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한 달여 남았다. 요즘 같은 따가운 햇살이라면 과일과 곡식이 잘 여물어 풍성한 가을을 맛볼 수 있을 테다. 가을 수확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햅쌀이다. 전남 고흥에서는 이미 7월 말에 햅쌀 수확을 했다는 소식이다. 윤기 흐르는 햅쌀밥이면 별반찬이 따로 없을 정도로 가을 입맛을 부추긴다.
쌀은 밥 말고도 떡, 술 등을 빚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그중 우리 술빚기에는 필수 재료다.
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술이 있다. 막걸리다. 그것도 전주막걸리. 전주막걸리는 이제 고유명사화가 되었다. 단순한 탁주가 아니라 푸짐한 안주가 따르는 전주의 대표 식문화다.
개인적으로 전주를 찾는 이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음식 또한 전주막걸리다. 전주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이만한 음식이 또 없겠기에 그러하다. 전주막걸리는 저렴한 가격에 저녁식사를 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주 사람들의 손맛과 푸짐한 인정까지 듬뿍 느낄 수 있는 메뉴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그야말로 상다리가 휠 정도로 진수성찬이 오른다. 그것도 술병을 추가하면 안주를 두어 차례 더 바꿔주니 수십 종류의 안주를 접할 수가 있다.
계절별로, 집집마다 메뉴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이정도의 술안주가 손님상을 채워나간다.
족발, 계란전, 청어구이, 불고기, 주꾸미볶음, 굴구이, 생선 조림, 김치볶음에 돼지수육, 두부 삼합, 은행구이, 홍합탕, 조기찌개, 삼계탕, 통오징어데침, 버섯볶음,… 20여 가지가 족히 넘는 진수성찬이다.
이게 막걸리 한 주전자의 상차림이라니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술안주들이다. 양도 양이지만 음식의 맛 또한 하나같이 일품요리급으로, 웬만한 집 명절 상차림 못지않다.
이 정도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려주는데 그 가격이 궁금하다. 한 됫박짜리 양은주전자(1병)에 2만500원이다. 이후에는 술만 시킬 수도 있는데, 탁주와 맑은 술을 취향에 따라 택할 수 있다.
전주막걸리상앞에서 다이어트에 대한 결심은 부질없다. 그래도 각박한 세상 한상 가득 차려놓고 벌이는 술자리가 왠지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 포만감을 전해줘 유쾌할 따름이다. 전주막걸리집의 매력이다.
전주 막걸리 집들은 보통 오후 3시쯤부터 시작해서 오후 8시경이면 손님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영업이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진풍경이다.
이처럼 성시를 이루다보니 전주에는 아예 막걸리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전주시내 삼천동, 서신동, 전북대 입구 등지에 막걸리 촌이 자리하고 있다. 수십여 곳이 성업 중인데, 그중 아무 집이나 들어가도 푸짐한 주안상에 술잔을 기울일 수가 있다. 하지만 토박이들이 손꼽는 집들은 늘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외지인들 입장에서는 어느 집을 찾아도 입이 호강할 판인데, 전주 사람들은 고르는 호사를 또 누린다.
전주에는 심야까지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독특한 술집문화도 있다. '가맥'이 그것이다. 말 그대로 '가게맥주'다. 동네 골목 슈퍼마켓에서 파라솔 자리를 내주거나 가게 안 탁자에 앉아서 병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가맥은 전주사람들이 애용하는 2차 술자리 방식인데, 독특한 것은 안주다. 연탄불에 구워낸 도톰한 갑오징어포, 대구포가 전주 가맥의 대표 안주다. 씹을수록 은근히 배어나오는 짭짤 구수한 갑오징어, 대구포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어 인기다.
가맥의 매력은 저렴한 데다, 골목 상권에도 보탬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주 사람들은 가맥을 '상당히 착한 음주문화'라고 자랑한다.
이 무렵 푸짐한 전주막걸리 한 상에, 가맥의 정취를 떠올리자니 술 마시기 좋은 고장, 전주의 가을밤이 그리워진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