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1월의 일이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 스프링캠프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 애리조나 피오리아에 위치한 시애틀 매리너스 구장을 방문했다. 그때 정재훈을 처음 만났다. 롯데 소속 투수였던 그는 "준우승만 4번을 했다. 우승은 한번도 못했다. 내 남은 현역 생활 최고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소원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우승'이 특정 선수의 운명을 절묘하게 비껴간다면, 가장 기구한 선수가 바로 정재훈일 것이다. 2003년 두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평생을 '베어스맨'이었다. 그러다 2015시즌을 앞두고 FA(자유계약선수) 장원준의 보상 선수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었다. 그해 연말 두산이 다시 정재훈을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했으니 롯데로 뛴 시즌은 딱 1년 뿐이었다. 그리고 정재훈이 팀을 비운 사이 두산이 14년만의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래서 그는 우승에 대한 갈증과 갈망이 무척 컸다. "준우승만 4번을 하다보니, 그럴거면 차라리 4강에 안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도 '이제는 우승 반지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더라. 우승만 하면 우승 반지를 끼고 돌아다니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재훈은 동료들이나 구단 직원들, 야구계 관계자들에게 예의바르고, 친절한 '신사' 같은 선수로 기억된다. 하지만 우승 욕심에 대해 말할 때는 승부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지막까지 우승을 하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게 됐다. 2016시즌 다시 두산에 복귀했지만, 한국시리즈 직전에 타구에 맞아 팔뚝 골절상을 입으면서 한국시리즈 엔트리 진입이 끝내 불발됐다. 두산 동료들이 그의 등번호 '41'을 모자에 새기고 4승무패 완벽한 우승을 차지했으나 정재훈은 함께할 수 없었다. 김태형 감독을 비롯해 두산 선수들이 우승 직후 가장 먼저 꺼낸 이름이 바로 정재훈이었다. 그만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그렇게 마지막이 찾아왔다. 재활이 길어지면서 정재훈은 올 시즌 1군에서 단 한번도 뛰지 못했고, 두산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두산은 8일 정재훈의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참 얄궂은 운명이다. 그토록 우승을 바랐던 그는 끝내 우승 반지를 끼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게 됐다. 두산은 정재훈에게 코치직을 제안했다. 정재훈은 "조금 더 고민을 해보겠다"며 최종 결정을 미룬 상태다. 만약 그가 코치직을 수락한다면,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열망을 실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