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순방 직후인 지난 3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청와대에서 접견했다. 30분의 독대 후 바흐 위원장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유승민 IOC선수위원,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배석한 가운데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직접 'IOC위원'을 언급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후보들이 많이 있다. 현재 한국의 스포츠 기여도를 감안해 한국의 IOC위원 자리를 늘려주시면 어떻겠느냐"라는 취지의 제안이었다.
이기흥 회장은 6월 16일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대표 자격으로 IOC에 입후보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6월 '5선'에 성공한 조정원 WTF 총재는 2015년 이미 국제경기단체(IF) 대표 자격으로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 이런 가운데 대통령이 IOC수장에게 직접 'IOC위원 자리'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이건희 IOC위원(삼성전자 회장)이 와병중이고 유승민 IOC선수위원이 홀로 고군분투하는 상황 속에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국제 스포츠 외교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그러나 9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신규 IOC위원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메인 이슈는 '2024년 2028년 차기 올림픽 개최지 선정'이었다.
'IOC위원 프로젝트'는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전례없는 '쾌속' 의사결정 속에 '도전'을 결심한 이기흥 회장의 IOC위원 출마에 대해 체육계 안팎에는 설들이 분분하다. 정부 교감설, 셀프 추천설이 회자되는 가운데 당선 가능성에 대한 긍정, 비관론이 공존한다. 현 시점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IOC위원 당선 가능성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시선1: "당선 가능성 유력"
이기흥 회장은 3일 청와대 회동 후 바흐 위원장을 인천공항 출국장까지 배웅했다. 이 회장은 사흘 후인 6일 진천선수촌 기자간담회에서 "바흐 IOC 위원장이 9월에 열리는 IOC 총회 일정이 빡빡하니 이번에 논의하지 못하면 다음 총회 때라도 한국 IOC 위원 문제를 상의해보자고 했다"고 밝혔다.
IOC위원의 정원은 총 115명이다. 개인 자격 70명, IF 자격 15명, NOC 자격 15명, 선수위원 15명 등으로 구성된다. 현재 IOC위원은 67개국 95명, NOC 자격은 2명의 결원이 있다. 이 회장은 NOC 자격으로 도전한다.
IOC위원이 되려면 IOC위원 선출위원회(IOC Members Election Committee)가 적격성을 심사하고 IOC집행위가 최종후보를 총회에 상정한 뒤 총회에서 과반 이상을 득표해야 한다. 총회 1개월전 서면제안서가 제출돼야 하는 절차상 9월 페루 리마 IOC 총회에서의 논의는 불가능하다.
9월 총회 다음은 내년 2월 '평창'이다. 9월 리마 혹은 12월 로잔에서 열릴 집행위에서 IOC위원 후보로 추천받고, 내년 2월 평창올림픽 현장에서 열리는 IOC총회에서 당선을 노리는 로드맵이다. 한국 IOC위원 자리를 늘리는 데 '개최국 프리미엄'이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타이밍도 나쁘지 않다. IOC규정 제16조(위원) 제1항 제7호 등에 따르면, IOC위원은 8년 임기로 선출되며, 1회 혹은 수회 재선될 수 있다. 이 규정에 따라 기존 위원들에 대한 재심사가 8년마다 이뤄진다. 이에 따르면 탈세 혐의에 연루돼 스스로 물러난 후 2010년 2월 복권된 이건희 IOC위원(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재심사는 2018년 2월, 평창 IOC집행위원회에서 진행된다. 이 회장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일각에선 이 자리를 계승할 새로운 한국인 IOC위원 당선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문 대통령이 바흐 위원장과의 만남에서 직접 IOC위원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만큼 정부의 지지도 관건이다. 이 회장은 출마 과정에서 "정부와의 교감"을 언급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이자 정관계에 '마당발'로 통하는 이 회장은 현 정부와 관계가 좋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인 3월 2000여 명의 체육인들이 결집한 대한민국체육인대회를 개최, 체육인들의 지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만약 내년 평창에서 새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지난해 통합체육회장 당선 때와 같은 '천운'이 따른다면 당선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선2: "당선 가능성 희박"
이 회장의 IOC위원 출마는 '국내'의 화두일 뿐 세계 스포츠계의 이슈는 아니다. 문 대통령의 '한국의 IOC의원 몫을 늘려달라'는 제안에 바흐 위원장은 "한국의 기여도를 감안하겠지만, 현재로서는 IOC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에둘러 답했다. 'IOC 규정' '아젠다 2020'을 배제한 채 특정국가를 배려할 수 없다는 원칙론이다. IOC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에만 굳이 한자리를 더 늘려줄 명분은 사실상 없다.
