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습니다."
전남의 수비수 이지남(33)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한 모양이었다.
문제의 상황은 이랬다. 2일 전남과 제주의 2017년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18라운드 맞대결이 펼쳐진 광양축구전용구장. 두 팀이 0-0으로 팽팽하던 전반 21분 제주의 역습이 시작됐다. 이지남은 상대의 패스를 막기 위해 두 발을 쭉 뻗었는데, 공이 튕기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결국 전남은 상대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0-1로 밀렸다. 이지남은 "다리를 뻗으면 상대의 패스를 걷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라운드가 미끄러워서 공이 튕겨나갔다. 공이 축구화 끝에 걸려서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게 나갔다. 골키퍼 이호승이 선방했지만, 결국은 골을 내줘서 너무 아쉬웠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35분이 지난 후반 13분. 이지남이 자신의 실수를 멋지게 되갚았다. 이지남은 후반 13분 역습 상황에서 페체신의 패스를 받아 미끄러지듯 슈팅을 날렸다. 이는 제주 골문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 골을 완성했다. 전남의 2-1 역전을 알리는 이지남의 골. 홈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동료들도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이지남은 당시 상황을 두고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슈팅을 날린 뒤 제주 골키퍼 김호준과 부딪쳐 명치를 다쳤다. 순간적으로 숨을 쉴 수 없어서 당황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득점 순간의 짜릿함만큼은 잊을 수 없었다. 이지남은 "2015년 전남 입단 뒤 첫 골을 넣었다. 코너킥 상황에서는 수비수들도 골을 넣기 위해 움직인다. 이상하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제주전에서는 생각한대로 됐다"며 웃었다. 실제 그는 한때 '골 넣는 수비수'로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전남에서 뛴 3시즌 동안은 득점이 없었다.
자신의 실수를 귀중한 골로 만회한 이지남. 노상래 전남 감독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지남이 베테랑답게 잘 극복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이지남의 마음 한구석에는 수비 실수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이지남은 "경기 뒤 최효진 선배가 '네가 잘못한 것 네가 해결했다'며 웃었다. 맞는 얘기다. 내가 명치를 다쳐서 잠시 치료 받는 사이에 동점골을 내줬다. 결국 2대2로 비겼다. 수비수인 내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그는 "올 시즌은 유난히 부상이 많다. 이제 겨우 6경기를 치렀다.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이제 막 부상에서 복귀한 만큼 다치지 않고 올 시즌 끝까지 열심히 뛰고 싶다"며 이를 악물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