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우리가 깃들어 사는 터전의 내력과 문화적 가치를 음미할 수 있어서 더 매력 있다. 특히 우리 전통 건축물의 품격과 효용은 여름철에 그 가치가 더 빛난다. 한옥의 대청마루며 누각은 한여름 무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최고의 기능을 지녔다. 그래서 고택과 정자가 있는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기행이 여름철 인기테마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중 조선시대 지방 사립교육기관이었던 서원 탐방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국내 대표적 서원 7곳(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돈암서원, 무성서원)은 이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정 추진을 위한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는 상태로, 인류의 문화자산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들 중 전남 장성에 자리한 필암서원은 남도를 대표하는 전통서원으로, 문화유산적 가치 또한 탁월하다는 평가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조선의 대표서원, 세계유산 잠정목록 '필암서원'
조선시대 지역 사회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는 향교와 서원을 꼽을 수 있다. 향교가 지방 국립교육기관이라면 서원은 지금의 지방 사립학교에 해당한다. 각 서원에는 배향된 인물이 있어서 그의 덕망을 기리고 학풍을 이어갔다. 특히 서원은 유생들의 교육의 터전이자 정치 참여의 장이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지방 사족의 지위를 강화해 주는 역할은 물론, 사화로 인해 향촌에 은거하던 사림의 활동 기반이 돼 주기도 했다.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자리한 필암서원(筆巖書院) 역시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 선생과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고암 양자징(1523~1594)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김인후는 퇴계이황과 성균관에서 동문수학을 한 사이로, 과거 급제 이후에는 조정에 들어가 인종의 세자시절 스승 역할을 한 당대의 석학이다. 그러나 선생은 인종이 세상을 뜨자 고향으로 내려와 벼슬을 마다한 채 지방 유학자들과 교유하는 한편 후학을 양성하며 일생을 보냈다.
서원이 교육과 배향을 큰 기능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서원의 건축에도 잘 나타난다. 필암서원 역시 이를 잘 이행한 공간으로, 건물의 배치 역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을 채택했다. 유생들이 학문을 연마하는 곳을 서원의 앞부분에 두고, 제례의 공간을 뒤에 놓은 것이다.
필암서원은 김인후 선생이 세상을 뜬 후 30년이 지난 1590년(선조 23년) 지역 유림들이 선생의 가르침과 학문을 기리 기위해 세웠다. 처음엔 장성읍 기산리,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에 터를 잡았으나, 1597년 정유재란의 환란 속에 학당이 소실되자 1624년 선생이 태어난 장성 황룡면 증산동에 다시 문을 열었다. 이후 1662년(현종 3년)에는 유생들의 요청에 따라 '필암'이라는 액호를 하사받고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필암서원의 입지가 수해를 입기 쉬운 곳에 있어서 1672년(현종 13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했다. 필암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온전함을 유지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7대 서원으로 전해 오고 있다.
한편 필암서원은 조선시대 건축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도 평가 받고 있다. 그 터 또한 나지막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평평한 곳에 자리해 전체적으로 안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전형적인 서원의 기본배치인 교육과 학문 수련의 공간, 선현에 대한 제사의 공간, 장서 공간, 지원 시설 공간 등을 고루 아우르고 있다는 평가다.
먼저 서원 바깥에는 노거수 은행나무가 서있고 홍살문이 자리해 이곳이 신성한 곳임을 일러준다. 일단 서원의 출입구이자 필암서원의 대표적 건축물인 확연루가 눈에 확 들어온다. 확연루는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2층 문루 건물로, 2층 마루는 선비들의 휴식처이자 시회를 여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확연루 바깥쪽으로는 널문이 달려 있는데, 이를 닫으면 안팎이 차단되고, 열어 두면 시원스레 소통이 되는 개방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확연루 정면에 붙어 있는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
확연루를 지나 만나는 '청절당'은 서원의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던 강학당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필암서원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이고 양옆으로 한 칸씩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조선 영조대 학자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청절당을 지나면 강당과 더불어 서원의 핵심 공간인 재실이 나선다. 재실은 원생들이 기거하는 일종의 기숙사로, 오른쪽 동재에는 선배유생들이, 서재에는 후배들이 머물렀다. 재실 옆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인조 임금이 하사한 묵죽판각이 보관 되어 있다. 경장각 현판 글씨는 정조대왕의 친필로 알려진다.
