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원 지원, 한국과 중국의 민간 교류, 전용 경기장 및 인프라 투자, e스포츠 브랜드인 WEGL(World Esports Games & Leagues) 출범. 아이덴티티 엔터테인먼트가 e스포츠를 위해 그리고 있는 그림들이다.
아이덴티티 엔터테인먼트가 전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e스포츠를 위해 한국에서 과감한 투자와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부분에서 박수를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색다른 방식으로 대회를 열고, 유저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형태로 매치를 만드는 등 커뮤니티나 농담처럼 이야기하던 것들이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생겼다.
문제는 시간이다. 아이덴티티 엔터테인먼트는 WEGL 시즌1의 대미를 '지스타 2017'에서 연다고 결정했다. 지스타 2017까지 남은 시간은 120여일로 이제 3달이 채 남지 않았다.
아직 어떤 종목으로 대회를 진행한다고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WEGL을 이루는 '프리미어', '슈퍼 파이트', '게임스타 코리아'를 모두 진행해야 한다. 동시에 대회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참가자의 모집, 룰의 공지, 대회의 진행 등이 이루어지기에 상당히 촉박한 시간이다.
대회가 진행되기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은 아니다. 여러 e스포츠를 경험한 인력들이 새롭게 세팅되었고 충분한 준비와 계획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WEGL이란 새로운 브랜드의 런칭인 만큼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준비를 하는 것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덴티티 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 낫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고 이를 단계적으로 알리고 쌓아갈 필요가 있다.
'게임 스타 코리아'의 경우 오디션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를 모집해야 하고 트레이닝, 서바이벌, 합숙 등 프로듀스 101이나 아이돌학교와 같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방식이다. e스포츠 전문가들의 지원으로 팀을 창단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잘되면 상당히 좋은 그림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e스포츠 모델을 만들 수 있는데, 아직 종목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3개월이란 시간 안에 모든 것들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프리미어 역시 마찬가지다. 종목별로 리그를 구분해 선수를 선발한다는 목표다. 2017년에 2개의 대회 이상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 대회를 확장해 나가겠다는 설명이다.
의도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나, 국가대표의 선발이란 중요한 타이틀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진행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한 리그의 희소성을 위해 참가자들에게 메리트를 제공해야 하고, 목표 의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기간의 대회 보다 능력 있는 선수들의 리그를 유지하는 방향이 보다 적절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는 부분은 '슈퍼 파이트'다. UFC에서 착안해 유저들이 관심이 있거나 흥미로운 매치를 만들어 e스포츠 대회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종목만 결정된다면 매치의 성사는 빠르게 가능할 수 있는데, 과연 어떤 선수들을 매치에 선보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만약 리그오브레전드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다는 가정 하에 유명 팀의 선수들이 대회에 나올 수 있을지 미지수다. 매년 지스타에서는 한국 e스포츠협회 주관의 케스파컵이 개최되고 있는데,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팀으로 대회를 구성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스타크래프트 종목이라 할지라도 선수들의 참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WEGL이 현실적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종목 선정에 어려움이 있고, 선정 이후 선수들을 모아야 하고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유저들에게 알릴 방법도 필요하다.
때문에 굳이 1회 대회를 지스타 2017에서 개최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500억원의 투자를 결정한 만큼, 전용 경기장을 준비하면서 준 프로게이머나 지망생들에게 관심을 얻은 후 스타 만들기를 시작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덴티티 엔터테인먼트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구단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오픈형 e스포츠 플랫폼인데, 단기간에 진행될 경우 결국 경험이 있거나 은퇴했던 선수들의 복귀 정도가 최선의 방법일 수밖에 없다.
무엇 보다 1회 대회가 가지는 의미는 중요하다. 앞으로 대회에 참여하고 싶은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에게 충분한 효과가 비전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급하게 진행될 경우 기존의 대회로 눈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e스포츠는 팬들과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스포츠는 시간과 믿음 그리고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돌다리도 두드려보며 건너야 하는데, 현재 아이덴티티 e스포츠 사업은 다소 급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더할 바 없겠지만 첫 대회의 시작이 잘못되면 앞으로의 그림이 다소 어긋날 수 있기에, 조금 더 준비 과정이 있어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새로운 e스포츠 브렌드와 모듈을 만들어 가는 것이고 경쟁 사업이 아니기에 급할 필요가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게임인사이트 최호경 기자 press@gam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