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 골프채를 잡은 김시우(22·CJ대한통운)는 경기도 안양의 신성고 2학년이던 2012년 12월 이미 골프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퀄리파잉(Q) 스쿨에 합격했다. 사상 최연소(17세5개월6일)였다. 2001년 타이 트라이언(미국)의 17세6개월1일을 한 달 정도 앞당겼다. PGA 투어에 Q스쿨이 도입된 1965년 이후 47년 만에 세운 또 하나의 금자탑이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의 도전에는 감수해야 할 몫이 있었다. 18세가 되기 전이라 투어 카드를 받지 못했다. 규정에 따라 2013년 6월 28일 이후에야 정식 활동이 가능했다. 당시 8개 PGA 투어 대회에 초청받았는데 높은 벽을 실감했다. 그야말로 빅리그의 겉핥기만 했다.
김시우는 마냥 초청에만 의지해 출전할 수 없었다. 꾸준하게 샷을 가다듬을 무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택한 곳이 PGA 2부 투어 격인 '웹닷컴 투어'였다. 지난 2년간 인내하며 버틴 결과는 달콤했다. 2015~2016시즌 마침내 PGA 투어에 본격 입성했고 지난해 8월 윈덤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일궈냈다. 최경주 양용은 배상문 노승열에 이어 PGA 투어 5번째 한국인 우승자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여세를 몰아 김시우는 페덱스컵 랭킹 18위를 기록, 톱 30에게만 주어지는 플레이오프 최종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롤모델인 최경주와 연습라운드를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 김시우의 설명이다.
2017년 5월 15일(한국시각), 김시우는 또 다시 PGA 투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마스터스, US오픈, 디 오픈, PGA 챔피언십 등 4대 메이저대회에 버금가는 '제5의 메이저대회'라고 평가받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에 입 맞췄다. 최종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3개만 추가하는 무결점 플레이로 최종합계 10언더파 278타의 스코어카드를 제출해 공동 2위 이안 폴터(잉글랜드)와 루이 우스트히즌(남아공)을 3타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특히 플레이어 챔피언십 사상 최연소(21세10개월17일)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은 2004년 애덤 스콧(호주)의 23세였다. 2011년 최경주(47·SK텔레콤)에 이어 이 대회 아시아선수 두 번째 우승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미국 출신이 아닌 선수로 22세 전에 PGA 투어 통산 2승을 차지한 선수도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외엔 김시우 뿐이다.
김시우는 이번에도 최경주에게 도움을 얻었다. 김시우는 "연습 라운드를 하면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코스 설명은 물론이고 앞서고 있을 때와 추격할 때 플레이 요령 등 경기 운영 방법도 알려주셨다.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플레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유명 선수들도 쩔쩔맸던 17번 홀(파3) 공략이었다.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의 소그래스 TPC 스타디움 코스의 17번 홀은 그린이 연못 속에 섬처럼 자리잡고 있다. 홀까지 거리는 130야드 안팎이지만 티샷이 조금만 빗나가도 공이 물에 빠지기 때문에 타수를 잃기 쉽다. 올해는 총 67개의 공이 워터 해저드를 피해가지 못했다. 2007년(93개) 이후 10년 만에 가장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김시우는 17번 홀에서 단 한 차례도 실수도 범하지 않았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김시우는 "핀이 없다고 생각하고 쳤다. 핀 위치를 염두에 두지 않고 티샷을 했더니 실수가 나오지 않더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18번 홀(파4)에서의 클럽 운영도 탁월했다. 두 번째 샷이 온 그린에 실패했고 홀까지 남은 거리는 12m였다. 웨지 또는 퍼터를 잡을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김시우가 택한 건 유틸리티 우드였다. '신의 한 수'였다. 김시우의 샷은 홀 1m 이내에 붙었고 파 퍼트에 성공해 우승을 확정지었다. 덕분에 마지막 날 유일한 무보기 플레이를 펼친 건 김시우 뿐이었다. 김시우는 대회 3라운드에서도 상식을 뛰어넘는 클럽 선택을 했다. 14번 홀(파 4)에서 티샷이 밀리며 오른쪽 러프에 빠졌다. 그린이 보이지 않았고 홀까지는 220야드 이상 남겨 놓았다. 김시우는 캐디백에서 드라이버를 꺼냈다. 그리고 페이드 샷을 구사해 온 그린에 성공한 뒤 파 세이브로 위기를 넘겼다. 수많은 갤러리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아버지의 조언도 잘 받아들인 것이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김시우는 "집게 그립으로 바꾼 건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걸 보고 아버지께서 '잘하는 선수가 하는 거라면 한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던 게 계기가 됐다. 1주 정도 연습하고 텍사스오픈에서 나가서 처음 실전에서 해봤더니 효과가 있었다. 긴장될 때 특히 효과 만점이었다. 견고하고 편했다"고 전했다.
이번 우승으로 세계랭킹 28위까지 뛰어오른 김시우의 욕심을 끝이 없다. 이젠 메이저 우승을 바라본다. 그는 "작년에 처음 우승했을 때와 다른 게 그 것이다. 이번 우승으로 메이저대회에서도 우승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메이저대회는 경험이 필요하다지만 이제 여유가 생겼으니 메이저대회 코스도 미리 가서 돌아보고 준비하면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