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KB손해보험은 변신 중이다. 선수 구성부터 그 동안 뿌리 깊게 박혀있던 팀 내 이기주의까지 모두 사라지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올 시즌 새 지휘봉을 잡은 권순찬 감독(42)이 있다. 11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KB손보 인재니움에서 만난 권 감독은 특유의 세밀함으로 '개혁'을 외쳤다. "매 시즌 전 KB손보는 LIG시절부터 우승후보로 희망고문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뚜껑을 열면 실체가 드러났다"며 "기존 개인의 욕심에 의존했던 팀 스타일을 '희생'으로 바꾸고 있다."
권 감독은 팀 리빌딩을 위해 과감하게 매스를 꺼내 들었다. 프랜차이즈 스타 김요한을 OK저축은행으로 트레이드 시켰다. 권 감독은 "사실 고심을 많이 했다. 그러나 팀 변화를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선수를 위해서라도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나는 요한이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상 없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김요한과 트레이드 된 강영준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 권 감독은 "이강원도 있지만 강영준은 레프트와 라이트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이다. 외국인 공격수도 레프트를 뽑았기 때문에 1번 공격수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다각도에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또 트레이드로 OK저축은행에서 KB손보 유니폼을 입게 된 센터 김홍정에 대해선 "OK저축은행 창단 당시 주장을 맡기도 한 홍정이는 센터로서 센스가 있다. 파이팅도 좋다. 이선규 하현용과 함께 로테이션 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역시 KB손보는 신인왕 출신 세터 황택의를 중심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황택의만 머리 속에 떠올리면 환한 웃음을 감출수 없는 권 감독이다. "택의는 센스가 좋다. 머리가 비상하다. 내가 한 번씩 소스만 주면 자기가 알아서 만든다. 전체적으로 자신이 운영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다. 겁도 없는 성격이다. 2년차 징크스는 없을 것이다. 강심장이다."
권 감독은 현역 시절 '배구 도사'로 통했다. 배구 센스가 무척 출중했다. KB손보 선수들도 '여우' 권 감독을 만나 '센스쟁이'로 변화하고 있다. 권 감독은 "나는 선수들에게 '알아서 하라'는 주의다. 스스로 생각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기본 철학을 가지고 있다. 센스를 갖춘 선수들과 배구를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권 감독이 추구하는 '센스 있는 배구'란 뛰어난 상황 대처 능력으로 형성된다. '현미경 분석'을 통해 흐름마다 상대가 어떤 플레이를 할 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권 감독은 "다양한 상황에 맞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해주면 실전에서 실수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출신인 권 감독은 털털한 겉모습과 다르게 꼼꼼하다. 소위 '디테일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권 감독은 "배구에 필요한 근육들이 있다. 웨이트 훈련을 할 때도 무게에 치중하는 것보다 시즌 동안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서서히 끌어올리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감독은 한 팀의 수장으로서 선수들을 지도할 날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했다. 권 감독은 "선수들이 매번 같은 훈련으로 지루해하지 않게 쇼트게임 위주의 유럽배구와 포지션별 맞춤 훈련을 하는 일본배구 훈련을 접목시키고 있다. 선수들도 신기해하면서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권 감독의 섬세한 면은 선수들의 계약서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프로는 곧 돈으로 직결된다. 권 감독은 각 선수들에 맞는 옵션 수당을 구단에 요청해 계약서에 삽입했다. 서브 포인트, 리시브율, 블로킹율, 20점 이후 포인트 등 세밀한 옵션을 책정했다. 권 감독은 "돈을 많이 받으라는 말이 아니다. 희생 뿐만 아니라 책임감을 좀 더 고취시켜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여우' 권 감독의 색다른 도전이 시작됐다.
수원=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