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14, '로켓맨'이 질주합니다. 정말 빠릅니다."
18일 오후 3시 강릉하키센터에서 펼쳐진 강릉세계장애인아이스하키선수권 A그룹 한국-이탈리아전, 옆자리의 외국 중계진은 경기 내내 14번 정승환(31·강원도청)의 이름 대신 '로켓맨'이라는 별명을 불렀다.
대한민국 장애인아이스하키의 아이콘, 정승환은 '별명부자'다. 국내에선 '빙판위의 메시', 일명 '빙메'라고 불린다. 1m67의 키에 퍽을 요리조리 몰고 다니는 테크닉이 메시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다. 빠르다는 뜻의 '스피디'라는 별명도 있다. '로켓맨'은 키스 블레이스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STC 위원장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했다. 지옥의 쿠퍼 테스트를 누구보다 빨리, 누구보다 오래, 악바리처럼 버텨내는 정승환의 모습을 본 후 붙여준 애칭이다.
어떤 별명이 가장 맘에 드냐는 질문에 정승환이 웃음을 터뜨렸다. "'빙메'만 빼고 다 괜찮아요. 하도 놀림을 받아서… 하하" 하더니 "그래도 관심의 표시니까, 다 감사하죠" 한다.
정승환은 장애인아이스하키에서 월드클래스 스타다. 2009년, 2012년, 2015년 세계선수권에서 3차례나 '최우수 공격수'로 선정됐다. 2014년 소치패럴림픽 때는 국제 패럴림픽위원회(IPC) 선정 '주목할 스타 20인'에 이름을 올렸다.
원래 스포츠에 좋아하거나, 잘하지 않았을까. "저는 섬 출신이라서요. 아이스하키를 하기전엔 한번도 스포츠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한다. '반전'있는 선수다. 1986년 전남 신안군의 작은섬 도초도에서 태어났다. 5살 때 집앞 공사장에서 파이프에 깔리는 사고로 오른쪽 무릎을 잃었다. 2005년 대학 진학과 함께 '동기' 이종경, 장종호의 권유로 시작한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푹 빠졌다.
스틱 2개를 든 채 빙판 위를 빛의 속도로 내달린다. 순발력을 타고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역시 고개를 저었다. "몸이 왜소하다 보니 몸싸움에서는 밀린다. 남들보다 한발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팀이 도움이 된다. 한발 더, 한발 먼저, 움직이려고 이를 악물고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며 웃는다.
한국은 이날 라이벌 이탈리아와의 5차전에서 슛아웃 접전 끝에 2대3으로패했다. 아쉽게 패했지만 3-4위전행은 확정했다. 한국(세계랭킹 7위)은 5차전까지 이탈리아와 나란히 3승2무를 기록했지만 승점에서 앞서며 3위를 유지했다. A그룹 7개국(러시아 불참) 가운데 5위 안에 들며 평창패럴림픽에 자력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세계선수권 A그룹에서 5위까지 자동 진출권을 얻는다. 한국은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올림픽 당시 B그룹에서 힘겨운 최종예선을 거쳐 출전권을 따냈었다. 한국은 2015년 세계선수권 B그룹에서 5전승하며 A그룹으로 승격했다.
이번 대회 정승환은 5골3도움을 기록했다. 한국이 기록한 12골 가운데 무려 8골에 관여하며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한국의 평창패럴림픽 직행을 이끌었다. "저는 골보다 어시스트가 좋아요. 더 많은 도움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웃었다.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의 저변은 대단히 열악하다. 실업팀은 전국에 강원도청 하나뿐이다. 1개의 실업팀과 9개의 동호인 팀, 변변한 스파링 파트너도 없이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2012년 세계선수권 은메달, 올해 세계선수권 3-4위전 진출은 기적이다. 정승환은 "실업팀이 1개만 더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서로 경쟁하고 경기도 자주 할 수 있다면 일찌감치 B그룹을 탈출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이번 대회 기적의 이유는 "간절함"이라고 했다. "평창에서 꿈을 이루자는 간절함으로 매경기를 뛰었다" 내년 평창에서의 목표는 확실했다 "평창에서 꼭 결승에 진출하고 싶다. 아이스하키를 하면서 미국, 캐나다를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꼭 한번 이겨보고 싶다. 얼음판에서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내달릴 것"이라고 했다. 평창=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