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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100-26] 정샘물, 대한민국 메이크업 아트의 꽃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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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7년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스물여섯번째 주인공은 대한민국에 메이크업 아트의 꽃을 피워낸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 입니다.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이한나 기자] 정샘물, 대한민국에 메이크업 아트를 꽃 피우다.

결론부터 말하면 역시 정샘물이었다. 메이크업 아트라는 장르가 생소하던 그 시절, 정샘물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집중으로 메이크업 아트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자신만의 예술혼을 담은 꽃을 피웠다. 그 꽃의 향기는 이제 그녀를 닮으려는 사람들에게까지 퍼져 많은 이들에게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정샘물의 노력은 사람들에게 트렌디한 메이크업이 무조건적인 유행 컬러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컬러와 텍스처를 찾는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최근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철학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대한민국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절로 탄생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어를 대하는 애티튜드, 깊이있는 눈빛,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는 자신감과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응집된 에너지까지. 모든 것은 그녀가 살아온 삶의 경험에서 묻어나왔다. 이유있는 그녀의 철학과 진심담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메이크업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운영도 하시고, 정샘물 뷰티 브랜드를 위해 제품개발에도 직접 참여하고 계신다고요.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겠어요.

▶ '운동할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가끔 들지만 그 외에는 모두 감사한 마음이에요.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 일을 할 때 저도 에너지를 얻거든요. 아무래도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건 역시 메이크업 관련된 일이에요. 중간 중간 촬영도 하고 강의도 하고요. 그 외에는 저도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자 며느리, 딸이기도 하니까 가족들도 챙기고 있고요. 요즘에는 멘토링을 하고 있어서 후배들 상담도 많이 하고 있어요. 다 즐거워요.

- 방송이나 인터뷰, SNS 채널에서도 그렇고 항상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 어디에 특별히 관심이 있냐고 물으면 저는 단연코 '사람' 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좋아했던 건 타고난 것 같아요. 어머니가 서양화를 전공하셨는데요. 덕분에 자연스럽게 아트북들을 보면서 자랐어요. 그 중에서도 정물화나 풍경화보다는 램브란트의 초상화같은 인물화에 더 끌렸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사람 얼굴을 그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서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메이크업을 하게 된 것은 운명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 정샘물에게 영감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 저는 사람마다의 눈동자 색. 결 등에 굉장히 강렬하게 매료돼요. 그 고유의 특성이 잘 보이고요. 일을 하다보니 메이크업으로 그 고유성을 어떻게 하면 개성으로, 아름다움으로 뽑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러니 하면서 더 즐겁죠. 또 사람에 하는 아트이기 때문에 피드백이 바로바로 오잖아요. 사람들이 스스로 거울을 보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제가 더 행복해요.

- 처음 일을 시작했던 그 때에는 지금과 같은 메이크업 아카데미도 없었을 시절이잖아요. 어떻게 메이크업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셨어요?

▶아주 어려을 때부터 저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크면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창의적으로 그려내고 컬러를 입히는 게 좋았거든요. 학창시절에는 학교에서도 미술반이었고, 동아리도 그런 쪽을 선택했었어요. 그렇게 화가의 꿈을 키우다가 입시를 준비해야될 때가 왔는데 아버지 사업이 여의치 않게 됐어요. 대학진학까지는 힘들겠더라고요. 일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처음 메이크업 브러쉬를 손에 들었어요. 그 당시 제 주변 친구들이 연극영화과에 진학을 많이 했거든요. 제가 잘하는 건 그리는 거니까 얼굴 위에 그림을 그리듯 친구들 무대 분장이나 메이크업을 자연스럽게 도와주게 됐어요. 그렇게 메이크업의 길로 들어섰죠. 예술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그 분위기 속에서 메이크업에 더 빠져들게 됐어요. 사실 어디서 배우기도 마땅치 않았고 제대로 된 아카데미도 당연히 없었죠. 화장품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클래스를 몇 번 들은 것이 다였으니까요. 오히려 그래서 더 노력할 수 있었어요. 하나씩 하나씩 직접 해보면서 시행착오도 겪었고요. 저만의 방법을 만들기 시작한거죠.

- 사실 메이크업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었을 때 잖아요. 처음엔 정말 고충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 다른 게 힘들었다기보다 저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쌓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어요. 연극영화과 친구들을 통해서 일을 시작하고 소개소개로 점점 일을 늘려나가는데 그 당시에는 저에게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소중했거든요. 그래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자 했고요. 하지만 사실 따져보면 그들에게 제가 뭐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겠어요.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지금은 사람들이 저를 좋은 인맥으로 생각해주고 또 제가 하는 말에 귀기울여 주지만 예전에는 예약을 받고 약속된 장소에 나가면 두 시간 씩 안나오고 그랬어요. 이미 연예인이 된 사람들은 더 했고요. 저하고의 약속이 중요하지 않았던거죠.

