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이병헌과 김윤석 두 사람의 미(美)친 연기 대결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남한산성'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올 추석 극장가에서 블록버스터 '킹스맨: 골든 서클'을 대적할 가장 큰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는 영화 '남한산성'(황동혁 감독, 싸이런픽쳐스 제작).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가진 스포츠조선과 인터뷰에서 개봉을 앞둔 소감과 영화에 관련된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전했다.
'남한산성'은 70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김훈 작가의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1636년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치열했던 47일간의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청의 굴욕적인 제안에 화친과 척화로 나뉘어 첨예하게 맞서는 조정, 참담하게 생존을 모색했던 낱낱의 기록을 담은 이 작품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은 같았으나 이를 지키고자 했던 신념이 달랐던 두 신화 최명길(이병헌)과 김상헌(김윤석)을 중심으로 한 팽팽한 구도 속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완성됐다.
신파, 판타지, 화려한 액션 등 최근 한국 사극 영화가 보여줬던 모든 관습을 집어던진 '남한산성'은 오직 이야기와 인물에 집중한 묵직한 정공법으로 영화를 끝까지 밀고 간다. 150억 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와 흥행 배우들이 모두 모인 영화를 연출하면서도 그 어떤 자극적인 MSG를 추가하지 않고 오로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간 황동혁 감독의 뚝심이 돋보인다. 황 감독의 뚝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건 시사회 이후 쏟아지고 있는 호평으로 그대로 드러났다.이날 황동혁 감독은 양보 없이 완성한 '남한산성'에서 가장 양보할 수 었었던 한 가지를 '배우들'로 꼽았다.
"'남한산성'은 이 배우들이 아니었으면 안됐어요. 이 정도 흥행력과 스타성과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어느 제작사나 투자사에서 '오락 영화'와는 거리가 먼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예산을 지원해줬겠어요. 그리고 이 배우들이 아니었으면 영화 속 인물들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을 거예요. 이 배우들이 거절했다면 아마 전 밤낮으로 무릎 꿇고 매달리기라도 했을 거예요.(웃음)"
이어 황 감독은 극중 정세를 객관적으로 보는 통찰력과 나라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지닌 이조판서 최명길을 연기한 이병헌에 대해 "최명길은 이병헌이 아니었음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아크가 큰 김상헌에 비해 이병헌 선배님이 연기한 최명길은 톤 자체의 변화가 크지 않은 캐릭터에요. 같은 톤으로 묵묵하게 상대를 설득해 나가는 캐릭터였죠. 움직임도 크지 않았어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왕에게 이야기하는 게 전부니까요. 자칫하면 밋밋한 연기가 나올 수 있을 만한 인물이죠. 그런 인물을 밋밋하지 않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이병헌 선배님 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영화 속에서 엎드린 상태로 왕의 허리께만 바라보고 말하던 최명길이 왕의 눈을 바라보는 장면은 후반 하이라이트인 딱 한 장면뿐이에요. 그것도 병헌 선배님의 아이디어였죠. 바짝 엎드린 모습으로 러닝타임 내내 같은 말하기 방식으로 왕을 설득하는 최명길이지만 이병헌 선배님은 목소리 톤의 미묘한 변화로 캐릭터에 생명과 설득력을 불어넣었어요.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또한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과 옳다고 믿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 깨를 지닌 예조판서 김상헌을 연기한 김윤석에 대해서도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영화 '추격자'(08, 나홍진 감독) 속 김윤석 선배님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렸어요. 극중 김상헌은 늙은 사공을 베어버릴 정도로 불 같고 단단한 사람이지만 사공의 아이 나루가 나타났을 때 죄책감을 보여주고 흔들리고 인간적인 틈을 보여주는 사람이죠. 그런 모습이 '추격자' 속 윤석 선배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나가고 또 연쇄살인마에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지만 피해자의 어린 딸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기도 했잖아요. 그런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하는 분이 김상헌을 연기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영화 속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꼽히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왕 인조를 가운데 두고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으며 화친과 척화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펼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보는 이들도 숨을 쉴 수 없게 만든다.
"그 장면은 정말 '배틀'처럼 찍었어요. 카메라 두 대를 동원해 두 사람을 따로 잡고 또 동시에 찍었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끊지 않고 가는 걸 원칙으로 했어요. 중간에 실수가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가는 거죠. 열기가 대단했어요. 열기와 몰입이 고조되니까 중간에 대사 실수가 나오면 두 배우분들 모두 실수한 본인에게 화를 내더라고요. 그 4분에 달하는 신을 쉴 새 없이 주고 받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펀치를 주고받거나 랩배틀을 하는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보는 저조차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죠. 연출자로서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 만큼 중요한 인물은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 배우 박해일은 인조를 통해 처음 왕 역할에 도전했다. 황 감독은 두 차례나 출연을 고사했던 박해일을 설득하고 설득한 끝에 '남한산성'에 캐스팅했다."왜 박해일이라는 배우여야만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웃음) 그냥 책을 읽었을 때부터 '인조는 박해일이다' 싶었다. 사실 인조가 굉장히 어려운 인물이다. 역사적으로 평가가 굉장히 안좋은 왕이고 자칫하면 박제화된 인물로 그려질 수 있고 또 조금만 실수하면 역사 미화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소설을 읽었을 때 인조는 능력없고 나약한 왕이었지만 인간적이었다. 그를 좋아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할 수 는 있었다. 그런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해줄 수 있는 눈과 얼굴이 표현했다. 그 사람이 그냥 박해일이어야만 했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라고 할까(웃음) 그래서 해일씨가 거절했을 때도 다시 권유하고 권유했던 건데, 나중에 해일씨가 '누구한테 이렇게 심한 구애를 받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웃음) 나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누군가를 짝사랑하면서도 이렇게 끈질기게 구애 해본 적이 없다. 하하."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송정헌 기자 songs@, 영화 '남한산성'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