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세웠던 통신료 인하 공약의 실현 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통신료 인하를 위한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동통신업계 반발이 만만치 않아 통신료 인하 실현여부를 속단하기는 이르다.
현재 통신료 인하를 위해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시민·소비자단체, 이동통신업체 등이 의견을 교환 중이다.
국정기획자문위와 시민·소비자단체는 우리나라의 이동통신요금이 가계에 상당한 부담을 주며 인하 여지가 상당하다는 입장을 업계에 전달했다. 그러나 업계는 외국과 비교하면 국내 통신료가 낮은 편에 속한다는 점을 내세우며 통신료 인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전문가들, "인위적 개입보다 자율경쟁이 바람직"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 통신비 부담 총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OECD가 2013년 7월 발표한 '2013 커뮤니케이션 아웃룩'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구매력평가지수(PPP) 환율을 적용했을 때 우리나라의 월평균 가계 통신비 지출액은 148.39달러로 3위였다. 34개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보다 가계 통신비 부담이 큰 곳은 1위 일본(160.52달러)과 2위 미국(153.13달러)이 전부다. 특히 한국의 가계 무선통신요금 지출액은 115.50 달러로 OECD 1위였으며, 2위 일본(100.10 달러), 3위 멕시코(77.4 달러)보다 훨씬 높았다.
국내 자료로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전체 가구의 소비지출 중 가계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6.06%, 2011년 5.97%, 2012년 6.20%, 2013년 6.16%, 2014년 5.89% 등으로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높았다. 정부가 통신료 인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다.
수치만 놓고 보면 한국의 가계통신비 부담이 높은 것은 명확하다. 다만 '한국의 높은 가계통신비 부담'이 '비싼 통신료'를 뜻하지는 않는다. 이동통신 지출 총액이 아니라 사용량을 똑같이 놓고 요금을 비교하면 한국의 통신료는 낮은 편에 속한다. 경제 전문가들도 이같은 점에 주목, 통신료 인하의 여력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OECD '디지털 이코노미 아웃룩 2015'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9월 기준으로 34개 OECD 회원국의 이동통신 요금을 음성·문자·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5개 구간으로 나눠 소비자가 부담하는 요금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8∼19위를 차지했다.
비교 대상 사용량 구간 5개 모두에서 한국은 모든 구간에서 OECD 평균보다 요금이 저렴했다. 음성 50분·문자 100건·데이터 100MB 기준의 '30통화 구간'과 음성 188분·문자 140건·데이터 500MB 기준의 '100통화 구간'에서 한국의 통신료는 낮은 순서로 OECD 국가 중 8위를 차지했다. 음성과 문자를 100통화 기준과 똑같이 놓고 데이터만 2GB로 높인 구간에서도 순위는 같았다.
국가별 물가와 소득 수준 등을 고려한 구매력 평가(PPP)를 기준으로 할 때 국내 이동통신 요금은 OECD 국가들의 평균 요금에 비해 15.3∼38.8% 낮았다는 게 OECD의 평가다. 특히 결합상품 요금의 경우 2014년 4월 기준으로 초고속 인터넷과 유선 전화, IPTV를 결합한 상품은 한국이 비교 대상 12개국 중 2번째로 요금이 저렴했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 IT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같이 고속 통신망을 제공하는 나라들과 비교하면 통신 단가는 제일 싼 수준"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통신비 인하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업체의 경영 상황도 고려 대상이다. 이통업체들은 2G와 3G에 한해 기본료 1만1000원을 폐지하더라도 1조원 이상의 매출이 감소해 타격이 크다고 주장한다. 국내 주요 이통 3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조7000억원, 영업이익률은 7∼8%대에 그쳤다. 이통 사업의 성장이 둔화하면서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은 지난해에만 3.7% 감소했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수익 구조를 보면 단기적으로 1만1000원 인하는 무리"라며 "통신사 수익에 큰 부담이 없는 범위 내에서 단계적으로 인하하고, 요금인하 재원을 주파수 경매대금 인하와 요금 체계 재설계 등을 통해 마련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임주환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장 역시 국가가 나서 요금을 통제하는 것이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임 원장은 "어떤 사업 영역이든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업체 간 경쟁을 유도하는 식으로 풀어야 하는데 국가가 비용을 통제하면 시장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기획자문위, '기본료 폐지' 입장 강경
정부는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업계의 반발에도 1만1000원 가량의 통신 기본료 폐지를 이끌어 낸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통신요금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기본료 폐지 등을 통한 통신료 인하 방안' 마련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자 업무보고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통신료 인하의 강력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미래부는 이같은 점에 주목, 지난 10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통신비 인하 안을 전달했다.
그러나 국정기획자문위는 미래부의 통신비 인하안이 미흡, 논의를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통신 3사의 독과점 구조로 인해 자발적 요금 경쟁을 통해 소비자 후생을 증진해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인 만큼 정부가 통신비 인하 정책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국정기획자문위 측은 "통신비를 포함한 국민 생활비 경감 문제는 대통령의 최대 관심 사안"이라며 "국정기획자문위는 일방적 지시나 강요의 방식이 아닌 국민과 소통을 기반으로 통신비 인하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는 데 최선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