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곡절이 많았네요."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많은 사연들이 김선민(26·대구)의 가슴 속에 쌓여있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일들이 참 많았네요."
▶어른이 된 땅, 일본
김선민은 '대구의 이니에스타'로 불린다. 1m68의 단신 미드필더. 작지만 빠르고 뛰어난 기술, 넓은 시야를 갖췄다. 김선민은 대구의 최근 4경기 무패행진(2승2무)을 이끌고 있다.
키가 작아 몸이 빠르고 무게 중심을 빠르게 이동시킨다는 평가다. 지금은 장점이지만, 어렸을 땐 콤플렉스였다. "K리그는 크고 힘 센 선수를 선호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김선민은 2011년 일본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소속팀은 J2 가이나레 돗토리. "일본 스타일에 내가 맞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침 제의도 있어 결심했다."
하지만 일본 생활을 녹록지 않았다. 부상의 연속. 김선민은 "첫 시즌에 잔부상으로 고생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시즌엔 정말 큰 부상을 해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며 "그 때부터 왼발에 15cm 철심을 박고 뛰고 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주위로부터 잘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강점이던 기술도 일본에선 그냥 그런 정도더라. 일본 생활을 하면서 어른이 됐다. 자만심을 버리고 더 낮은 자세로 최선을 다해도 부족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쓴 맛
6개월여의 부상에도 김선민의 잠재력과 기술을 높게 평가한 가이나레 돗토리는 재계약을 제안했다. 김선민도 원했다. 하지만 당시 에이전트가 제동을 걸었다. "에이전트가 네덜란드 오퍼가 있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네덜란드 무대갈 준비가 안 됐다 생각했는데 '이 때 아니면 언제 가겠냐'고 하더라."
에이전트를 믿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적은 지지부진했다. 그 사이 K리그 드래프트 기간도 지나갔다. 이 때 에이전트가 김선민에게 에이전트 계약 연장을 요구했다. 김선민은 "믿고 일본 구단을 떠났는데 일은 진행이 안되고 그 사이 K리그 드래프트도 끝났다. 그런데 그 시점에 에이전트 계약 기간을 늘리자는 이야기를 했다"며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해보겠다고 했는데 잠시 뒤 전화가 와서 '너랑 일을 못하겠다. 그냥 끝내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당시 그의 나이 21세. 고1 때부터 믿고 따랐던 에이전트와의 마지막 순간은 씁쓸했다. "아…. 이게 사회구나."
▶인연과 반전
팀이 없어 모교인 수원공고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그 때 고1이던 임민혁(서울)과 처음 만났다. "공을 너무 잘 차서 연습도 같이 하고 많이 챙겼다."
특별할 것 없던 어느 날, 김선민은 임민혁에게 슬쩍 물었다. "너 누나 있냐." 임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친(남자친구)는?" 임민혁은 확인해보겠다며 전화를 했다. "형. 누나 남친 없데요."
임민혁의 친 누나 임은혜씨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울산현대미포조선 소속으로 내셔널리그를 호령할 때도, 드래프트 통해 입단했던 울산서 부침을 겪을 때도, 안양과 대전 등 2부 리그를 전전할 때도 임은혜씨가 함께 했다. "부상과 주전 경쟁 등 힘든 상황들 속에서도 의지가 참 많이 됐다."
또 다른 인연도 찾아왔다. 조광래 대구 사장이다. 김선민은 "정말 감사하다. 안양 임대시절 조 사장님께서 콜을 주셨는데 최문식 감독님이 계신 대전으로 갔다"며 "그런데 또 1년이 지나 조 사장님께서 다시 한 번 내게 이적 제안을 주셔 감사한 마음으로 갔다"고 했다.
이제 모든 게 잘 풀린다. 어엿한 팀의 주축, 그는 대구의 이니에스타다. 백년가약도 맺는다. 12월 9일 수원에서 식을 올린다. 김선민은 "궂은 날이 가니 맑은 날도 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언제바뀔 지 모르는 게 프로의 삶"이라며 "하지만 흔들리지 않겠다. 내 곁에 사랑하는 인연들과 어떤 고난이든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