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눈웃음, 통통한 볼살이 사랑스러운 이 소녀, 빙판에만 서면 독한 승부사가 된다.
서울 서문여고 3학년,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막내 김민선(18)이다.
10~12일 네덜란드 헤렌벤 티알프아이스링크에서 펼쳐진 평창 시즌 첫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1차 월드컵, '레전드' 이상화(28·스포츠토토)와 고다이라 나오(31·일본)의 빅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운데, '막내' 김민선의 선전은 조용히 빛났다.
첫날 500m 1차 레이스 디비전 B에서 브리트니 보우(미국, 38초20)에 이어 38초35로, 전체 2위에 올랐다. 둘째날 2차 레이스는 디비전 A에서 탔다. 김민선은 자신만의 야무진 스케이팅을 해냈다. 38초02의 기록으로 전체 20명의 선수 중 6위에 올랐다. 올림픽 무대를 두세 번씩 경험한 백전노장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셋째날 김현영(성남시청) 박승희(스포츠토토) 등 선배들과 함께한 여자 팀 스프린트에선 첫 월드컵 메달을 목에 걸었다. 1분28초111의 기록으로, 러시아(1분 26초 62), 노르웨이(1분 28초 110)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첫 월드컵 시상대에 오르며 '리틀 이상화'의 이름값을 입증했다.
평창올림픽 시즌 대표선발전을 앞두고 '액땜'도 있었다. 김민선은 9월 22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펼쳐진 2017 ISU 인터내셔널 폴클래식 대회 500m에서 작성한 37초70의 자신의 최고기록, 세계주니어 신기록을 공인받지 못했다. 2007년 이상화가 수립한 주니어 신기록 37초81을 무려 10년만에 경신한 상황, 조직위의 부주의로 인해 기록이 날아갔다. ISU 규정상 세계기록을 작성한 선수는 당일 도핑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조직위가 이 과정을 놓친 탓이다. 모두가 안타까워 했지만 정작 김민선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3차 월드컵 때 캘거리에 다시 올 텐데, 그때 또 잘 타면 된다"며 툭툭 털어냈다. 금세 제자리로 돌아왔다. 매사 긍정적, 낙천적인 성격이다. 기록은 도망가지 않는다. 첫 월드컵 시리즈에서 그녀는 씽씽 내달렸다.
김민선은 초등학교 4학년이던 11살 때 친구 따라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다. 첫 시작은 쇼트트랙이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후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뒤늦게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2015년 이후 줄곧 동급 최강이었다. 전국체전 여자부 500-1000m 1위를 휩쓸었고, 2016년 릴레함메르 동계유스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의 꿈을 향해 쉼없이 달려왔다. 김민선은 평창올림픽 시즌, 첫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1988년 서울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현정화 렛츠런파크 총감독을 '멘토'로 만났다. 열아홉살, 첫 올림픽에서 기적을 쓴 현 감독에게 금메달 기운을 이어받았다. "첫 올림픽이 중요하다. 다음 올림픽은 없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평창에서 해내야 한다. 언니, 선배들보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실함으로 도전하라"는 조언에 김민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첫 월드컵부터 당찬 질주를 시작했다. "평창올림픽을 코앞에 둔 시즌 첫 월드컵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좋은 성적으로 자신감을 얻은 첫 월드컵이다. 평창올림픽까지 남은 3개의 월드컵에서 부족한 점을 차근차근 보완하고, 실수를 줄이면서 자신감 있게 올림픽을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17일부터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열리는 월드컵 2차 대회에 참가한다.
본인의 최고기록이라면, 지금 같은 '폭풍성장'이라면, 당일 컨디션에 따라 메달권도 충분히 기대해볼 만하다. 2018년 평창, '반전 소녀'의 행복한 눈웃음을 기대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