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샤인' 손흥민(25·토트넘)의 장단점은 명확했다. 장점은 스피드와 슈팅이다. 속도가 붙은 손흥민은 유럽 톱클래스의 공격수다. 공간까지 주어진다면 누구도 제어하기 어렵다. 이처럼 폭발적인 스피드만으로도 위력적인데 슈팅까지 좋다. 오른발, 왼발 가리지 않고 때리는 손흥민의 슈팅은 정확도와 파워를 겸비했다. 반면 오프더볼(볼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움직임)과 연계력(패스 등)은 다소 떨어졌다. 공간이 좁으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실 손흥민은 볼터치가 A급으로 좋은 선수는 아니다. 2선 공격수가 안쪽으로 좁히는 토트넘식 3-4-2-1 포메이션에서 손흥민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이유다.
손흥민이 달라졌다. 아니 '진화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했다. 최근 4경기 연속골, 범위를 넓혀 6경기에서 8골을 넣은 손흥민의 가공할 득점력은 진화의 산물이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볼을 받을 때의 움직임이다. 단순히 오프더볼이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더 집중해서 봐야할 것은 볼을 받기 전, 손흥민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손흥민은 돌파력은 좋지만 드리블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스피드가 붙으면 속도로 상대를 제칠 수 있지만, 볼이 멈춰져 있는 상황에서 수비수를 상대할만큼 발기술이 좋지는 않다. 손흥민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비난받던 시절, 손흥민은 서서 볼을 받았다.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공간은 좁고, 상대는 압박해오니 손흥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뒤로 내주는 것 뿐이었다.
손흥민이 찾은 해법은 스스로 '기어'를 올리는 일이었다. 토트넘과 대결하는 대부분의 상대는 밀집수비를 편다. 달릴 공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조금의 공간이라도 활용할 여지가 필요했다. 볼을 받기 전 과감한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 속도를 높였다. 속도가 붙다보니 볼을 받는 위치도 더 모험적으로 변했다.
'전설' 차범근과 어깨를 나란히 한 15일(이하 한국시각) 본머스전 골이 좋은 예다. 손흥민은 해리 케인의 패스를 받기 전부터 속도를 끌어올려 전진했다. 손흥민은 수비수 한참 뒤에서부터 뛰어들었지만 가속을 앞세워 가볍게 수비수를 제쳤다.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던 8일 왓포드전 골도 그랬다. 손흥민은 중앙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과거 같으면 리턴을 내주고 어느 위치로 뛰어들어갈지 갈팡질팡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흥민은 두차례 가벼운 움직임을 통해 기어를 높였고, 슈팅을 때릴 공간을 확보했다. 마무리는 당연히 골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전술 이해도다. 아시아 최초로 '이달의 선수상'을 받은 지난해 9월, 그때는 손흥민의 원맨쇼가 빛났다. 최상의 몸상태를 앞세워 날카로운 돌파를 통해 골을 넣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동료들과 함께 만든 골이다. 손흥민은 토트넘의 볼이 흐르고 있는 과정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갔다. 동료들이 가장 위협적인 모습으로, 위협적인 위치에 있는 공격수를 활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전술 장인'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의 영향을 받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굉장히 전술적인 감독이다. 포체티노식 축구에 완벽히 적응했다는 것, 전술적 이해도가 업그레이드 됐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같은 변화의 시작은 해리 케인이 다치고 원톱으로 서면서부터다. 지금 손흥민은 윙어로 뛰고 있지만, 실상 그의 데뷔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청소년 대표 시절에도, 함부르크에서 데뷔했을 때도 손흥민은 원톱, 혹은 투톱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손흥민은 미드필드진의 움직임을 모두 볼 수 있는 최전방에서 움직임에 대한 힌트를 찾았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측면으로 이동한 뒤에도 응용하고 있다. 손흥민의 주 위치는 왼쪽이지만 중앙,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함부르크 시절 손흥민은 폭발적인 '스트라이커'였다. 레버쿠젠 시절 손흥민은 폭발적인 '윙어'였다. 하지만 기복이 심하고, 팀과 녹아들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다. 지금 손흥민은 폭발력에 전술적 영민함까지 갖춘 '완성형 공격수'에 다가가고 있다. 지금의 기세라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 톱10 진입도 무난할 전망이다. 첼시, 아스널, 맨유전 등이 남아있지만, 손흥민은 지금 리그에서 가장 기세가 좋은 토트넘의 '핵심 공격수'다.
손흥민은 부진한 시절에도 파리생제르맹,인터밀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비야 등의 러브콜을 받았을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 가능성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과연 손흥민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지금까지 우리 기대를 뛰어넘는 모습으로 변해온 만큼, 그의 미래도 우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장밋빛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손흥민의 나이, 이제 25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손흥민 2016~2017시즌 골 일지
골순서=일자(현지시각)=대회=상대=장소=경기 스코어=토트넘 승패
1호골=2016년 9월 10일=EPL=스토크시티=bet365스타디움=4대0=승리
2호골=2016년 9월 10일=EPL=스토크시티=bet365스타디움=4대0=승리
3호골=2016년 9월 24일=EPL=미들즈브러=리버사이드스타디움=2대1=승리
4호골=2016년 9월 24일=EPL=미들즈브러=리버사이드스타디움=2대1=승리
5호골=2016년 9월 27일=UCL=CSKA모스크바=힘키아레나=1대0=승리
6호골=2016년 12월 3일=EPL=스완지시티=화이트하트레인=5대0=승리
7호골=2016년 12월 28일=EPL=사우스햄턴=세인트메리스=4대1=승리
8호골=2017년 1월 8일=FA컵=애스턴빌라=화이트하트레인=2대0=승리
9호골=2017년 1월 21일=EPL=맨시티=에티하드스트디움=2대2=무승부
10호골=2017년 1월 28일=FA컵=위컴비=화이트하트레인=4대3=승리
11호골=2017년 1월 28일=FA컵=위컴비=화이트하트레인=4대3=승리
12호골=2017년 3월 12일=FA컵=밀월=화이트하트레인=6대0=승리
13호골=2017년 3월 12일=FA컵=밀월=화이트하트레인=6대0=승리
14호골=2017년 3월 12일=FA컵=밀월=화이트하트레인=6대0=승리
15호골=2017년 4월 1일=EPL=번리=터프무어=2대0=승리
16호골=2017년 4월 5일=EPL=스완지시티=리버티스타디움=3대1=승리
17호골=2017년 4월 8일=EPL=왓포드=화이트하트레인=4대0=승리
18호골=2017년 4월 8일=EPL=왓포드=화이트하트레인=4대0=승리
19호골=2017년 4월 15일=EPL=본머스=화이트하트레인=4대0=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