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서 경기를 다시 보니까 1분에 한번씩 공이 오던데요."
김호준(제주)은 활짝 웃었다. 22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포항과의 2017년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3라운드(3대2 제주 승)의 히어로는 단연 안현범이었다. 안현범은 2-2로 끝날 것 같던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전까지 무너져 가던 제주를 온몸으로 지탱한 것은 김호준이었다.
제주는 전반 8분 마그노와 14분 이찬동의 연속골로 앞서나갔다. 제주의 손쉬운 승리로 마무리될 것 같던 경기는 전반 추가시간 이찬동이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며 요동쳤다. 제주는 전반 46분 양동현, 후반 34분 손준호에게 골을 내주며 동점을 허용했다. 기세가 오른 포항은 맹공을 퍼부엇다. 하지만 제주에는 김호준이 있었다. 후반 35분 이후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 9명의 선수들을 대신해 그야말로 '미친 선방'으로 제주의 골문을 지켰다. 후반 45분 양동현의 다이빙 헤딩을 막아낸 것은 이날 활약의 백미였다. 김호준의 맹활약 속 제주는 안현범의 극적인 골로 귀중한 승점을 챙겼다. 김호준은 "집에 가서 다시보기로 경기를 다시 봤다. 정말 1분 마다 공이 오는 느낌이더라. 무실점을 하지 못했지만 팀이 이겨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이어 "숫적으로 열세인 경기여서 그저 속으로 오는거 하나씩 하나씩 막아보자고 다짐했다. 하나둘씩 막다보니까 분위기를 탔다. 운도 조금은 따랐다"고 했다.
말 그대로 귀중한 승리였다. FA컵,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의 연이은 탈락과 아시아축구연맹 징계로 주춤하던 제주는 12일 전북전 승리 이후 조금씩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휴식기 전 경기였던 포항전은 본격적인 상승곡선을 그릴 수 있느냐 하는 기로였다. 조용형 다음 가는 최고참 김호준의 역할이 중요했다. 김호준은 "사실 이전까지 어수선한 분위기로 시합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포항전에서 승리할 경우 침체에서 완전히 탈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될거라고 생각했다. 경기 전 후배들에게 '연승을 하고 편안한 휴식기를 보내자'고 강조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잘 나왔다"고 했다.
사실 김호준에게 올 시즌은 쉽지 않은 시즌이 될 수도 있었다. 지난 시즌 후 몸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골키퍼인 이창근이 새롭게 영입됐다. 김호준은 언제나 처럼 묵묵히 시즌을 준비했다. 김호준은 "겨울 동안 훈련하면서 안좋은 부분도 있었지만 다행히 부상 없이 몸을 잘 만들었다"고 했다. 경험에 좋은 몸상태까지 더하게 된 김호준은 올 시즌에도 넘버1 골키퍼의 자리를 놓치 않았다. 김호준에게 '후배' 이창근의 존재는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된다. 김호준은 "창근이랑 9살 차이가 난다. 하지만 배울 것도 많다. 경쟁하면서 좋은 경기를 하려고 한다. 요즘 처럼 더울때 경기를 나눠 뛸 수 있어서 몸관리도 더 편하다"고 했다.
2010년 서울에서 제주로 이적한 김호준은 어느덧 팀의 터줏대감이 됐다. 처음에 제주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걱정이 많았다. 그라운드 밖은 시골 같았고, 경기장에서는 패배가 익숙했다. 하지만 모든게 달라졌다. 김호준은 "멤버도, 구단도, 관중들도 다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 이제 완전히 프로팀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고 했다. 2010년 준우승 당시 보다 더 좋은 멤버로 무장한 올 시즌, 김호준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그는 "FA컵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놓쳐서 아쉽지만 아직 리그가 남았다. 후배들에게도 '불가능하지 않다. 아직 우리 손안에 있다'고 자주 말한다. 급하지 않게 꾸준히 승점을 따다보면 좋은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호준은 현재 K리그에서 263경기를 소화했다. 제주가 우승을 향해 꾸준히 발전하면, 그가 그토록 꿈꿨던 300경기에도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김호준은 그때까지 제주의 골문을 든든히 지키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