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가을 하늘 아래 푸른 마라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하나 되는 제3회 슈퍼블루마라톤이 성황리에 치러졌다.
14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 내 잔디평화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푸른 티셔츠 차림에 운동화에 푸른색 끈을 동여맨 남녀노소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5500여 명의 마라톤 참가자에 가을 소풍을 겸한 가족들까지 총 6200여 명이 몰려들며 눈깜짝할새 상암벌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장애와 편견을 넘어 푸른 가을을 달리다
슈퍼블루마라톤은 (사)스페셜올림픽코리아와 롯데가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해 진행중인 '슈퍼블루 캠페인'의 일환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달리며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고 편견의 벽을 낮추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이날 행사장에는 고흥길 스페셜올림픽회장, 나경원 스페셜올림픽코리아명예회장, 김성수 스페셜올림픽코리아창립자(전 성공회 주교), 소진세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장, 강효상 의원, 이종명 의원, 이성관 스포츠조선 대표이사, 정기영 한국장애인부모회장, 홍명보 슈퍼블루마라톤 홍보대사(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자리를 함께했다. 발달장애인 이성민씨의 '거위의 꿈' 색소폰 식전 공연, 발달장애인 성악가 윤용준의 '오 솔레미오' 오프닝 공연이 축제 분위기를 띄웠다.
고흥길 회장은 개회 선언을 통해 "슈퍼블루마라톤이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자가 늘어나고 있다. 참가자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가자가 늘어날수록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장벽이 낮아지고, 사이가 가까워진다는 데 뜻이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마라톤을 통해 비장애인, 장애인이 모두 한몸, 한뜻으로 협력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나경원 명예회장(자유한국당 의원)은 슈퍼블루마라톤의 의미를 참가자들에게 친절하게 소개했다. "미국스페셜올림픽 본부에선 장애인 비하 의미가 담긴 'R'이 들어가는 단어를 쓰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리타드, 리타디드(Retarded)'처럼 '늦은' 사람들이라는 식의 단어를 쓰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 캠페인을 우리나라식으로 바꿨다. 색깔을 도입했다. '블루(BLUE)는 Beautiful Language Use will Echo(아름다운 말은 울림이 됩니다)의 준말이다. 그 아름다운 말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다짐할 슈퍼블루마라톤의 5가지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마라톤 출발을 앞두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목소리로 수퍼블루마라톤의 5가지 약속을 외쳤다. "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입니다! 장애는 앓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때는 상대가 원하는지 먼저 물어보세요. 발달장애인에게 반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장애우가 아니라 장애인이라고 불러주세요."
▶장애인-비장애인, 가족, 친구… 6500명의 푸른 축제
치어리더팀 거북선의 치어리딩에 맞춰 신명나게 몸을 푼 참가자들이 차례로 출발선에 섰다. 이날 마라톤은 수준별 3개 코스로 진행됐다. 잔디광장을 출발해 성산대교를 돌아오는 5km의 슈퍼블루코스(장애인), 상암에서 가양대교를 돌아오는 10km 코스, 가양대교와 마포대교를 돌아오는 하프코스다. '선수'들을 향해 내빈들이 힘차게 손을 흔들며 응원했다.
특히 이날 슈퍼블루마라톤 홍보대사로 위촉된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을 향한 참가자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사진촬영을 요청하고, 악수를 청하며 환호했다. 홍 감독은 홍명보재단 이사장으로서 축구계 안팎에서 선행을 이어왔다. 장애인축구협회 부회장으로서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홍 감독은 "2011년 평창스페셜올림픽 때도 홍보대사를 했었는데, 슈퍼블루마라톤과 함께 하게돼 큰 영광이다. 앞으로도 축구뿐 아니라 오늘같은 좋은 일에 열심히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오늘은 마라톤이 처음이라 준비를 못했다. 다음에는 뛸 준비까지 해오면 좋을 것같다. 더 많은 장애인, 비장애인들이 참가하시면 좋겠다"고 독려했다.
30여 분만에 5km 완주자들이 결승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마다 완주메달을 걸고 디지털 인증기록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쏟아지는 땀 사이로 환한 미소가 번졌다. 다시 돌아온 잔디광장은 가을 소풍 분위기가 됐다. 가족별, 팀별로 모여앉아 나눠먹는 도시락은 꿀맛이었다.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 '바다의별'에서는 전경순(41), 이중호씨(47) 등 8명의 지적장애인들이 작년에 이어 5km 마라톤에 도전했다. 한달반 정도 복지관 뒤 '삼남길'을 걷고 뛰며 훈련했다. 전씨는 5km 완주소감을 묻자 "뿌듯했다. 마지막에 들어올 때는 좀 힘들었다"고 답했다. "걷기 연습을 열심히 하고 나왔더니, 작년보다 올해 기록이 더 좋아졌다. 살도 빠진 것같다"며 웃었다. 이씨는 사회복지사 남윤희씨와 함께 완주 후 메달을 깨물며 기쁨을 표했다. 사회복지사 남씨는 "슈퍼블루마라톤은 장애인들이 함께 뛰기에 최적화된 마라톤이다. 시간제한이 없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여유있게 뛸 수 있고, 서로를 응원하며 끝까지 함께 뛸 수 있어 좋다. 우리들을 위한 마라톤이다. 수원에서 찾아오는 이유"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20대 '미녀 삼총사'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롯데쇼핑 직원인 조은별씨(26)는 동갑내기 동네친구 조현지, 김슬기씨에게 5km 마라톤 참가를 제안했다. "작년에도 뛰었는데 마라톤의 취지가 너무 좋아서 올해는 셋이서 왔다. 가을하늘도 좋고, 달리는 코스가 너무 아름다워서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푸른끈을 동여맨 운동화를 맞대고 '우정' 인증샷을 찍는 모습은 훈훈했다.
외국인 참가자들도 늘었다. 75세의 '철각' 영국인 데이비드 매디슨씨는 "올해 2,3,4월에 이어 10월에 슈퍼블루마라톤 10km를 뛰었다. 50분을 목표 삼았는데 55분에 들어왔다"고 했다. "달리기를 좋아하고, 레이스를 좋아한다. 마라톤을 하면 행복하다. 슈퍼블루마라톤의 특별한 의미도 자료를 통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즐거운 레이스였다. 한국사람들이 진심으로 즐기고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을 봤다"며 활짝 웃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유모차를 끌고온 가족 참가자들도 많았다. 서울 신도림동에서 7세, 4세 아이와 함께 참가한 회사원 김희영씨(39)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뛰는 마라톤의 의미를 아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함께 왔다. 함께 달림으로써 좋은 취지에 동참하고, 기부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될 것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참가자들이 모두 골인할 때까지 광장에선 유쾌한 공연도 이어졌다. 개그맨 정승환의 사회에 따라 '홍보대사 국악인' 이성현, 가수 채시연의 흥겨운 공연이 이어졌다. 국기원 태권도시범단의 짜릿한 시범에는 갈채가 쏟아졌다. 시상식에 이어진 풍성한 경품 행사를 피날레로 슈퍼블루마라톤이 성료됐다. 함께 뛰어 더 행복한 마라톤, 몸도 마음도 부자가 돼 돌아가는 가족들의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상암=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