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7년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사십 번째 주인공은 가방 디자이너로 또 한번 새로운 도전에 뛰어든 사진작가 김수린입니다.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최정윤 기자] 2008년 10월. 21세 사진작가 김수린은 비주얼 에세이집 '청춘을 찍는 뉴요커'를 발간했다. 뉴욕에서 포토그래퍼라는 꿈을 키우던 한 소녀의 이야기서부터 젊은 아티스트의 일상을 담은 책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문제 없어. 걱정하지 마. 직업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실업자처럼 방황하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렴. 그리고 너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렴.'
9년이 지난 지금도 김수린은 그때 그 마음을 곱씹으며 여전히 꿈을 꾸고, 또 꿈을 가진 청춘들을 응원한다. 방탄소년단, 백예린 등 유명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사진에 음악을 담아내고, 특유의 달콤한 색상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비주얼은 희망과 자유를 노래한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과 감성은 고스란히 작년 10월 론칭한 가방 브랜드 앙트레브(Entre Reves)로 '소장'할 수 있게 됐다. 역시 꿈처럼 사랑스러운 그와, 그의 작품들과 닮아 있기에 더욱 특별하다.(이하 일문일답)
-앙트레브 론칭으로 최근에 더 바빠진 나날을 보내고 있겠다.
▶사진작가 및 디자이너 김수린(이하 김): 그렇다. 사진 작업과 브랜드 사업을 병행하고 나서부터 많이 바빠졌다. 사진 작업만 할 때는 자유롭게 훌쩍 여행도 떠나고 했는데 말이다.
-브랜드 론칭 계기가 따로 있나.
▶김: 촬영을 하다 보면 이것저것 들고 다녀야 할 장비가 많다. 그래서 작업을 할 때는 백팩을 선호한다. 그런데 기존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 중에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잘 없더라. 그래서 내 스타일에 맞는 백팩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정식 오픈은 작년 10월이지만 혼자서 2년간 꾸준히 준비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실물로 옮기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매일 스튜디오 출근 전에 재봉틀을 직접 배우러 다녔다. 딱 가방 하나 만들 수 있는 정도까지만.(웃음) 퀄리티를 위해 소재에 있어 많은 고민을 했다. 표현하고 싶은 원단을 가방용으로 쓰일 수 있도록 가공하는 단계가 필요했는데, 처음 의도가 카메라 장비를 넣어 다닐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드는 것인지라 짐이 많아도 형태가 틀어지지 않도록 오랜 시간 연구했다.
-앙트레브. 브랜드 콘셉트를 소개해달라.
▶김: 늘 머릿속에 지니고 있는 이미지가 있다. 백팩에 이것저것 넣어 꿈을 위해 홀연히 떠나는 모습.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선들이 있는데, 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행복함을 느꼈다. 그렇게 용감하고 두려움 없이 살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Between in Dreams'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지난 전시 타이틀로 정하기도 했는데, 이를 불어로 직역하면 'Entre les reves'다. 여기서 브랜드명을 따왔다.
앙트레브 가방들을 보면 내 자식들 같다. 삶의 심심하고 빈 곳을 채워주는 느낌이다. 홍보용 사진도 따로 찍는 게 아니라 들고 다니면서 멋진 곳이 있으면 그냥 두고 촬영한다.
-요즘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김: 앙트레브 말고 다른 브랜드의 룩북도 많이 찍는다. 또 앨범 자켓 작업도 하고 있다. 원래부터 음악에 관심이 컸다. 신기하게도 한국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 한 일도, 제일 많이 들어오는 일도 음악과 관련된 일이었다. 세상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음원을 미리 듣고서 이미지로 표현하는 일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 2015년 11월 발매된 백예린의 프랭크(FRANK) 앨범 자켓. 기본적으로 그의 음악을 리스팩(respect)하기도 하고, 나의 작업과도 색이 잘 맞는 아티스트이기에 특별하다.
-백예린과 각별한 사이다.
▶김: 프랭크 작업 당시 백예린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20대 초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 애착이 가는 친구다. 어릴 때부터 전시도 하고 책도 내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줬다. 그때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더 유명해지기 위해서 내가 나를 내려놓고 더 대중적인 색을 그려야하는 걸까. 아니면 내 색만 고집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 그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기에 서로 생각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역시 하나의 아티스트로 백예린을 존중하기 때문에 더 잘해주고 싶었다.
-고민의 답은 찾았나.
▶김: 선택의 차이다. 평생의 고민이겠지만. 사진을 찍든 가방을 만들던 나만의 고유의 색은 버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물론 다른 이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니 어느 정도 타협은 있겠지만, 결국에는 남들이 뭐라고 하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대중적이지 않지만 깊이 파고들어 하나의 장르로 개척한다면 소수일지언정 그것을 사랑하는 이들이 생길 거라는 것을 믿는다. 물론 슈퍼스타처럼 살 순 없겠지만, 또 그걸 원하는 사람도 아니다. 영역에 한계를 두지 않는 거다. 무얼 하던 만들고 싶은 걸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5살에 홀로 뉴욕에 갔다. 어떤 생활이었나.
▶김: 본래 성격은 활달한데 비해 낯선 환경에 언어도 서툴다 보니 자연스레 혼자가 됐다. 외롭거나 상처는 받지 않았다. 오히려 어서 빨리 학교를 벗어나 꿈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혼자 꿈꾸는 시간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자양분이 됐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꾸던 꿈이었다. 어릴 적 사촌 동생을 모델로 커튼을 옷으로 걸쳐놓고 찍은 사진이 아직도 있다. 그렇게 일회용 카메라를 가지고 놀던 것이 이제 직업이 된 거다.
-레트로한 빛이 담긴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특별히 추구하는 부분이 있나.
▶김: '예쁜' 또는 '갖고 싶은' 생각이 드는 사진을 찍는 것이 목표다. 예뻐서 발걸음을 멈추고 보게 되는 그런 사진. 모델이 입고 있는 옷이나 립스틱 색깔, 소품 하나하나 신경을 쓰는 편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작업을 소개해달라.
▶김: 아무래도 서울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24살이었다. 타이틀은 'Save a Virgin'. 처녀성을 잃기 전의 눈으로 본 세상, 그 미묘한 차이를 담고 싶었다.
당시 전시를 도와주던 분들이 걱정했다. '너무 선정적이지 않을까'하고. 하지만 반응이 좋았다. 딱 그 당시 제 나이일 때 찍을 수 있던 작품들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의 목표는?
▶김: 사진도 앙트레브도 꾸준히 해나가고 싶다. 무얼 하던 꾸준히 하는 것은 중요하니까 말이다. 또 음악이 하고 싶은데 앨범 작업이 어렵다면 도와주고도 싶다. 전 세계 꿈을 가진 모든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그레 꿈을 그리는 하나의 통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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