용단을 계속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