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이종현기자] 젠틀몬스터의 만화방을 만든 두 사람을 만났다.
만화는 예술일까. 엄숙한 홀에서 관람하는 클래식 음악, 어두운 조명아래서 왠지 뒷짐을 지고 봐야할 것 같은 미술전시회에 비교한다면 라면과 푹신한 쇼파가 어울리는 만화책은 예술로 치기엔 뭔가 부족한 듯 하다.
하지만 무려 40여년 전 이미 만화는 예술의 반열에 올랐다. 1960년대 일본과 프랑스에서 만화를 단순 오락거리가 아닌 예술로서 격상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어 1970년대 프랑스의 평론가 프랑시스 라까생이 '제9의 예술 만화'라는 저서를 발표하면서 만화는 연극, 회화, 무용 등과 같이 예술의 지위를 얻었다.
이런 만화의 예술적 지위를 알리기 위해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만화방을 열었다. 일상적인 컨텐츠를 재해석하는 젠틀몬스터의 BAT 프로젝트 두번째 주제로 만화책을 선정해 신사동 쇼룸을 만화방으로 꾸민 것. 빨간 창문이 돋보이는 젠틀몬스터의 만화방은 입장료 만원을 내면 2,000여권의 엄선된 만화책을 시간제한 없이 즐길 수 있다.
만화가 예술이라니, 안경 브랜드가 만화방 이라니. 이색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독특한 즐거움을 주고 있는 젠틀몬스터. BAT 프로젝트를 진행한 젠틀몬스터의 비주얼 디렉터 하예진, 프로젝트 매니저 김지현을 만나보았다.
- BAT 프로젝트, 무슨 뜻 인가요?
▶ 하예진(이하 하): 그냥 꽃힌 단어예요. 큰 뜻은 없고요(하하). 원래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퀀텀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다른 주제의 아트를 선보이는 프로젝트였죠. 그런데 스토어인 만큼 전시된 제품때문에 제약이 많아서 아예 BAT라는 키워드로 신사동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어요.
- 전시만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들고 싶었던 거군요.
▶ 하: 퀀텀 프로젝트는 아트라는 주제에 국한된 프로젝트였어요. 그래서 BAT는 공간과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일상적인 컨텐츠를 재해석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연령대와 소비층이 홍대와는 다른 신사동을 선택한 거죠.
- 첫 번째 주제 '커피 인 더 팜'도 상당히 새롭네요.
▶ 김지현(이하 김): '커피 인 더 팜'은 쇼룸 2층에 옥수수 식물을 심었었어요. 신사동 자체가 흙을 밟을 기회가 없으니까 바위, 흙 같은 자연적인 요소들을 배치해서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접근하고 쉴 수 있게 만들어줄려고 진행했었죠.
- 프로젝트가 바뀌는 정해진 기간이 있는 건가요?
▶ 하: 원래는 3개월 단위로 프로젝트를 바꾸려고 했어요. 그런데 기간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충분히 준비되고, 보여줄 수 있을 때 보여드리고 싶어서 지금은 랜덤하게 운영을하고 있어요.
- 안경 브랜드인 젠틀몬스터가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는 뭔가요?
▶ 김: 패션 브랜드들은 패션 쇼를 통해 제품 뿐만 아니라 어떤 가치나 메세지, 감성을 전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젠틀몬스터는 안경 브랜드기 때문에 그런 채널이 없잖아요. 단순히 소비자들에게 '젠틀몬스터 제품을 사세요!
라는 딱딱한 이미지 말고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것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되었어요.
- 젠틀몬스터가 전달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 하: 소비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브랜드가 되야한다고 생각해요. 즉 남들이 따라할 수 없고, 항상 변화한다는 가치를 보여주고 싶은 거죠. 그래서 모든 매장, 매번 모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요. 예를 들어 대구 쇼룸은 세탁소, 계동은 목욕탕, 이번 리뉴얼한 신사동 쇼룸은 엔트로피라는 키워드로 만들었어요. 저희만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과 컨셉을 진행하고 있어요.
- 매번 새로운 컨셉은 어떻게 선정되나요.
