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신태용 감독은 고 이광종 감독이 맡았던 리우올림픽대표팀의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2016년 말엔 안익수 감독이 이끌던 20세 이하 대표팀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누군가의 팀을 대신 맡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들을 짧은 시간안에 자신의 색깔로 바꾸는 일은 어렵다. A대표팀 수석코치에서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으로 "남들은 위로 올라간다는데 나는 자꾸 아래로 내려간다"고 농담하면서도 책임과 부담이 따르는 소명을 마다하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신 감독은 이를 "내 운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저 놈이 들어가면 채워줄 것이라는 믿음, 나는 그 믿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태용의 팀은 늘 유쾌하다. 선수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자기주도적인 자율축구를 추구한다. 신 감독은 "어린 놈들이…"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저 나이에 뭐 했지" 생각하며 아들같은 선수들의 눈높이를 맞추려 애썼다.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등 강호들과 맞서 패기만만한 '공격축구'를 시도했다. 신나는 도전이 성적까지 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포르투갈과의 16강전 패배를 통해 배운 점을 이야기했다. "토너먼트에서는 조금 더 신중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격축구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으로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수비축구는 아니다. 수비를 가다듬고 안정적으로 가면서 상대를 급하게 만들고, 더 신중하게 갔어야 하는 부분이 필요했다"고 돌아봤다.
20세 이하 월드컵, 16강 탈락이 못내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신 감독은 "신나게 도전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이번에도 '소방수'였다. 마다하지 않고 도전에 응한 것은?
▶도전에 응한 것은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 부분이 크다. 축구협회에 있는 선배님들이 믿어주시니까 감사히 받아들였다. '저놈이 들어가면 채워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쉽게 주지 못하는 자리다. 나는 그런 믿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성적 부담도 큰 자리였다.
▶어떤 팀을 맡든 똑같다. 시간이 길든 적든, 감독으로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다. 그때 그때 압박감은 똑같다. 계산하지는 않는다.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안했어야 한다. 내 자신을 내가 믿는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나를 믿는다.
-중간에 A대표팀 감독 이야기도 나왔다.
▶A대표팀은 생각도 안했다. 내가 만약 간다면 20세 이하 대표팀은 누가 책임지나. 6~7개월 남았을때도 시간 없다고 했는데 2~3개월 남기고 누가 하나. 말도 안된다. 여기서 잘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당장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지, 다른 데 신경 쓰고 줄 서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실력으로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절대 성장할 수 없다. 내가 맡은 일만 잘하면 다시 기회가 오더라.
-선수들이 감독을 잘 따르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선수들과 소통하는 노하우는?
▶'내가 이 나이 때 뭐 했지'를 늘 생각했다. 놀고, 축구하고, 미팅하고 싶고…. 사실 나는 U-19 대표팀 훈련 때문에 대학 1학년 생활을 못했다. 이 나이 때는 감독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많이 궁금할 때다. 선수들에게 그런 부분을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어린 놈들이…'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들 (신)재원이와 같은 또래라 '아들'에 대입하면 답이 금방 나오더라.
-선수단 분위기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시종일관 잘 유지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포르투갈 전훈 중에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오셨다. 제주도에서 선수들이 적어낸 요구사항을 갖고 와서 보여주더라. '자유를 달라' '선수 미팅이 길다' 이런 얘기가 적혀 있었다. 다 이미 내가 하고 있는 것이라서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더 편하게 해줬다. 너무 억눌려 있고, 틀에 박힌 축구, 성장이 안되는 축구를 하고 있었다. 스스로 할 수 있게끔 잡아갔다. 다행히 선수들의 받아들이는 태도가 좋았다. 잘 따랐다. 스스럼 없이 다가가고 장난도 치고 했다. 함께 게임하고, 선수들과 내기도 하고 그랬다. 항상 2~3시간씩 힘든 운동했는데, 미팅도 핵심만 짧게 하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외출을 주니까 프리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중에는 여자친구 이야기도 하더라. 분위기는 좋았지만 정작 경기적인 것이 기대보다 안나와서 그래서 더 아쉽다. 우리 아이들이 분명 더 보여줄 수 있었는데, 왜 경기장에 안나왔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포르투갈만 이기면 8강 이상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6개월 동안 어린 선수들과 함께한 소감은?
▶지도자들은 각자의 패턴이 있고 철학이 있다. 어느 것이 맞다, 아니다를 떠나서 신태용이라는 감독의 스타일을 인식시켜 주는 게 힘들었다. 선수들에게 스스로 축구를 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지시대로만 따라오려 하고, 틀에 박혀서 지시대로만 하려는 게 안타까웠다. 코치들은 처음에 '어려서 휴대폰도 뺏어야 한다'고 하더라. 스무살인데 휴대폰을 왜 뺏나. 밤늦게까지 해도 된다. 대신 훈련에 지장 있으면 경기에서 빼면 된다고 했다. 스스로 규율을 못 지키는 선수는 결코 대성할 수 없다. 최고의 경기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거다. 코칭스태프가 '자니, 안자니' 따질 필요 없다. 아침도 9시에 늦게 먹게 했다. 20세면 성인이다. 모든 걸 스스로 할 수 있게끔 했다.
-이번 대회 후회는 없나.
▶신나게 해서 후회는 없다. 16강 탈락이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다.
-이번 대회에서 감독으로서 무엇을 배웠나.
▶'공격축구'를 외쳤지만 토너먼트에서는 조금 더 신중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격축구도 중요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려가면서 건너듯이 안정적으로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수비축구는 아니다. 하지만 초반에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수비를 가다듬고 안정적으로 가면서 상대를 급하게 만들고, 더 신중하게 갔어야 하는 부분이 필요했다. 포르투갈과 하면서 그것을 느꼈다. 넉다운제에서는 더 신중해야 한다.
-향후 미래에 대한 구상은.
▶아직 생각 안했고 생각도 안해봤다. 경기가 끝난 지 얼마 안돼서 생각을 안해봤다. 20세 이하 월드컵이 끝난 후 협회와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다.
-20세 이하 월드컵을 총평하자면.
▶20세 친구들 데리고 세계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다. 감독으로서는 좀더 신중하게 토너먼트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선수 육성 시스템의 부족함도 절감했다. 우리는 첫 경기부터 결승전처럼 쏟아내지만 선진 축구는 밑에서부터 서서히 끌어올리면서 올라가는 부분에 한계점을 느꼈다. 토너먼트에서 선진축구 같은 사이클을 만들어갈 부분이 있다.
-신태용에게 20세 이하 월드컵이란?
▶한걸음 더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