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의 '독립적' 정관 개정 강행과 관련, 상부 기관인 대한체육회(이하 체육회)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관 승인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축구협회가 1일 오후 축구회관에서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협회 독립성 제고를 위한 정관 개정을 공식화한 직후다. 축구협회는 "국제축구연맹(FIFA) 정관 14조 '회원국 협회의 의무사항' 반영 필요성에 따라 FIFA표준정관의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협회 정관을 비준하고, 독립적으로 업무를 관리해 협회의 업무가 제 3자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정관 개정"이라고 밝혔다. 체육회는 FIFA 정관에 근거한 축구협회의 독자 행보에 "예외는 없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의 입장
축구협회는 FIFA 산하기관이자 대한체육회의 정가맹 단체다. 기존 대한축구협회 정관에는 회장을 포함한 협회 임원을 선출할 경우 체육회의 승인을 받도록 돼있다. 체육회의 지침이나 지시사항을 준수해야 하며 연도별 사업계획이나 예결산 등 주요 사항을 보고해야 한다. 독립성을 요구하는 상위 국제경기연맹(IF) FIFA 규정과 상충된다.
FIFA는 각국 축구협회에 정부나 외부 단체, 제3자의 간섭 없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고 운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쿠웨이트 축구협회는 2015년 10월, 정부 개입을 이유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현재 징계중이다.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과테말라, 말리도 같은 이유로 FIFA의 징계를 받은 바 있다.
2023년 아시안컵 유치를 추진중인 축구협회는 그동안 정부 및 외부 기관의 부당한 간섭은 없었지만, 정관상 '독립성'이 부족한 것으로 비쳐질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관 개정을 통해 FIFA 표준정관의 차별금지 사례, 징계 및 포상, 재심위원회 설치 등을 추가하는 한편, '체육회 회원 가맹', '지시사항 준수', '임원 인준', '관리감독(감사, 징계)' 등 체육회와 관련된 4가지 부분의 규정을 삭제했다.
회장 등 임원의 임기 조항도 '4년 임기, 연임 가능, 이후 공정위원회 심의에 따른다'는 체육회의 정관 대신 'FIFA의 3회 연임' 정관을 반영했다. 정관이 승인되면, 축구협회장은 체육회 가맹단체장 중 유일하게 사실상 3회 연임, 12년 이상의 임기를 '자동보장'받는다. 또한 회장 선출 방식도 기존의 선거인단 과반수 득표에서 출석 선거인단 과반수 득표로 완화했다.
축구협회는 정관은 개정하되 '체육회와의 국내 업무관계는 현재와 같이 적극 협조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
정관 개정을 앞두고 체육회와 물밑 논의도 오갔다. 체육회가 7월 중순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축구협회는 1일 대의원총회를 통해 개정을 강행했다.
▶대한체육회의 시선
체육회 관계자는 2일 "체육회 회원 종목 단체에 어떤 예외도 있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체육회 관계자는 "축구협회는 '정부, 외부단체 간섭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FIFA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정부가 축구협회장을 임명하고, 정치, 종교가 축구에 개입하는 이슬람 국가나 스포츠 후진국 사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절차가 자율적이다. 문체부나 체육회가 축구협회에 간섭한 적도 없고, 간섭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축구협회는 체육회의 정가맹단체, 회원사이자 FIFA의 회원사다. FIFA와의 관계만큼 100년 가까이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함께해 온 대한체육회 회원사로서의 관계도 중요한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축구협회는 체육회 회원사의 권리를 누리는 만큼 규정과 의무도 지켜야 한다. 체육회에 대의원도 파견하고, 정부 예산도 받고, 올림픽, 아시안게임, 전국체전도 나가고, 축구선수들이 대학도 간다. 권리가 있으면 의무도 있다. 회원으로서 지켜야할 룰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체육회는 그동안 축구협회에 자율성을 부여했다. 간섭한 적이 없다. 인준, 승인 과정은 비도덕적 인사나 행정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일 뿐 실제로 시행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축구협회를 회원사로서 지원해 왔다. 축구협회가 체육회 가맹단체이자 공적 단체이기 때문이다. 파주 트레이닝 센터도 국가가 준 것이다. '공익적 의무를 하는 법인'이기 때문에 스포츠 토토 기금도 나온다. 모든 기본적인 지원의 요건은 축구협회가 공적인 단체라는 데서 출발한다. 체육회와 무관한 임의단체, 독립적 단체라면 지원할 이유도 없다"고 설명했다.
"축구협회에만 예외를 허용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의 공식 입장은 강경하다. 체육회는 현재 대한축구협회의 개정 정관을 면밀히 검토중이다. 체육회가 검토 의견을 담은 공문을 발송하면, 대한축구협회는 이 공문을 첨부해 문체부에 정관 개정을 정식 요청하게 된다.
▶문체부의 시선
정관 개정의 결정권은 결국 문체부로 넘어간다. 이와 관련, 문체부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명확한 입장을 말하기 어렵다"며 당혹감을 표했다. 문체부 측은 "섣불리 입장을 정하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다. 정관 개정의 배경에는 FIFA와 IOC간의 힘 겨루기가 있다. FIFA가 정부나 제3의 기관(대한체육회)에 예속돼 있는 정관을 걷어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이 있다. 정부가 대한체육회를 통해 축구협회에 지원하는 국고가 상당하다. 또 대한체육회에 64개 회원종목 단체가 있는데 그 회원종목 단체는 대한체육회 종목 단체이기도 하지만 IF와의 관계가 있다. 섣불리 말하기가 참 어렵다"며 신중을 기했다.
"가장 좋은 방안은 대한축구협회와 대한체육회가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정관 변경 승인 요청이 온다고 해서 대한체육회를 무시하고 승인해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FIFA와 축구협회의 협의와 조율도 필요하다. 정치, 종교의 영향을 받는 이슬람국가인 쿠웨이트와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면서 "FIFA의 징계가 우리의 경우에도 해당되는지, 상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종합적 검토를 해야 한다. 잘 조율해서, 협의를 잘 이끌어내도록 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노주환 nogoon@sportschosun.com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