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22일)과 대서(23일)를 지나며 삼복더위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우리 조상들은 여름철 복달임으로 입맛 돋우는 제철음식들을 찾았다. 물론 자신이 깃들어 살아가는 터전의 식재료가 그 원천이다.
덕유산 자락의 고랭지대로 한여름 인기 피서지가 되고 있는 전라북도 무주에도 맛깔스런 여름 별미가 있다. 어죽(漁粥)이 그것이다.
무주의 음식은 청정자연 환경을 곧잘 담아내는 것들이다. 덕유산과 금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서 나는 '웰빙푸드'가 쥬류를 이룬다. 구천동 쪽에서는 산채 요리가 흔하고, 내도리 강변과 무주읍에서는 민물고기가 별미다. 그중 동자개, 메자, 꺽지, 꾸구리 등 천렵으로 건져낸 민물고기에 파, 깻잎, 쌀 등을 넣고 푹 끓여낸 '어죽'이 여름철 대표 별미로 통한다.
냉장고 보급이 뜸하던 시절 내륙 산간지방에서 비린 것을 맛 볼 수 있기로는 자반, 굴비, 젓갈류가 고작이었다. 따라서 맑은 계류에서 갓 잡은 민물 잡어는 이들 지역에서는 근사한 식재료에 다름없었다.
어죽은 말 그대로 물고기 죽이다. 손질한 민물고기를 고아 뼈를 발라낸 뒤 불린 쌀과 수제비를 떼어 넣고 끓인 죽이다. 민물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일단 맛을 보고 나면 부드러우면서도 얼큰 고소한 맛에 매료돼 다시 찾는 보양식이다. 무주의 어죽은 영동, 금산, 함양 등 여타 지역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유독 빠가사리(동자개)를 많이 쓴다. 빠가사리는 물에서 잡아 올릴 때 '빠각빠각' 소리를 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는데, 국물 맛이 좋은 물고기다.
일명 '자개미'로도 불리는 동자개는 물 흐림이 느린 강바닥에 주로 산다. 때문에 무주에서는 금강 상류 물줄기가 완만하게 휘돌아나가는 내도리 강변에서 곧잘 잡힌다. 어른 손가락 굵기에 길이는 20cm 남짓. 얼핏 큰 미꾸라지 크기이지만 주둥이가 넓적한 게 다르다. 매운탕으로 끓이면 시원한 국물 맛에 야들야들 고소한 육질이 별미다.
어죽집 주인들에게 죽거리용으로는 잘잘한 고기가 더 반갑다. 큰놈들 보다 더 맛있을 내기 때문이다. 특히 죽을 끓이는 데에는 빠가사리가 최고다. 잡고기만 쓰면 틉틉하고 비린 맛이 더해지는데 빠가사리가 이를 상쇄시켜준다는 것이다. 무주의 어죽은 얼큰 매콤한 게 목넘김 부터가 부드럽다. 죽이라고 쌀알이 으깨지기보다는 씹히는 식감도 있다. 특유의 비린내도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간혹 풍기는 생선 맛 정도야 어죽을 맛보는 이유쯤으로 여길만하다.
무주에서도 어죽을 곧잘 끓인다는 맛집의 비법은 크게 두 가지다. 물고기를 골고루 섞어 쓰고, 핏물을 잘 빼내는 것이다. 비린내를 잡는 데에는 핏물 제거가 필수다. 민물고기는 싱싱할수록 비린내가 강하다. 따라서 어죽에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잡아 바로 끓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무주의 어죽에 따라 나오는 밑반찬은 단출하다. 덕유산자락에서 나는 것들로 배추김치, 물김치, 양파-오이-풋고추에 된장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무주 어죽집 주인의 훈김 도는 얘기는 그 무엇보다도 감칠맛 나는 조미료에 다름없다.
"벨 볼일 없는 죽 한 사발 먹을라고 여그까지 찾아와 섰는 것을 보면 고마우면서도 미안시럽기까지 합니다. 맛있다고 잘 먹는 손님들을 보면 겁나게 행복하지요."
삼남지방의 개마고원이라고 불리는 전북 무주는 열대야가 없는 곳이다. 덕유산자락의 차가운 계곡수에 발을 담그고 금강지류에 나가 천렵을 즐길 수 있으니 천혜의 피서지에 다름없다. 거기에 따뜻한 인정까지 듬뿍 들어 있는 어죽 맛을 보게 된다면 이만큼 흡족한 여름휴가가 또 없을 것이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