다행히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정신이 건강했던 것 같아요. 그럴 때 마다 원망이나 화가 생기기 보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저를 분석하게 되더라고요. '아! 내가 이들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면 되겠구나, 앞으로 내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된다면 이러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메모를 했어요. 제가 뭐가 부족한지, 뭘 노력해야 될지, 저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화해서 쓰기 시작했죠. 그렇게 써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단점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그렇게 스스로 '유레카!' 싶은 방법들을 계속 찾아가며 저를 바꿔나갔어요.

- 스스로를 객관화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대단하네요. '유레카'를 외쳤던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 큰 노력을 하지 않고도 내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찾는 거예요. 예를 들면 웃는거요! 웃는 건 힘든 일도 아니잖아요.(웃음) 그리고 저의 환경과 감정을 분리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지금 당장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걸 계속 고민하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빛이 어두워져요. 금세 고민에 휩싸이고 부정적인 기운이 밖으로 발산돼죠. 사람들이 그런 부정적인 기운을 가진 사람 옆에 가고 싶을까요? 아니죠. 그렇다면 어차피 내가 노력해서 환경을 바꿀 수 없거나 바뀌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니 그냥 지금의 나와 분리시키는 거예요. 그게 무엇이든지요.

그리고 가진 것에 불평하지 않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거예요, 돈 들이지 않고 바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죠. 내 자존감을 바로 세우고 '나는 10년 후 에 멋진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그렇다면 내가 어떤 애티튜드를 가져야 할까. 좋은 향기를 내뿜는 사람이 되어야지. 앞으로 내 손이 지나간 모든 곳은 빛이 나게 하리라' 라는 다짐을 하는 거예요. 그 뒤로는 제가 지나간 곳은 항상 '어? 뭔가 바뀌었는데 여기 원래 이렇게 깔끔했어?' 하게 만들었어요.

아르바이트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면 다른 친구들이 걸레질을 하면서 물 길을 만들고 지나가면 저는 그 물기를 다 없애고 윤기나게 닦고 지나가요. 사소한 일을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사소하게 끝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제 힘인거죠. 그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저를 찾게 되어 있어요. 그건 내가 만드는 나의 아우라거든요. 사람들에게 나를 매력적으로 인식시키는 것부터 노력하는거예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환영받는 사람,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노력하니까 어느새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생기더라고요.

- 역시 남다른 비법이 있었네요. 스타들이 찾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도 본인만의 차별화 전략을 쓰셨다면서요.

▶ 저는 제가 담당하는 연예인을 위한 리서치를 한 뒤 스크랩북을 만들었어요. 작업에 들어가기 전 컨셉이나 이미지를 만들 때 '우리의 경쟁 스타는 이런 스타일을 하고 있고 저런 컨셉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해보자!' 하면서 그 만을 위한 스타일을 제안했죠. 또 저는 현장에서의 옷 차림이 항상 맨투맨 티셔츠에 청바지였어요. 단정하고 깔끔하고 기동력 좋게, 후다닥 뛰어다녀도 가벼운 옷차림이요.

제가 관찰력이 좋잖아요. 다른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 디자이너들을 보니까 누가 연예인인지 모르겠더라고요. 화장도 짙고 힐도 높은 걸 신고요. 그 차림으로 어떻게 일을 편하게 하겠어요. 저는 정반대로 했어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운동화, 맨투맨에 편한 바지를 입고 방송국을 뛰어다녔죠. 그들처럼 입고 일을 했다면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제가 연예인이라면 과연 그런 사람이 좋을까요? 저 같으면 별로일 것 같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는 제가 담당하는 연예인 그 한 명을 위해 그 사람이 돋보일 수 있는 모든 것에 몰입했어요. 그렇게 했더니 업계에서 저에 대한 선호도가 달라지더라고요. 그렇게 25-26살 정도에 스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 요즘 스물 다섯 살이면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나이인데 어린 나이에 업계의 정점에 오른거네요.

▶ 모두 고등학교 때 생긴 습관 덕분이에요. 갑자기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저는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닐 시간이 없었어요. 아르바이트도 해야했고 덕분에 혼자인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어린 나이에도 '살려면 제대로 살자!' 싶었고 또 진짜 멋지게 살고 싶었기 때문에 어떻게 살고자 하는 목표가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 목표 외의 나머지 것들이 다 낭비인거죠. 시간도 돈도 아까웠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메이크업에 몰입할 수 있었어요. 내가 목표삼은 삶까지 가는 시간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줄일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어떻게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빨리 그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니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일은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아마 평범한 주부가 되었을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스스로 막 도전을 즐기거나 뛰어나게 아티스틱하거나, 혹은 천재라고는 생각은 없거든요. 다만 제가 놓였던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살기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 그런 결핍들로 인해 저를 단단히 붙잡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릴 수 있었던 거죠.

