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핫포커스] '예민한 남자' 버나디나의 KBO리그 적응기

by

"한국 음식 잘 못 먹어요. 뱃속이 약해서 금방 탈이 나거든요. 가리는 것도 많아요."

KIA 타이거즈 외국인타자 로저 버나디나가 5월 이후 반전 스토리를 쓰고 있다. 버나디나는 KIA가 모험을 위해 영입한 선수다. 발 빠르고 출루 능력 있는 외야수가 필요하다는 현장의 의견을 따라, 빅리그 출신의 버나디나를 영입했다. 이미 KBO리그에서 적응을 끝낸 브렛 필과의 재계약보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다.

빅리그 시절 화려한 외야 수비로도 주목 받았던 버나디나는 기대를 모으며 한국땅을 밟았다. 그러나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불과 몇 주 전까지 자신의 장기라던 출루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타율은 2할대 초반, 출루율은 채 3할이 안되다보니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었다. 생각보다 낯선 리그에 대한 적응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KIA 타선이 워낙 강해 버나디나가 컨디션 조절을 위해 빠져도 티가 나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에게는 자존심이 상할 법한 일이다.

그랬던 버나디나가 최근 180도 달라졌다. 최근 10경기 타율 4할(40타수 16안타) 4홈런 14타점으로 뜨거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도루는 10개에서 멈춰있지만, 타격감은 팀내에서 가장 좋다. 초반 보여주지 않던 장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27일 광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도 1번 타자로 나와 6타수 4안타 1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 1번타자로 팀의 15대7 대승을 이끌었다.

사실 버나디나는 굉장히 차분하고, 낯선 것을 가리는 스타일의 선수다. 빅리그 출신 답게 매너가 무척 좋고 진지한 자세로 훈련에 임하지만, 남미(퀴라소) 출신이라고 보기 어려울만큼 차분한 선수다. 버나디나의 한국 생활을 돕고 있는 통역과 스카우트팀 관계자들도 "그동안 봐왔던 남미 선수들과 스타일이 무척 다르다. 작년 헥터 노에시는 초반에 진지하다가 적응한 이후 활발한 본색(?)을 드러냈지만, 버나디나는 정말 차분한 스타일"이라고 했다.

최근 KBO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은 너도 나도 한국 음식을 워낙 좋아한다. 올해 새로 온 NC 다이노스의 외국인타자 재비어 스크럭스도 "매 끼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 하지만 버나디나는 한국 음식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이 많기로 유명한 광주에서도 그가 찾는 음식점은 패밀리 레스토랑, 피자집, 햄버거 가게 등 미국에서부터 익숙하게 먹었던 가게들 뿐이다. 개막 초반에 장염 증세로 경기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낯선 음식을 먹었다가 곧바로 탈이 났던 것이다. 때문에 음식을 조심히 먹는다.

그가 경기 내내 씹어 '트레이드 마크'가 된 분홍색 풍선껌도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친구들이 직접 보내주는 제품이다. 간혹 친구들이 직접 한국을 방문할 때도 한 박스씩 가져다 준다. 한국에서도 풍선껌은 구할 수 있지만 익숙한 것을 씹는다. '예민한 남자'다.

그래서 낯선 리그에 대한 적응 시간이 조금 길게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KIA 공격의 선봉을 이끄는 버나디나. KBO리그에 대한 흡수가 완전히 끝나면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