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을 보니까 더 아쉽네요."
22일 춘천송암레포츠타운. 전북 현대전에서 0대4로 대패를 당한 뒤에도 강원FC 팬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선수들이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중앙 통로 양 옆에 강원 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대패의 울분을 털어놓는 비난의 장은 아니었다. 그라운드에 쓰러져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던 선수단을 향한 위로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선수단 중 가장 늦게 라커룸을 빠져 나온 이근호는 이런 팬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전북전 대패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 확보가 좌절된 아쉬움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전북과의 클래식 35라운드는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경기시작 6분 만에 선제골을 내준 뒤 강원은 빠르게 분위기를 수습하며 반격의 실마리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전반 35분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최철순과 뒤엉켜 넘어진 오범석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가 VAR(비디오영상판독)으로 번복되며 땅을 쳤다. 제21호 태풍 '란'의 북상으로 불어온 강풍의 영향도 상당했다. 강원은 후반전 이범영의 골킥이 바람에 밀려 하프라인을 넘지 못하며 반격에 애를 먹었다. 전반전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전북은 이재성의 신들린 패스 속에 이승기와 에두, 이동국이 릴레이골을 터뜨리며 점수차를 벌렸다. 이날 패배로 강원은 남은 3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ACL 출전권 확보가 좌절됐다. FA컵 결승전에서 클래식 3위 팀이 우승할 경우 4위에게 양보되는 ACL 출전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더 이상 격차를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강원 선수단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약속이나 한 듯 그라운드에 쓰러지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팬들을 보니 패배가) 더 아쉽다"고 운을 뗀 이근호는 "선수들이 흥분했다. 다들 냉정하지 못했다"고 패인을 곱씹었다. 그는 "그 상황(페널티킥 판정 번복)이... (선수들이 흥분할 정도로) 납득하기 힘들었다. 다시 봐도 이해가 안되는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근호는 ACL을 목표로 삼고 출발한 강원이 내놓은 첫 결실이었다. 이근호를 시작으로 정조국 이범영 황진성 등 내로라 하는 수재들이 강원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좀처럼 오르지 않는 순위와 시즌 중반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내려놓은 최윤겸 감독과 이어진 사령탑 장기 부재, 부상과 징계 등 변수를 넘지 못했다. 4년 만에 클래식으로 승격한 강원은 원대한 포부를 품었지만 관록을 이겨내기엔 부족했다. "우리가 잘해야 다른 팀들도 따라온다"고 되뇌였던 이근호에겐 그래서 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시즌이다.
이근호는 "우리가 목표로 한 부분을 이루지 못해 아쉽긴 하다"며 "우리가 좀 더 갖춰야 할 부분, 모자랐던 부분에 대해 알 수 있게 됐다. 그런 부분을 잘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시즌을 돌아봤다. 자신의 올 시즌 활약도에 대한 점수를 70점이라고 밝힌 그는 "다음 시즌 상위권 팀들과 경기를 잘해야 한다. 이 팀들과 경쟁을 해 좋은 결과를 내야 ACL에 갈 수 있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의지를 다졌다. 남은 시즌 일정을 두고는 "다른 팀들은 목표가 뚜렷한데 우리는 그러질 못해 더 어렵다. 자존심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고 동료들의 분전을 촉구했다.
전북전은 강원이 올 시즌 춘천에서 가진 첫 경기다. 이날 경기장엔 7438명, 강원의 올 시즌 홈 최다관중이 운집했다. 이근호는 "분위기는 좋았는데 (다음 경기) 걱정이 크다. FC서울전 뒤에도 경험을 했던 부분이 있어서"라고 웃은 뒤 "아쉬움은 크지만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춘천=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