필암서원의 배향공간은 서원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우동사가 그곳으로, 김인후 선생과 양자징 선생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해마다 중춘(음력 2월)과 중추(음력 8월) 중정일에 제사를 모신다.
우동사 인근에는 서원의 도서관 격인 장서각이 있다. 인종이 하사한 묵죽(먹으로 그린 대나무)과 하서집 등 1300권의 서책과 노비보(奴婢譜), 강회 참가자의 명단을 적은 '문계안', 서원 소속 유생들의 명단을 적은 '필암서원 서재유안' 등의 문서를 소장하고 있다. 현재 필암서원에 소장된 서책과 고문서들은 일괄 보물(제587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전문가들은 필암서원을 '건물이 적절하게 배치되어있고, 각 공간과 공간은 담으로 구획되어 독립성을 지니면서도, 크고 작은 문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 있는 우수 건축물'이라고 평가한다. 특히 서원이 시대에 따라 그 기능을 달리한 만큼 건축물 또한 이와 같은 기능을 담아내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초반에는 교육 시설이, 17세기 후반 이래로는 제향 시설이 중시되어 이를 중심으로 건물이 세워졌다. 때문에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장판각, 장경각, 누각 등도 사라지고 사당과 강당으로 구성된 형태로 바뀐다. 그 중 필암서원은 서원의 교육 기능과 제향 기능이 균형을 이루던 중간 시기에 세워진 곳이다. 따라서 건축물의 구성 또한 전형적인 서원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필암서원은 조선 시대 서원 공간 연구에 소중한 사적지(사적 제242호)로 꼽힌다.
◆여행메모
▶가는 길
◇승용차=호남고속도로 장성IC~24번국도 따라 황룡강 넘어 함평 방향~6번 군도~필암리~필암서원
▶장성의 들를만한 곳
◇홍길동 생가
필암서원 인근에 홍길동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의 고향이 장성으로 언급 되어있는 것에 착안해 생가와 테마파크를 꾸며 놓았다. 홍길동전의 시대적 배경인 15세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가 하면 홍길동 관련 다양한 자료를 갖추고 있다. 홍길동 테마파크 4D영상체험관에서는 약 12분 분량의 홍길동 관련 4D영상도 시청할 수 있다.
◇백양사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절집이다. 백양사로와 쌍계루 등 명소를 거느리고 있는데, 특히 부도탑에서 백양사까지의 진입로는 운치가 있다. 길 양 옆으로 700년 수령의 국내 최고령 갈참나무 3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도열해 있다.
백양사의 또 다른 명물은 천연기념물 제153호 비자나무 숲이다. 백양사 주변에 8~10m에 달하는 비자나무 50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백양사 뒤로 병품처럼 펼쳐진 백학봉 일대는 명승(제38호)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백양사 대웅전과 쌍계루에서 바라보는 백학봉의 암벽과 경관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며 대한 8경의 하나로 꼽혀왔다.
◆금강노인복지관 Let's Go-세계유산 잠정목록-필암서원 편
GKL(그랜드코리아레저)사회공헌재단(이사장 이덕주)이 후원하는 "GKL사회공헌재단과 함께 만나는 UNESCO세계문화유산탐방, Let's Go-세계유산 잠정목록-필암서원 편"이 지난 6월 10~11일 1박 2일의 일정으로 전남 장성군 필암서원과 홍길동테마파크 일원에서 진행됐다. 군산시 금강노인복지관(관장 정호영) 어르신 15명과 군산시 구암초등학교 다문화아동 및 저소득층 아동 15명이 '다! 함께 다! 가가는 다! 양한 세대공감, 뭉쳐야간다!'라는 부제로 세계유산 잠정목록-필암서원 탐방에 나섰다. 이번 탐방 프로그램은 1-3세대가 함께하여 문화적 소외감을 극복하고 노인과 아동-청소년의 세대 간 교류 확장을 통한 '세대공감'을 이끌어내는데에도 그 의의를 두고 있다.
