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만남이 2년만에 성사되면서, 한·일 롯데를 놓고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두 형제의 향후 행보를 놓고 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두 사람이 마주해 대화를 나눈 것은 2015년 7월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 처음이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뤄진 이날 만남은 모친인 시게미쓰 하츠코씨의 화해권고와 친척들의 중재 제안에 의해 이뤄졌다. 롯데 관계자는 "가족이 권고하고 중재를 해서 만나긴 하지만 서로 필요성을 느껴서 나간 것 아니겠냐"면서 "처음 만남이어서 당연히 이견도 있었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만나나가면서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이번 만남이 향후 '형제의 난'에 완벽히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면서 종전으로 이어질지, 잠시 숨을 고르는 휴전에 불과할지를 놓고는 설이 분분하다.
▶시나리오1:신동빈 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과 손 잡다
재계에서는 이번 독대의 결정적 이유로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신동빈 체제'가 굳어진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4일 일본 롯데홀딩스는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일본롯데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사외이사 3명을 포함한 8명을 재선임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사 임기가 만료돼 새 이사진에서 배제됐다. '신격호 시대'가 막을 내리고 경영 복귀의 동력을 잃게 돼 신 전 부회장이 동생의 손을 무조건 외면하기는 힘든 상황이 됐다.
여기에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에 처해있는 신 회장 또한 신 전 부회장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으리란 분석이 나온다.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신 회장은 향후 경영권을 둘러싼 잡음이 대외적으로 흘러나가는 일 만큼은 필사적으로 막아야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지배구조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경우엔, '문재인 정부'의 '사정 칼끝'이 롯데로 향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롯데그룹을 포함한 6대 재벌을 후보 시절 강력한 개혁대상으로 지목한 바 있다.
여기에 사드 이슈로 인한 중국의 경제적 보복이 이어지면서 롯데가 입은 손실 규모는 상반기에만 1조원에 달한다.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형제간 갈등이 어떤 형태로든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이어질 경우엔 현재의 재계 서열 5위라는 지위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친과 친척의 뜻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신 회장이 원해서 이뤄졌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결국 신 회장이 신 전 부회장의 손을 잡기 위해 양측의 만남에 적극적이었을 것이란 해석이다. 따라서 신 회장이 신 전 부회장에게 뭔가 내놓지 않을까 하는 관측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한두 번 만남으로 즉각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신동빈 회장은 화해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대화 노력을 계속해가면서 그간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나리오2: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손 뿌리친다
일각에선 '형제의 난' 종전을 원하는 롯데그룹과 신 회장의 바람과 달리, 현 시점에선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신 전 부회장이 훗날을 기약하며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신 회장과 만난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지금 이 상태로 신 회장과 화해해 봤자 신 전 부회장이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그래서 신 전 부회장이 지금과 같이 경영권 분쟁을 계속 이어갈 수도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실제로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월 롯데쇼핑 지분 6.88%를 처분한 뒤 "차입금 상환과 한국에서 신규사업 투자 등 용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경영권 분쟁의 장기화에 대비해 신 전 부회장이 국내에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을 벌이는 가운데,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요 계열사 지분을 통해 대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하면서 신 회장의 행보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높다. 현재 신 전 부회장은 롯데쇼핑 지분 7.95%, 롯데제과 지분 3.95%, 롯데칠성음료 지분 2.83%, 롯데푸드 지분 1.96%를 보유한 주요 주주다. 새롭게 출범하는 롯데지주 지분도 신동빈 회장에 이어 2대 주주일 것으로 추정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은 결국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복귀라든지 경영권과 관련된 요구를 일부라도 관철시키려 하지 않겠느냐"며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갈등의 불씨는 완전히 사그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내다봤다.
때문에 신 회장도 한·일 롯데에서의 신 전 부회장의 경영권 배제 등 강공으로 맞설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 롯데 측은 "가족으로서 화해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나가겠다는 것이 회장님의 뜻 아니겠냐"며 "그러나 경영권 문제는 별도의 문제다. 회사는 이사회와 주주총회 등 상법을 통한 절차에 따라 엄격히 운영되기에, 관련 이슈는 신동빈 회장이 개인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전상희 기자 nowa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