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충남 천안의 우정힐스컨트리클럽에서 벌어진 대한골프협회(KGA) 제60회 한국코오롱오픈(파71·7328야드).
지난 1958년 시작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59년의 세월을 달려온 이 대회의 코스 세팅은 한국 골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미지와 걸맞게 무척 어려웠다. 이날 최종라운드에서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는 79명 중 7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대회의 높은 난이도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남자골프를 대표하는 우승자의 향방은 끝까지 '오리무중'이었다. 선두권을 유지하던 선수들이 한 순간의 실수로 두 타를 잃고 우승권에서 멀어지는가 하면 최진호(33·현대제철)는 6타를 줄이며 3라운드 22위에서 순식간에 공동 선두까지 뛰어오르기도 했다. 순위만큼이나 선수들의 스코어카드는 들쭉날쭉했다.
결국 우승에 근접한 주인공은 막판 집중력을 살린 두 선수였다. 프로 8년차 김기환(26·볼빅)과 KGT 회원은 아니지만 원아시아투어 시드로 출전한 장이근(24)이었다. 김기환은 10번 홀(파4)까지 4타를 잃었지만 12번 홀(파4)과 17번 홀(파4), 18번 홀(파5) 버디로 부진을 만회하면서 최종합계 7언더파 277타로 연장행 티켓을 따냈다. 장이근도 16번 홀(파3)부터 18번 홀까지 세 홀 연속 버디 행진을 펼치며 연장에 합류했다.
한국코오롱오픈 연장 규정은 다소 특이하다. 연장전은 후반 3개 홀(16번-17번-18번)의 합계 성적으로 선수권자를 결정한다. 지정된 홀에서 타수가 갈리면 곧바로 우승자가 가려지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의 서든데스 규정과 다르다.
뚜껑이 열렸다. 연장 첫 홀은 233m나 되는 파3인 16번 홀이었다. 두 선수 모두 파를 기록한 가운데 승부처는 연장 두 번째 홀인 17번 홀이었다. 김기환은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렸지만 장이근은 온그린에 실패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장이근이 칩 인 버디를 성공한 반면 김기환은 스리 퍼트로 보기를 적어냈다. 사실상 승부가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이근은 18번 홀에서 보기로 더블 보기를 범한 김기환을 세 타차로 제치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축하 물 뿌리기 세례를 받은 장이근은 우정힐스CC의 2대 클럽챔피언인 부친 장오천씨와 어깨동무를 하고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도 함께 받았다.
장이근이 우승하면서 부자 골퍼의 스토리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창 때 우정힐스는 물론 은화삼, 리베라 등 국내 복수의 골프장에서 21차례나 클럽챔피언에 오른 아마추어 최강자였던 장오천씨는 8세 때부터 골프를 시작한 아들의 '스윙 코치'라고 해도 무방하다. 2014년 아들의 캐디를 하기도 했던 장오천씨는 우정힐스CC의 구석구석을 파악하고 있는 클럽챔피언답게 아들에게 안전하게 치라는 조언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골프의 내셔널타이틀을 따낸 장이근과 준우승을 차지한 김기환은 더 넓은 무대에서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다음달 중순 영국 잉글랜드 로열버그데일 골프장에서 열릴 제146회 디오픈 출전권을 획득했다. 디오픈에선 42개의 항목에 걸쳐 출전권을 부여하는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메이저 우승자 등이 이 리스트에 포함된다. 또 역사와 전통을 갖춘 내셔널타이틀 우승자에게 출전권을 준다. 일본오픈과 아르헨티나오픈에 한 명씩에게 출전권을 부여한다. 그런데 한국오픈에 두 명의 선수에게 출전권을 주는 것은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아시아의 골프 맹주로 성장한 한국에서 60년에 이르는 전통과 권위를 지닌 이 대회의 가치를 인정하고 예우한 것이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