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배우 이상윤의 영리한 배신이 오히려 시청자를 기쁘게 하고 있다.
이상윤은 대한민국 대표 '엄친아 배우'였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출신의 엘리트인데다 큰 키와 훤칠한 외모까지 겸비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우나 고우나' '인생은 아름다워' '내 딸 서영이' 등 출연작에서도 다정다감하고 순수한 훈남, 혹은 엄친아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터라 멜로 이미지는 점점 굳어져갔다. 그런 그가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던 건 지난해 방송된 '공항가는 길' 부터다. 정통 멜로라고는 하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본능적인 끌림 사이에서 갈등하는 서도우 캐릭터를 맡아 조금은 색이 다른 멜로를 선보였다.
그렇게 '멜로킹'으로 자리매김 했지만 배우에게 있어 비슷한 이미지로만 소구된다는 것은 큰 핸디캡이다. 이상윤 또한 그 부분은 가장 잘 알고 있었을 터다. 그런 면에서 SBS 월화극 '귓속말'은 변화에 대한 이상윤의 갈증과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상윤은 극중 이동준 역을 맡았다. 이 이동준 캐릭터는 무척 흥미롭다. 남자 주인공 롤이라고 해도 이동준은 전형적인 정의의 사도는 아니다. '신념의 판사'라는 극찬 속에 승승장구 했지만 결국 자신의 안위를 위해 신영주(이보영)를 배신하고 거대 악과 손 잡았다. 생존과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고, 신영주와 로펌 태백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던 탓에 초반에만 해도 '극한 체험'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윤은 시청자의 예단 또한 멋지게 뒤엎었다. 갈등과 고뇌를 거듭하며 마음을 다잡아 나가는 캐릭터는 이제까지 봐왔던 히어로적 남자 주인공이 아닌, 극한 현실주의 캐릭터라 더욱 신뢰가 간다. 신념을 바로 세우기로 결정하고 강정일(권율)을 비롯한 태백 일가와 치열한 권력 싸움을 벌이는 그의 모습에서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진한 남자의 카리스마가 묻어 나온다. 우유부단하게 신영주의 조력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초반 전개와 달리 신영주를 지키고 정의를 구현하는, 치밀하고 냉철한 승부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
하지만 이상윤은 시청자가 자신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배우다. 그래서 멜로도 놓치지 않았다. 처절하게 자신에게 매달렸다 배신당한 신영주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표독스러울 정도로 변하지도 못한 채 좌절하는 신영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느끼고 인간적인 연민에 마음을 돌리는 과정을 풀어내며 거친 멜로의 진수를 선보인다. 아무런 개연성 없이 남녀 주인공이 한눈에 빠져드는 격정 멜로가 아니라 원수에서 동지로, 동지에서 연인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능청스러울 정도로 시원시원하게 그려나가며 자타공인 '멜로킹'의 내공을 발휘한다. 그래서 시청자는 잠깐의 스킨십에도 정통 멜로보다 더한 설렘을 느끼고, 두 사람의 협업과 복수를 응원하게 된다.
이처럼 자신의 최강점을 살리면서도 시청자가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미지를 틀어버린 이상윤의 영리한 배신은 그래서 더 반갑고 기특하다. 앞으로 '귓속말'은 신영주-이동준과 태백 일가의 치열한 권려 싸움,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달린다. 이 과정에서 이상윤이 또 어떤 기분 좋은 뒤통수를 선사할지 기대가 쏠린다.
'귓속말'은 매주 월,화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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