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의 수준은 지난 6년 사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11년 1월 이 용 감독(39)이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했을 때 한국이 보유하던 썰매는 없었다. 현재도 한 곳 뿐인 훈련장 겸 경기장은 당연히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 출전하게 되면 다른 국가의 썰매를 빌려 타거나 버린 썰매를 수리해 탔다. 스켈레톤 세계랭킹 2위 윤성빈(23·강원도청)도 중국산 썰매만 타던 시절이 있었다. 썰매가 뒤집어져 타 팀에 조롱거리가 됐을 때도 끓어오르는 화를 삭힐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2014년 10월 국산 썰매 1호 'T-봅슬레이'를 전달받으며 현대·기아자동차와 인연을 맺었고 영국 출신 리처드 브롬리 장비 전문가를 만났다. 대표팀은 식구가 늘어 대가족이 됐다. 감독과 코치 그리고 선수 6명이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현재 국내 코치 11명, 외국인코치 8명, 선수 29명 등 70여명의 선수단이 꾸려져 있다. 이 감독의 한 마디가 그 동안의 설움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예전에는 기성품을 사서 대회에 나갔지만 이제는 맞춤형으로 선택해서 출전한다. 6년 만에 일군 혁신적 발전이다."
스포츠조선은 최근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 중턱에 위치한 가건물에 얼음을 얼려 스타트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의 세 번째 이야기를 전한다.
▶스타트 0.03초를 줄여라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에서 '스타트'가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결과의 절반 이상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한 힘으로 빨리 밀어 썰매에 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아주 간단한 논리에도 썰매를 미는 자세와 탑승 동작 등 복합적인 기술이 녹아있다. 스타트 전담 코치까지 있을 정도다. 이외에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천부적인 재능이다. 달리기가 빨라야 한다. 이 감독은 "주행 능력은 훈련을 하면 어느 단계까지 올라설 수 있다. 그러나 스타트는 다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필요하다. 전적으로 피지컬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스타트를 위한 천부적인 재능이 보이지 않으면 아예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선수가 되는 걸 만류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국 봅슬레이 2인승은 얼마나 스타트 기록을 단축시켜야 평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까. 스타트 기록만 따지면 원윤종-서영우 조는 세계 톱 3 안에 든다. 지난 시즌 기록으로 살펴보면 원윤종-서영우 조는 최근 3년 연속 세계선수권대회 봅슬레이 남자 2인승 우승자 프란체스코 프레드릭(독일) 조에 근소하게 뒤져있다. 적게는 0.01초에서 많게는 0.07초 정도 차이가 난다. 스타트에서 0.03초만 줄여도 나머지 부분은 주행에서 따라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다. 이 감독은 "현실적으로 보면 월드컵이 시작하는 11월과 12월에는 원윤종-서영우 조의 스타트 기록이 1~2위 안에 든다. 좀 밀리면 3위까지 처진다. 체력이 남아있을 때 얘기다. 그러나 1~2월 되면 톱 3~4까지 떨어진다. 그러나 평창에선 자신 있다. 내년 1월 16일 귀국해 한 달 정도는 한국 음식을 먹고 컨디션 조절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00% 수작업인 썰매 '날', 경험의 집약체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꼽는 것 중 하나는 썰매의 '날'이다. 눈이 올 때, 비가 올 때, 눈이 와도 추울 때 등 변화무쌍한 날씨 마다 트랙의 빙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날'을 달리 써야 좋은 기록을 얻을 수 있다. 부러운 건 독일, 라트비아 등과 같은 유럽 국가들이다. 썰매의 '날'은 한 개에 1000만원 수준이다. 비싸다. 그런데 독일은 썰매의 '날'을 수백개~수천개를 보유하고 있다. 어떤 선수들이 올림픽을 위해 4년을 준비하고 또 다른 선수들이 수십개의 날을 사용해 그렇게 모아진 날이 수백개, 수천개에 달한다. 긴 봅슬레이 종목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대표팀은 몇 개의 '날'을 보유하고 있을까. 아직 수십개에 불과하다. 특히 이번 평창올림픽을 위해 새로운 '날'을 신청해놓았다. 이 감독은 "정말 중요한 시기라 마지막으로 지원해달라고 했다. 다만 구입하게 될 10~20개 중 테스트를 거치면 좋은 날은 1~2개에 그친다. 날은 100% 수작업이다. '날이 좋고 나쁘다'는 호불호가 갈린다. 날의 확보는 경험"이라고 전했다.
스위스 출신의 파비오 쉬르 장비 담당 코치의 노하우가 절실하다. 사실 파비오 쉬르는 아버지 한슐리 쉬르와 한국대표팀의 장비와 기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도중 코치진 내부 문제로 쉬르 부자가 팀을 떠나자 부진이 잇따랐다. 이에 대표팀은 다시 쉬르 부자 영입에 착수했고 영국대표팀과 계약이 종료된 아들 파비오 쉬르 영입에 성공했다. 파비오 쉬르 코치는 9월에 입국해 본격적인 장비 점검에 나설 예정이다.
평창=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