2014년 12월 제127회 모나코총회에서 확정된 '아젠다 2020'에서 제시한 후보 추천 기준은 '전문성' '지역적 균형' '성별 균형' 등이다. IOC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알 수 있다. 이 기준에 근거하면, 꼭 한국, 꼭 이 회장이어야 할 이유는 찾기 힘들다. 법률, 의료, 정치, 마케팅 등 IOC 업무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스페셜리스트, 아프리카 등 소외된 지역의 인사, 양성 평등을 위한 여성 인력 등을 우선시한다. 단순히 국가의 스포츠 기여도로만 결정되는 자리가 아니다. 스포츠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독일도 IOC위원은 바흐 위원장을 포함해 2명 뿐이다.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이들의 근거다.
이번 로잔 집행위에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투명성, 청렴성을 담보하는 IOC의 요직인 윤리위원장에 내정됐다. 바흐 위원장이 국제 외교무대의 동지였던 반 전 총장을 윤리위원장으로 지명하며 IOC로 영입한 마당에, 한국에 또 한 자리를 늘려줄 명분은 오히려 약해졌다는 관측도 있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NOC 자격의 도전이지만, IOC위원은 한국 대표가 아닌 IOC의 대표다. 올림픽 정신을 전세계에 홍보하는 일이 주임무다. 1997년 대한근대5종연맹 부회장을 시작으로 대한카누연맹,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역임한 이 회장은 체육계, 종교계, 정치계를 넘나드는 '마당발'로 통하지만, 국제무대에서 검증된 적이 없다는 점은 핸디캡으로 꼽힌다. 김운용 전 IOC위원이 IOC 수석 부위원장까지 오르며 스포츠 외교사에 한획을 그을 수 있었던 데는 유창한 영어실력이 큰 몫을 했다. 리우올림픽 현장에서 투표로 당선된 유승민 IOC선수위원이 영어소통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IOC총회 직후 어학연수부터 시작한 이유다. 단순한 명예직이 아닌 IOC의 정신을 전세계에 설파할 스포츠 외교관을 뽑는 자리다. 20년간 체육계에 몸 담으며 런던올림픽 선수단장 등을 역임하고, 80여개 국을 누빈 이 회장의 친화력은 검증됐지만, 갖은 수사가 넘쳐나는 스포츠 외교가에서 국내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시선이다.
▶시선3: '변수'도 있다?
조정원 WTF 총재의 출마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조 총재는 6월 무주세계태권도선수권에 장웅 북한 IOC 위원을 초청하며 국제적 외교력을 과시했다. 1947년 12월 20일생인 조 총재는 국제경기단체 대표 자격으로 지난 2015년 IOC위원 도전을 선언한 바 있다. 9월 리마총회, 12월 로잔 집행위까지는 만70세를 넘지 않지만, 내년 2월 평창 총회에선 만70세를 넘게 된다. '아젠다 2020'의 IOC위원 정년규정이 어떻게 적용될지가 관건이다. '아젠다2020'은 70세 정년과 관련해 'IOC 집행위의 제안에 따라 총회에서 IOC위원의 정년을 1회에 한하여 최대 4년 연장할 수 있으며, 정년 연장은 최대 5명에게만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IF 대표가 IOC 위원이 되면 70세 정년과 관계없이 위원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기존 위원의 정년 연장에 대한 규정으로 활용된 적은 있으나 후보자격 규정이 아니어서 논란의 여지는 있다. IF 몫의 IOC위원은 현재 5석이 비어 있다.
NOC, IF 외에 국제적 인지도와 전문성을 갖춘 개인 자격의 도전도 가능성은 열려 있다. '아젠다 2020'은 당초 국가별 1명으로 제한했던 개인자격 IOC위원 입후보를 'IOC 총회에서 다수결에 따라 최대 5명의 IOC 위원에게 국적 규정에 대한 예외를 부여한다'는 조항을 통해 문호를 넓혔다. 9월, 12월 2번의 집행위까지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개인적인 역량을 갖춘 후보들이 도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문체부 관계자는 "이기흥 회장, 조정원 총재 두 분 다 IOC위원에 도전할 수 있다. 정부의 입장은 누가 되든지 가급적이면 많은 체육인들이 국제 스포츠계에 진출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대통령께서도 바흐 위원장과 회동한 자리에서 '좋은 분들이 많으니 많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면서 "정부가 특정 인사를 염두에 둔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