왜 그런 두려움 있잖아요. '친구가 없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그래서 보통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습관적으로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기도 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어요. 친구들과의 모든 연락을 끊어보는 거예요. 그렇게 해보면요. 정말 친한 친구 한 두명 빼고는 대부분이 정리가 돼요. 그 외의 시간에는 오롯이 저한테 집중했어요. 내가 뭐가 부족한지, 내가 뭐가 안되는지, 그렇게 바꾸고 싶은데 바꾸지 못하는 이유를 체크해 하면서 저한테 집중하는 거예요.

- 2007년, 돌연 유학을 결정하신 것도 본인에의 집중을 위한 결심이었겠어요.

▶ 맞아요. 제가 유학을 가던 시점은 정말 제 전성기의 피크였어요.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고, 정말 하루하루 미친 스케줄이었죠. 프랑스에서 배우 송혜교씨랑 화장품 광고를 촬영하고 바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넘어가서 배우 전지현씨, 가수 이효리씨와 함께 통신사 광고를 찍었어요. 일을 다 마치고 아침에 눈을 딱 떴는데 정말 못 일어나겠더라고요. 인내로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온거예요. 그래서 한국가는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딱 3일 간의 휴가를 얻었어요. 그렇게 샌프란시스코에서 휴식을 갖는데 저한테는 정말 천국이더라고요. 공기도 너무 좋고요. 하하.

무엇보다도 샌프란시스코는 아티스트의 도시예요. 파인아트가 너무 발달된 도시이고 스트리트 아트들이 정말 예술이더라고요. '어떻게 담벼락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그렸을까?' 신기할 정도였어요. 지인의 소개를 받아 AAU(Academy of Art University)교수님 부부를 만나게 됐어요. 덕분에 학교 투어도 하고 커리큘럼에 대해 듣게 됐는데 정말 배워보고 싶더라고요.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던 그 3일 동안 저는 학창시절에 꿈꿨던 파인아트에 대한 열정이 다시 꿈틀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황금같은 휴식을 갖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저희 남편이 저를 한참을 보더니 "딴 사람같아" 하는거예요. 사실 출장가기 전에 제가 새벽에 반신이 마비돼서 응급실에 실려가고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딱 3일 동안 쉬고 왔는데 갑자기 180도 바뀌어서 돌아온거죠. 남편을 보자마자 샌프란에서 있었던 일을 막 얘기하면서 눈이 반짝반짝거리고 생기있어보이니까 그게 너무 좋아보였나봐요. 제가 "기회가 되면 그 학교 가고 싶다"라고 하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그 말이 끝나자 마자 "그럼 가" 이 한 마디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지금 어떻게 가. 일도 있고 아카데미도 있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니까 남편이 오히려 저를 왜 못가냐며 설득하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온지 20일 만에 바로 유학길에 올랐어요. 그 길로 4년 반을 샌프란시스코에서 학교 다니면서 공부했죠. 제 나이 서른 여섯에 정말 꿈에 그리던 파인아트를 마음껏 배우고 그리고 경험했어요. 그리고 방학 때마다 나와서 제가 배웠던 것들을 아카데미에서 다 가르쳤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수정을 거쳐 파인아트와 메이크업 아트를 접목시킨 지금의 정샘물 뷰티 아카데미 커리큘럼을 완성했어요.

저는 후배들에 대한 각별함이 있어요. 아티스트는 한 곳에 고인 물이 되면 안되거든요. 계속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하고 말랑말랑해져 있어야 해요. 그래야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유학시절에도 방학 때 마다 제가 새로운 세상, 환경에서 경험했던 신선한 아트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노력 많이 했어요. 그 차이는 정말 크거든요.

- 쌓아왔던 명성이나 위치를 모두 뒤로하고 떠난 유학이었는데... 다시 재기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요?

