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공 하나로 승부를 가리는 축구. 구기 종목 중 역사도 길고, 그만큼 범위도 넓다.
지구촌에 축구를 안 하는 나라는 없다. 그래서 축구는 종종 평화의 '매개'가 된다. 정치적이나 종교적으로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열린 남북 통일축구가 대표적이다.
그 평화의 매개이자 상징인 축구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종교적 분쟁의 희생양이 될 위기에 처했다. 갈등과 내전 등이 첨예화되면서 축구 경기 정상 개최가 힘든 지경으로 몰리고 있다. 중동 문제가 월드컵 위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
당장 카타르 단교 문제가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2022년 카타르월드컵이 또 다른 암초를 만났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등 아랍권 7개국은 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했다. 카타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걸프 3국(사우디아라비아·UAE·바레인)은 카타르 출신 여행자와 거주민에게 2주 내로 자국을 떠나라고 통보했다. 사우디 국영 통신은 카타르가 테러 단체를 지원하는 단체들의 음모를 확산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카타르가 알카에다 연계 무장단체 등에 10억 달러를 지급한 것이 단교 원인 중 하나'라고 풀이했다.
월드컵 준비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개최를 위한 축구장 건설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실제 이 국가들은 카타르와의 국경을 차단하고 카타르를 오가는 항공 및 해상 교통편의 운행을 잠정 중단했다. 일부 국가는 카타르 은행과의 금융 거래도 유보했다. 3면이 바다인 카타르는 건축자재 수입길부터 막힌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필리핀 정부는 카타르에 근로자 신규 파견을 중단했다. 실베스트레 벨로 필리핀 노동부 장관은 '카타르는 자체적으로 식량을 생산하지 않기에 (고립) 문제로 식량이 떨어지면 필리핀 근로자가 가장 먼저 희생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타르는 오래 전부터 월드컵 건설 현장에 아시아 노동자들을 대거 투입했다. 카타르는 당장 건설 현장에서 일 할 노동자가 부족할 판이다.
카타르 월드컵 위기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부터 잡음이 일었다. 카타르는 여러 방법으로 유권자에 뇌물을 건넸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재투표 논란이 있었다. 반환경적 건설 계획 및 건설 현장의 열악한 근로 조건 등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여름 40~5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도 문제가 돼 카타르는 냉방장치를 갖춘 경기장 건설 등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교 사태는 이런 문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올해 12월 카타르에서 열릴 예정이던 걸프컵 정상적인 개최 여부부터 불투명해졌다. 한국도 직격탄을 맞았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A대표팀은 13일 카타르와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을 치른다. 한국은 현재 UAE 두바이 인근에서 훈련 중이다. 8일 이라크와의 친선경기를 마친 뒤 10일 카타르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러나 두바이와 도하를 잇는 하늘길이 막히면서 대안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항공 노선 폐쇄 관계로 두바이에서 쿠웨이트를 거쳐 도하로 이동해야 할 것 같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직항편이 정상 운영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눈앞으로 다가온 불안감에 카타르월드컵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크리스티안 울리히젠 미국 라이스 대학 베이커 연구소의 걸프 문제 연구원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카타르에 대한 집단적인 압력이 커지고 있다. 더 지속한다면 월드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타르는 다른 대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악의 경우 카타르 월드컵 취소, 연기, 혹은 타국으로의 이전 등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화약고로 변해버린 중동, 카타르월드컵은 물론이고 2018년 러시아월드컵으로 가는 길도 순탄치 않게 됐다. 이라크에서는 이라크군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의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13일 이라크에서 진행 예정이던 이라크와 일본의 최종예선 B조 8차전은 제3국인 이란에서 치르기로 했다. 시리아도 비슷한 상황이다. 시리아는 6년여 동안 이어진 내전으로 도시 기능을 잃었다. 고대 아랍 문명과 각종 유적은 잿더미로 변했다. 결국 시리아는 계속된 국내 정세 불안으로 이번 대회를 제3국인 말레이시아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중동의 휘발성. 지구촌 축제 월드컵이 중동의 위태로운 정세 속에 시계제로의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