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준플레이오프 1차전 연장 11회초 모창민의 그랜드슬램과 NC 다이노스의 승리 사이에는 큰 연관성이 없다.
이미 이 만루포가 아니었어도, 롯데 자이언츠 '안방마님' 강민호가 패스트볼을 저지른 순간 이미 승부는 NC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포수와 불펜투수, 내야수비진의 총체적 패닉 속에 롯데는 연장 11회초 3점을 허무하게 내줬다. 스코어는 2-5. 이미 승부는 여기서 끝이었고, 모창민은 만루홈런으로 점수차를 더 늘려놨을 뿐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 뿐일까. 모창민의 그랜드슬램에 담긴 의미가 그저 확실한 추가점 정도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한방으로 인해 NC는 적어도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 두 가지 효과를 한꺼번에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기세와 자신감, 측량 불가한 상승효과
수치로 정량화하긴 아직 어렵다. 그러나 '기세'와 '자신감'이라는 무형의 요소는 팀 전력, 특히 단기전 체제의 포스트시즌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야구 자체에 '멘탈(정신적) 스포츠'의 측면이 상당히 크게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단기전 승부에서 1차전 승리팀의 다음 스테이지 진출 확률이 그토록 높은 1차 이유는 승수 누적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1차전 승리를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인해 전력 상승 효과가 생긴 덕도 있다.
이러한 심리적 요인에서 봤을 때 모창민의 그랜드슬램은 가장 극적이고 폭발적으로 NC 선수단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특히나 경기 내내 나성범-스크럭스의 중심 타선이 고전하면서 공격이 답답하게 안풀리던 때에 터진 강력한 만루포는 동료 타자들에게 '나도 해낼 수 있다' 혹은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와 같은 인식을 강력하게 심어줬다. 이같은 자신감의 상승은 분명 남은 시리즈에서 NC 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공포와 전율, 롯데 투수진의 경계심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야 한다. 특히 투수들에게 적용되는 얘기다. 상대 타자에게 내준 결정타 혹은 큼직한 홈런에 대한 기억은 빨리 털어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마운드에서 타석에 등장한 상대를 보는 순간 불쾌한 옛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게 마련. 이런 공포심은 투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모창민은 롯데 투수진, 특히 불펜진의 뇌리에 이런 공포를 심어줬다. 그냥 홈런도 아니고 만루홈런이다. 중심 타선에 비해 그렇게 경계했던 거포도 아니다. 그러나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한방을 지닌 타자라는 게 입증됐다. 이제 롯데 투수진의 머리 속에는 한 가지 변수가 더 심어졌다. 이런 경계심은 분명 타자와의 수싸움 계산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한다. 계산이 복잡해지는 건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투구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