▶ 전혀요. 그때도 저는 다시 고등학생때처럼 모든 연락을 다 끊었어요. 가족들, 그리고 최소한의 업무연락만을 위한 전화 말고는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떠났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4년 반 동안 떠나있는 것에 대해. 물론 공백이 있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컨디션이라는 기대는 없었어요. 분명히 그 시기를 기점으로 떠난 연예인들도 있었지만 다시 인연을 맺게 된 연예인들도 있고 또 새로 인연을 맺은 연예인들도 있는걸요. 그런 게 두려워서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지 않으면 나중에 더 후회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저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타인의 눈치를 보는 건 정말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 같아요.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 자신, 나 하고의 타협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두려워하는 건 불행해지는 길이에요. 그렇게 깨달으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물론 아직도 깨달아야 하고 해야 될 게 많지만요. 하하.

- 자신의 성장을 위한 끊임없는 채찍질이 비결이군요. 그런 원장님의 모습이 후배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뷰티 아카데미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 제 어렸을 때 모습이 보여요. 무언인가에 쫓기는 듯도 보이고 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모습도 보이고요. 하지만 정작 자기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삶이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그 시간 속에는 자존감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려요. 사실 마음 속으로는 잘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거예요. 걱정은 있지만 실천까지 가기가 어려운 거고요. 제가 조금만 이끌어 주면 곧 자기 삶에 대한 목표도 정하고 잘 따라와요. 사실 목표가 있으면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곧 잡기 마련이거든요.

아직까지 메이크업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저는 아카데미 오리엔테이션 할 때 분명히 이야기해요. 메이크업은 쉬운 일이 절대 아니고 가볍게 생각할 일도 절대 아니라고요. 만약 그런 마음가짐으로 온 사람은 빨리 마음정리하고 관두라고요.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메이크업 아트가 살아있는 대상에게 아트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은 망치면 버릴 수 있잖아요. 사람한테는 그럴 수 있나요? 아니거든요. 정리가 아주 잘 된 상태에서 메이크업해야 해요. 생김새도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분석을 통한 정보를 가지고, 잘 정리된 상태에서 해야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이 돼요. 아무 준비도 없이 손기술만을 가지고 메이크업을 한다면 그건 아티스트가 아니죠. 생활미용사죠. 그런 마음가짐을 알려주기 위해 저 스스로도 노력하고 있어요.

- 어린 정샘물에게는 없었던 멘토 역할을 직접 해주시는 거네요.

▶ 네. 제가 겪었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메이크업을 하는 기술이나 방법은 물론이고요. 삶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알려주려고 노력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티스트가 되야지!'를 외치고 살았기 때문에 제 삶에 아트가 아닌 게 없어요.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에요. 목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계속 에너지는 쓰지만 본인이 어디로 가는 지 모르게 되죠. '내 삶을 어떻게 살겠다'라는 목표는 죽는 날까지 행복하게 살려면 꼭 있어야 되는 거예요. 내 삶에 있어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지 우선 순위를 잘 나열하는 것도 삶의 질에 있어서 너무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 처음 아카데미를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계기도 그런 일련의 생각들이었을까요.

▶싸이월드가 핫하던 10여년 전 아티스트로서, 혹은 선배로서 정말 다양한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질문 하나마다 간절함이 느껴졌기 때문에 저도 답변을 잘 해주고 싶었는데 사실 양도 양이고 일일이 답변하기 정말 어려웠어요. 메이크업을 어떻게 글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만든 게 유튜브 채널이에요. 저에게는 어렸을 때 배움에 대한 결핍이 있잖아요. 결핍을 가진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외면하지 못해요.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고 끌어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죠.

저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친구들을 위한 양질의 커리큘럼을 만들고 싶었어요. 전세계 어떤 메이크업 아카데미를 가도 제가 만든 커리큘럼을 따라올 아카데미는 없을 거라고 자신해요. 해외 어떤 유명 브랜드, 유수의 아트스쿨, 글로벌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만나도 제가 가진 퍼스널 컬러 이론에 대해 놀라워하고 배우고 싶어하거든요. 그건 제가 겪은 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결핍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뜻일까요.

▶ 네. 제가 한국에서 느꼈던 결핍으로 인해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배움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고 유학생활을 하면서도 그 소중함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제가 배운 것을 헛투로 넘기지 않을 수 있었어요. 모든 배움을 농축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과 접목시켰죠. 그 때 알았어요.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결핍은 필요하구나' 라는 것을요. 그래서 아카데미를 하면서 아이들이 메이크업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저 스스로 생각하는 목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고유의 매력을 찾아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자는 거예요.

- 고유의 매력을 찾으면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겠네요.

