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 거리는 18.44m다. 하지만 투수판 위에 그냥 서서 던지는 투수는 없다. 피칭시 투수와 타자의 거리는 더 가까워진다. 타자 입장에서 봤을 때 그 거리는 상황에 따라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이번에는 투수와 타자 사이 '거리감'에 대해 고찰해보려 한다.
일본의 경우 투수와 타자 사이 거리를 흔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마운드 위에 남은 구덩이다. 일본 야구장의 대부분은 마운드 흙이 부드럽고 투수들은 던지기 전 자신의 보폭(스트라이드)에 맞게 구덩이를 판다. 한편 한국은 메이저리그와 같이 흙이 딱딱하다. 지난번에 경기후 마운드 상태를 체크하려고 수원 kt 위즈파크 김상훈 구장관리 소장의 협조하에 자세히 확인 해 봤지만 그곳엔 구덩이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한국 마운드에는 구덩이가 없지만 투수들에게 자신의 피칭 보폭을 물어보면 모든 투수가 곧바로 대답을 했다. 대부분 6발(1발은 30㎝내외). 투수는 18.44m 보다 1.7~1.8m정도 투수판 앞에서 나와 던지는 셈이다.
차우찬(LG 트윈스)의 경우 투구판에서 1.8m 더 앞에서 던지고 있다. "2015년도까지 7발이었는데 제구가 다소 흔들려 좀 짧아졌다. 지금은 6발 반이다."
스트라이드는 특히 자세를 낮게 해 던지는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스로 투수에게서 더 넓어지는 경향이 있다. 박종훈(SK 와이번스)은 자신의 스트라이드에 대해 "6발로 던지고 있지만 6발 반이 이상적이다"고 했다. 우규민(삼성 라이온즈)은 6발 반, 임창용(KIA 타이거즈)은 7발이라고 답했다.
투수들은 자신의 스트라이드를 알고 있어도, 확인 법은 각자 다르다. 임창용은 "자주 의식을 하지 않지만 제구가 안 좋거나 구속이 안 나올 때는 혹시 짧아지고 있지는 않은 지 체크한다. 상태가 좋을 때는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차우찬과 박종훈은 "보폭보다는 내딛는 발이 포수쪽으로 일직선을 이루고 있는 지를 확인한다"고 했다.
우규민의 경우 또 다른 방법으로 투수와 타자간의 거리를 이용한다. "투수판을 밟는 위치를 상황에 따라 바꾸고 있다. 같은 구종이라도 해도 각도에 변화를 주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다. 변화구 뿐만 아니라 직구 때도 그렇다"고 했다.
이 경우 타자쪽에서 봤을 때 어떤 유형의 투수를 좀더 가깝게 느낄까. 타자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선수가 신장 2m3의 더스틴 니퍼트(두산 베어스)를 언급했다. 사실 니퍼트는 스트라이드가 넓은 편은 아니다.
몇몇 타자들은 윤희상(SK)이 앞에서 던지는 느낌이 있다고 있다. 이에 대해 윤희상은 "스트라이드는 일반적으로 6발로 던지고 있지만 피칭이 좋을 때 6발 반 정도 앞으로 나온다"고 했다. 타자가 윤희상을 유독 가깝게 느낄 때에는 윤희상 스스로도 상태가 좋다고 느끼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야구경기를 TV 중계화면에서 볼 때는 투타 대결은 주로 투수 뒤쪽 카메라가 비추는 화면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야구장에서 내야석에 앉으면 투수와 타자의 거리감을 좀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18.44m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투수와 타자의 싸움. 흡사 야구라는 단체경기 속에서 검도나 펜싱같은 개인종목의 거리 싸움을 느끼게 한다. <무로이 마사야 일본어판 한국프로야구 가이드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