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양지윤 기자] 하이힐을 처음 신었을 때가 생각나는가. 높은 굽 때문에 발이 불편했지만 힐을 신은 날에는 언제나 걸음걸이에 자신감이 넘쳤다. 하이힐의 매력이란 포기할 수 없는 한끗 차이의 스타일이자 여성의 당당함을 표현하는 것. '예쁘면 다 용서 돼'라는 말은 '하이힐'에 잘 어울리는 문장이다.
인간이 될 수 있다면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어 줄 수 있다는 인어공주처럼,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내 발 건강보다 소중한 게 하이힐이다. 하이힐은 단순한 패션 소품을 넘어 여성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패션 아이템이 됐고, 여성의 당당함은 그 뾰족한 굽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세계적인 섹시 스타, 마릴린 먼로는 말했다.
"하이힐을 누가 발명한지 모르겠지만, 모든 여성들은 그에게 감사해야 해요."
하지만, 우리가 감사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하이힐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하이힐 장인들이다. 하이힐 '창시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하이힐을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만들어준 이들은 기억할 수 있다. 하이힐을 '집대성'한 그들, 그 두 번째 주인공은 크리스찬 루부탱이다.
1964년 파리에서 태어난 크리스찬 루부탱은 어려서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신발 공장에서 기능공으로 일하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열 일곱 살 때, 우연히 보게 된 클럽 쇼걸들의 글래머러스함과 하이힐의 섹시함, 열정에 영감을 얻어 본격적인 슈즈 디자이너로의 길을 가기로 마음 먹는다.
이 경험은 그가 빚어낸 섹시한 구두 디자인의 시초가 된다. 루부탱은 스케치북 들고 뮤직홀을 돌아다니며 쇼걸들의 뎃생을 했다고 한다. 뭇 남성들은 쇼걸을 눈요깃거리로 봤지만 그는 이 현장에서 자신의 미래를 구상했다.
열 여덟살에는 로마에 위치한 '죠르단'에서 기술적인 구두제작 기본기를 배운 후, 1988년 로저 비비에의 어시스턴트 생활을 시작한다. 크리스찬 디올의 슈즈를 담당했던 '찰스 쥬르당'에서 처음 '디자이너'로서 일을 시작했고 이후 프리랜서로서 샤넬, 이브생 로랑 등과 함께 작업했다. 어시스턴트 생활을 시작한 지 3년 만인 1991년 10월, 자신의 첫 부티크를 오픈하고 컬렉션을 발표한다.
크리스찬 루부탱은 1991년부터 2000년대까지 날렵한 코와 힐이 특징인'스틸레토 힐'을 주로 제작했다. 12㎝나 되는 높은 굽이 특징인 스틸레토 힐은 당시 상당히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루부탱의 스테디 셀러인 이 힐은 아찔한 높이에도 불구하고 착화감이 뛰어나 많은 여성에게 인기를 끌었다. 힐을 감싸는 가죽이 매우 부드러워 몇 번만 신어도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마냥 주인의 발에 꼭 맞춰졌다. 다리를 아름답고 길어 보이게 하면서도 발이 불편하지 않은 하이힐, 이 두가지를 다 갖췄으니 궁극의 하이힐 아닌가.
▲독보적인 시그니처 '레드 솔(Red Sole)'
루부탱 제품들은 각기 디자인이 다르지만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 바로 크리스찬 루부탱의 시그니처인 '레드 솔(Red Sole)' 빨간 밑창이다. 루부탱 구두는 다른 브랜드 제품보다 뒷태가 섹시하다. 여기에는 밑창을 언제나 레드 컬러로 칠한 것도 한몫 한다. 그저 붉게 칠한 것 뿐인데 이 포인트 컬러가 뒷태를 더 관능적으로 보이게 한다.
사실 레드 솔은 루부탱의 치열한 연구 개발 끝에 나온 것은 아니다. 여성의 나체를 연상하며 구두를 만든다는 크리스찬 루부탱이었지만 그는 뭔가 강렬한 한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고민에 빠진 어느 날 그의 사무실 조수가 붉은색 매니큐어를 바른 것을 보게 됐다. 루부탱은 즉시 매니큐어을 빌려 구두의 밑창을 붉게 칠했다. 깔끔한 구두 라인에 강렬하게 대비되는 붉은 색은 그에게 충격적일 만큼 아름답게 다가왔다. 연구개발보다 그의 천재적인 감각이 레드솔을 만들어낸 셈.
