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동열 감독님이 주니치의 선수였다고요? 1루 코치도 그래요? 그런 사실을 몰랐어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일본대표팀의 한 선수는 한국대표팀의 선동열 감독과 이종범 코치에 대해 잘 몰랐다. 1993년생인 이 선수가 9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활약한 선 감독과 이 코치의 이름을 몰랐다고 해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
반면 한국 대표팀의 장현식(NC)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인 80년대 일본야구계에서 전설적인 실력을 보인 한 투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가와 스구루(62)다. 장현식에게 에가와는 동영상으로 봐왔던 투구 교본이었다.
장현식은 "최일언 코치님은 항상 저에게 '이 투수처럼 던지면 어떨까'라고 에가와씨의 현역시절 동영상을 자주 보여 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장현식과 에가와 투구폼의 공통점은 와인드업을 하고 난 이후 투구 동작 때 어깨를 수평이 아닌 오른손을 밑으로 내린다는 것이다. 요즘 투수에서는 드문 폼이다. 장현식은 "에가와씨처럼 하체를 의식하고 자연스럽게 중심이동을 하려고 했다"고 에가와 효과를 말했다.
에가와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괴물투수로서 유명했고 큰 주목을 받으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프로에서 활동한 기간은 부상 때문에 짧았지만 1981년에 20승을 거두면서 요미우리의 우승에 앞장서 정규시즌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9년간 선수로 활약하며 다승왕에 2번 올랐고, 평균자책점 1위에 한차례 오르는 등 통산 135승72패를 기록했다. 구속보다 빠르게 보이는 직구는 지금도 일본야구의 전설로 남아있다.
장현식은 16일 일본전에 선발등판해 5이닝 동안 4안타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했다. 한국은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7대8로 패배했지만 선발 장현식의 호투가 인상적이었다.
장현식은 이날 피칭 템포가 매우 빨랐다. 공을 던지자 마자 다음 피칭에 들어갔다. 에가와의도 투구 템포가 빠른 투수였다. 장현식은 "원래 생각이 많은 편이라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일부러 빠른 리듬으로 던졌다"고 말했다.
장현식이 호투한 다음날인 17일. 두번째 경기인 대만전을 앞두고 장현식은 도쿄돔에서 우연히 에가와 사진을 봤다. 일본전에선 3루 더그아웃을 썼는데 대만전엔 홈이라 1루 더그아웃을 쓰게 됐다. 요미우리의 홈 더그아웃 1루쪽 복도에 요미우리 레전드들의 사진이 있었는데, 에가와 사진이 거거 있었다. 장현식은 복도를 걸으며 요미우리 선수들의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멈춰섰다. "내가 봤던 에가와씨다"라며 장현식은 반가운 웃음을 보였다. 장현식은 곧바로 필자에게 기념촬영을 요청했다.
에가와는 1987년에 은퇴해 1988년에 개장한 도쿄돔 마운드에 오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에가와의 투구폼에 영향을 받은 22세의 젊은 한국인 투수가 도쿄돔에서 빛나는 피칭을 했다.
30년의 세월을 넘은 두 투수의 인연. 그것은 아주 감명 깊은 일이었다. <무로이 마사야 일본어판 한국프로야구 가이드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