▶그렇죠. 사람은 옷이나 그 배경 등으로 인해 달라보이지만 사실 다 벗겨놓으면 비슷하잖아요. 그럴 때 경쟁력을 가지려면 내 고유성을 알고 있어야 해요. 그게 내면일수도 있지만 외적인 것을 봤을 때는 자기만이 가진 고유의 선, 질감들이 있고요. 스스로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트렌디해 보이면서도 자기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어요. 어떤 옷을 입을 지, 어떤 컬러의 립스틱을 바를지 뭐든 그 상상의 메인소스는 자기 자신한테 있는 거예요. 연예인이나 친구가 아니고요. 선택을 하는 순간 고려대상에 나 자신이 없으면 안돼요. '그 아이템을 입었을 때 나만의 아우라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가?'가 가장 중요하죠.



- 항상 강조하시는 고유의 컬러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잖아요. 어떻게 고안하게 되신거예요?

▶ 학부 때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다보니 흰 색을 많이 섞느냐, 어두운 밸류를 가진 컬러를 많이 섞느냐에 따라 그 비율만 다를 뿐이지 사람을 표현하는 데에 크게 7가지 색깔이면 다 그려지더라고요. 거기서 흑인, 백인, 황인까지 인종별로 어떤 컬러군을 가지는지 통계도 바로 나오게 됐고요. 스킨 보드를 가지고 컬러 띠를 만들어보니 답이 나왔죠. 눈동자 색을 가만히 보면 그냥 검정색이 아니예요. 밝고 어두운 차이부터 베이스 컬러도 다 다르죠. 동양인은 크게 세 가지 눈동자 컬러군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빨간색 + 녹색 = 다크 브라운 / 주황색 + 파란색 = 오렌지 브라운 / 노란색 + 보라색 = 옐로우 브라운 까지요. 그 눈동자 색을 이루는 기본 컬러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컬러예요!

예를 들어 저는 레드립을 바르면 되게 화사해보이거든요. 그건 제 눈동자 색이 빨간색과 녹색을 섞은 다크 브라운이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오렌지나 핑크 컬러의 립스틱을 바르면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워보이고 안 어울리는 것을 보면 더 크게 와닿죠.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빛깔이 있기 때문에 그 색을 바르면 잘 어울려보이는거예요. 립스틱, 헤어컬러, 패션아이템 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색을 알면 실패할 확률이 적어지죠.

저는 직업이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보니 어렸을 때는 헤어 염색을 하면서 다양한 컬러들도 많이 시도해봤거든요. 그런데 어떤 컬러는 정말 안 어울리는거예요. 그러면 정말 자존감이 없어져요. 거울 볼 때마다 '안어울려. 못생겼어' 싶고요. 그런데 제가 가진 색을 찾은 후 부터는 그럴 일이 없어요.

전처럼 마냥 연예인처럼 예쁜 걸 원하지 않게 돼요. 나 다운 아름다움을 찾게 되는 거예요. 내가 가진 컬러를 찾아 매칭하면 은연중에 나만의 시그너처가 있어보이고. 옷 하나를 입어도 되게 센스있고 감각있어보이죠. 자기 고유의 색을 알 때와 모를 때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 그런 차이는 어렸을 때부터 알게 된다면 좋겠어요.

▶ 그래서 얼마전 EBS 교육방송 '교육대토론' 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이 얘기를 했어요. 아이들이 자기의 고유성에 대해 알고 자신을 꾸미는 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것과 모르고 시작하는 것은 되게 큰 차이를 가지고 오거든요. 요즘에는 초등학생들이 이미 화장품을 다 사서 메이크업을 해요. 더 큰 문제는 어른들이 화장품을 못쓰게 하니까 애들이 더 하고 싶은 마음에 볼펜 사인펜가지고 아이라인을 그린다는 거예요. 몸이 상하는거죠.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패널로 나가게 된거예요. 요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였어요. 그래서 저는 고유성에 대한 얘기를 했어요.

아이들이 메이크업 제품을 사서 바르는 문제를 떠나 적어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알게 해야된다는 게 핵심이에요. 어른들도 20-30년 간 매일 아침 거울로 내 얼굴을 보지만 자기 고유의 색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제 딸이 올해 5살인데 그렇게 제 화장품을 바르고 싶어해요.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어릴 때에도 똑같거든요. 그렇다면 유치원에서부터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우리가 가진 눈동자 색, 특징들을 알려주고 각각의 고유성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어떨까요. 유치원 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갈 때까지 지속적, 단계적으로 교육하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자존감을 형성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 단순히 예쁜 메이크업을 그리거나 한 두 시즌의 메이크업 트렌드를 만드는 일이 아닌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군요. 멋지네요.

▶ 저와 같은 뜻을 가진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업계 최고의 뷰티 디렉터랑 웹툰 작가, 심리학과 교수 등등 이 커리큘럼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랑 뜻을 모으는 중이고요. 앞으로도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거예요.

사진 이새 기자 06sejong@sportschosun.comhale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