루부탱은 원래 한 시즌만 빨간색을 사용하고, 다음 시즌에는 반대색깔인 초록색을 칠하기로 계획했다고 한다. 그러나 레드솔 구두를 신은 여성들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이 뜨겁게 올라오자 레드솔은 루부탱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성공 보증수표가 됐다.
2007년 3월, 레드 솔의 붉은 색을 미국특허청 상표로 출원했다. 일정 기간 동안만 독점권을 허용하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권과는 달리 '상표권'은 주기적인 갱신을 통해 무기한으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색채상표로 등록된다는 것은 해당 색채의 독점 사용에 대한 영속적인 권리를 확보한다는 걸 의미한다. 루부탱의 레드솔 상표권은 2008년 1월 미국 특허청에 등록돼 공식적으로 권리를 인정받게 됐다.
▲스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루부탱
2009년 제니퍼 로페즈는 'Louboutins(루부탱)'이라는 곡을 발표, 루부탱과 그가 만들 레드솔 하이힐을 칭송한다. 이 노래 속 가사는 주인공 여성이 남자친구와 헤어졌지만 루부탱을 신고 자신감을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제니퍼로페즈의 '루부탱 찬가'가 나올 만큼 그의 제품은 수많은 여성들의 자신감을 북돋는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했다.
제니퍼 로페즈 뿐 아니라 드레이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제이지 등 여타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음악 속에도 루부탱이 등장한다. 루부탱이 가수들에게 홍보를 부탁한 건 아니다. 이미 이 곡들이 나오기 전부터 루부탱은 여성들의 고전으로 통했다.
크리스찬 루부탱의 슈즈가 유명 브랜드 대열에 합류하게 된 건 모나코 공주 캐롤라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루부탱이 프랑스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부티크를 열었을 때, 첫 번째 고객이 바로 캐롤라인 공주였기 때문이다. 그는 루부탱 제품에 어마어마한 애정을 쏟았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루부탱 구두는 비욘세, 리한나, 미란다커, 빅토리아 베컴등 영향력 있는 패셔니스타들의 공식 석상에서 숱하게 노출되는 것은 물론 파파라치 이미지 속에서도 노출된다. 서구 스타들이 이 구두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해외스타 뿐 아니라 전도연, 손예진, 김고은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배우들 또한 크리스찬 루부탱을 즐겨 신는다. 이들 세 여배우의 구두 디자인은 각각 다르지만 루부탱만의 감각적인 디자인 곡선과 시그니처인 레드솔의 섹시함은 동일하다.
▲ 크리스찬 루부탱의 누드(NUDE) 컬렉션
루부탱은 인종을 초월한 캠페인 컬렉션도 진행했다. 서구 사회에서 '누드'라는 말 뒤에는 아이보리, 백인의 피부 색이라는 인식이 주를 이뤘다. 황인종의 샌드 컬러, 흑인의 브라운 컬러 등은 '누드' 컬러로 정의되지 않았다.
루부탱은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2015년, '7가지 살색'을 발표한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적 배경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스킨 컬러를 선보인 것. 가장 옅은 포세린 컬러부터 진한 딥 초콜릿 컬러까지, 모든 여성들은 이제 루부탱에서 본인의 피부색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누드 톤을 찾을 수 있다.
누드톤 힐은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며, 어디에나 무난하게 매치할 수 있어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필수 아이템이다. 루부탱은 기존에 '일관적'으로 또는 '일방적'으로 적용된 '누드톤'을 사려깊은 누드 컬러로 바꿨다.
루부탱은 여성화 뿐 아니라 남성화, 패션잡화 최근에는 코스메틱 시장까지 영역을 확장시켰다. 크리스찬 루부탱은 패션잡지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여자가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도구로 삼는다는 점에서 뷰티라는 영역도 신발과 같은 DNA를 지녔다고 생각한다"며 "준비과정은 물론 어려웠지만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걸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흥미로운 일"이라고 전했다.
"여성은 모두 아름답습니다. 여성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사랑받아 마땅하며, 꿈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자신 안에 꿈을 지닌 여성의 눈에는 광채가납니다. 나는 그것을 볼 수 있어요. 그런 그녀들에게 내가 만든 신발을 신겨 준다는 일은 너무나 가슴 벅찬 일입니다."
100년이 넘은 명품 브랜드 가운데서, 불과 30년이 되지 않은 구두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수많은 스타들과 전세계 여성들을 사로잡은 크리스찬 루부탱의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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