세계유산 잠정목록-필암서원 탐방, 첫 번째 방문지는 장성호관광지였다.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가볍게 산책하며 사진촬영을 위해 찾은 곳이다. 여기서 멘토 어르신과 멘티 아이들이 함께 거닐며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추억을 만들었다. 두 번째 탐방지는 장성의 대표 사찰인 백양사였다. 쌍계루로 유명한 백양사는 아름다운 풍광과 호젓한 분위기속에 느릿한 여유를 즐기기에 제격인 곳이다. 이 같은 분위기 덕분에 멘토 어르신들과 멘티 아이들 간 친교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부도탑에서 백양사까지의 운치 있는 진입로를 거닐고, 천연기념물 제153호 비자나무 숲도 구경하며 명품사찰의 매력에 흠뻑 젖어 들었다.
탐방 첫날, 세 번째로 찾은 곳은 이번 탐방여행의 주목적지인 필암서원이었다. 장성군청 문화관광해설사 선생님의 설명 속에 이뤄진 필암서원 탐방은 흥미만점이었다. 필암서원 주변은 잔디밭과 정자 등 쉴 수 있는 공간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었다. 서원 앞 하마석과 홍살문을 지나 필암서원 정문이라 할 수 있는 확연루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서원의 정문인 문루로, 원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시원한 한옥의 대청마루가 있는 필암서원은 임금(인종)의 스승이었던 하서 김인후의 높은 절의와 학문을 기리기 위해, 그를 따르던 후학과 문인들이 세운 서원이다. '필암(筆巖)'이라는 이름은 하서 김인후의 고향인 장성 맥동에 붓처럼 예리한 형상의 바위가 있어 이를 본 따 지었다고 한다. 필암서원에 모셔진 하서는 고고한 절의와 맑고 깨끗한 인품을 지닌 도학자였고, 인종이 갑자기 승하하자, 관직을 사양하고 세상과 일체 인연을 끊은 채, 학문을 수양하며 생의 후반을 보내게 되었다. 후에 이런 하서 김인후의 절의를 높게 평가한 정조가 필암서원에 경장각이라고 쓴 편액을 하사하였다.
필암서원 탐방을 마친 후 찾은 곳은 홍길동테마파크에 위치한 청백한옥이라는 한옥펜션이었다. 이곳에서 하룻밤 머무르며 가죽공예체험 등 한옥체험도 즐겼다.
저녁 식사는 야외 바비큐 파티.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음식과 밥을 챙겨주는 등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가슴 뿌듯한 저녁식사였다.
저녁식사 후에는 'UNESCO 세계문화유산 골든 벨', '공감&이해 레크리에이션' 등 탐방여행 중 가장 뜨거운 열기를 보여준 행복한 시간이었다.
들째날은 홍길동 테마파크를 방문했다. 홍길동의 고장인 장성에서 홍길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직접 홍길동의 생가가 재현되어 있는 집에도 들어가 보고 자료관을 관람하는 경험 속에 생생한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홍길동 테마파크 4D영상체험관을 찾아 홍길동과 관련된 재미있는 4D영상을 시청했다.
이번 탐방여행을 통해 1-3세대 간의 세대차가 좁혀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어르신들은 "아이들과 함께 하니 절로 활기도 생기고 기억에 남는 소중한 여행 이었다"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참여해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편하고 친손자처럼 대해주셔서 거리감이나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이 무엇인지 그리고 필암서원에 대해 배울 수 있어 흥미롭고 재밌는 여행이었다"고 만족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