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의 민영화 달성과 비약적인 실적 개선으로 민선 초대 은행장에 오른 우리은행 이광구 행장이 '채용비리'라는 대형 악재를 만났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신입사원 공채에서 국가정보원이나 금융감독원, 은행 주요 고객의 자녀와 친인척 등 16명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우리은행의 자체 감사 결과와 인사 조치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이 30일 검찰 고발 방침을 밝힘에 따라 이번 채용비리는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향후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이 행장의 입지 또한 심각히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은행, "부탁은 있었지만 비리는 없었다"는 이색(?) 주장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심상정 의원(정의당)은 최근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우리은행 신입사원 공채 때 국가정보원이나 금융감독원, 자산가 고객 등의 자녀 16명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심 의원이 공개한 우리은행 인사팀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2016년 신입사원 공채 추천현황' 문건을 보면 이들 16명은 우리은행에 전원 합격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안이 불거진 뒤 우리은행은 자체 특별검사팀을 구성해 이번 채용비리 의혹에 등장하는 전·현직 우리은행 소속 추천인 중 9명과 채용 절차를 진행했던 임직원 12명을 인터뷰하고 진술서를 작성했다. 이에 따르면, A본부장은 인사부장에게 전화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지원자의 이름을 말하며 "참 똑똑하니 한번 잘 봐라"라고 요청했으며, B본부장은 인사담당자에게 "국기원장의 조카가 우리은행에 지원했다고 하니 한번 알아봐 달라"고 말했다. 또 이번에 직위해제 된 남모 그룹장은 채용팀장을 사무실로 불러 5∼6명의 인적사항이 담긴 메모를 전달하며 합격 여부 및 탈락사유를 미리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남 그룹장은 2015년에도 채용팀장을 불러 5∼6명의 인적사항이 담긴 메모를 전달했다.
이 같은 자체 조사에 따라, 우리은행은 "채용 추천 명단은 인사부 채용 담당팀에서 작성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합격지시나 최종합격자의 부당한 변경, 형사상 업무방해 등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또 "추천인들의 경우 합격 여부 회신 등을 목적으로 요청한 것이 다수이며 채용담당자들 역시 추천 자체가 채용결과에 영향이 없다"고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부탁을 하거나 받은 사람은 있지만, 합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는 주장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궁색한 변명'으로 보인다. 지금의 의혹을 일소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이와 관련 최흥식 금감원장은 "우리은행의 감사보고서를 검찰에 넘겨주고 검찰에서 수사를 하게 되면 내용이 더 밝혀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급하게 '불끄기' 나섰지만 역부족…이광구 행장도 검찰 조사?
민영화와 연임의 높은 산을 넘은 이광구 행장은 '종합금융그룹' 도약을 경영 2기의 목표로 내세우며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이 가운데 터진 채용비리는 이 행장에게 악재 중에서도 대형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이 행장은 채용 비리 의혹을 받는 내부 인사들을 직위 해제하고 직원들에게 독려 메시지를 보내는 등 급하게 불끄기에 나섰다. 이 행장은 지난 27일 임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신입 사원 채용 프로세스를 전면 쇄신하겠다"고 했다. 또 남 그룹장 등 3명을 직위 해제하고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직원은 조치 방침을 밝히는 등 적극적으로 채용 비리 의혹에 대처하는 모습이다.
채용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채용 프로세스 개선안도 내놨다. 이후 우리은행은 서류전형과 인적성·필기시험, 면접, 사후관리 등 채용 전 과정을 외부업체에 아웃소싱하겠다고 밝혔다. 평가과정을 100% 전산화해 수정이 어렵게 하고 외부 면접관을 대폭 확대하며 금융상식이나 논술 등 필기시험을 신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광구 행장의 응급처방책이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다. 일단 정치권의 반응부터가 부정적이다 이 사안을 제기한 심상정 의원은 "(우리은행의 보고서가) 감사 보고서라기보다는 채용비리를 부인하는 추천인들의 변명 보고서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또 추천인 명단에 대해 "채용담당팀→인사부장→인사담당 상무→인사담당 부행장까지 보고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은행장 보고 여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3명을 직위 해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려하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더욱이 검찰의 수사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 최 금감원장은 30일 국정감사장에서 "우리은행의 자체감찰 결과를 보고받고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관련 업계에선, 채용비리 근절을 강하게 주문한 '문재인 정부'의 기류에 비춰볼 때 향후 검찰의 칼끝이 이번에 직위 해제된 3인을 넘어서 어디를 정조준하게 될지 가늠하기도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이 행장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 행장의 임기는 2019년 3월쯤 열리는 정기주총까지 1년 넘게 남아있으나, 검찰 수사가 확대될 경우, 이광구 행장이 선상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우리금융그룹의 한 관계자는 "(채용비리로 인해) 이광구 행장이 검찰 조사를 받을 수도 있어 그룹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전상희 기자 nowa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