▶ 하: 정말 툭 던진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대표님이 거기에 의외성을 더해주시죠. 대표님이 다방면에 관심이 많으셔서 어떤 주제로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툭툭 영감을 던져주세요. 저희 공간에 이색적인 요소들이 많은데 대표님들이 가져오는 의외성 때문에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반적인 기준과 다르다르면서도 멋있다고 느껴질만한 의외성을 더하는거죠.
- 이번 만화책 이라는 컨셉도 그렇게 결정된 건가요?
▶ 하: 신사, 홍대 등 어디에나 만화책방이 있잖아요. 그 누구나 라면을 먹으면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컨텐츠인거죠. 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지만 만화책이라는 장르도 영화나 소설처럼 아트의 한 장르라고 생각했어요. 공간이나 소비되는 가격때문에 그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 문화를 고급스럽게, 하이엔드로 연출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거에요.
- 수 많은 아이디어 중 그래도 나름대로 컨텐츠에 대한 기준은 필요할 것 같은데요.
▶ 김: 기준이 있다면 '우리가 진짜 좋아하는게 뭐냐'에요. 보통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는 '소비자들이 뭘 좋아할까'를 예상하는데 저흰 다르죠. 우리가 진짜 좋아하는걸 내놓으면 소비자들도 좋아할 거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역시 생산자이지만 소비자이기도 하니깐요. 그래서 만화책을 좋아하는 기획자들이 있었고, 하다보니까 쇼룸을 내게까지 된거죠.
- 아이디어 회의 중 가장 어이없었던 적은?
▶ 하:새로 오픈한 신사 쇼룸이야긴데요, 회의 중 소재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 전혀 새로운 소재로 벽, 바닥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엔트로피라는 주제였는데 멸치나 은갈치의 예쁜 은색을 담아보면 어떨까라는 의견이 있었어요. 근데 대표님이 실제 멸치를 바닥에 깔아보자고 했죠. 말이 안된다고는 했는데 도전은 했죠. 50마리를 모아서 압축도 해보고, 코팅도 해보고, 하지만 냄새도 많이나고 현실성이 없어서 결국 포기했어요(하하).
- 만화책들은 어떻게 선별했나요.
▶ 김: 기획을 할 때 되게 명확한 기준이나 룰이 없어요. 항상 느낌대로 다 펼쳐놓고 분류하면서 진행을 해요. 만화책을 좋아하는 다른 부서의 인력들도 다들 모여서 회의를 하고, 회사에 우리도 몰랐던 좋은 '오타쿠'가 많더라고요(하하). 각자 좋아하는 리스트를 적다보니 어느 정도 분류가 되더라고요.항상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작품도 있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클래식으로 누구든 볼만한 작품들, 그 후엔 대중적인 작품., 그리고 아티스틱한 작품과 그래픽노블, 작가주의 작품들을 모았어요.
- 프로젝트를 진행자로서 추천해 줄 만한 작품이 있다면?
▶ 김: 파퓰러(대중만화) 카테고리에서 '닥터 노구치'라는 작품이있어요. 사실 프로젝트 진행할 때 내부에서도 만화책방 하지말자라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 때 반대하는 쪽을 설득할 때 보여준 작품이 '닥터 노구찌'에요. 물론 작품으로서 깊이있는 고전이기도 하고요.
- 프로젝트에 대한 만족감도 궁금한데요.
▶ 김: 정말 만족해가고 있어요. 계속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니까 경험치가 쌓이는 것 같아요. 저희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스스로도 재밌게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는 관람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재밌는 감정이 전달되는 것 같아요. 정말 신기하죠. 반대로 말로는 멋있는데 정작 소비자들에겐 잘 전달이 안될때도 있고요. 그런 맥락에서 감정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회의하다가 중간에 '너네 재밌어?' 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과반수 이상이 즐거우면 진행하고, 아니면 확 엎기도하고요. 그런게 소비자, 관객의 마음과 똑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 앞으로 보여줄 BAT 프로젝트의 방향, 비전은 무엇인가요?
▶ 김: '설레게 해라'죠. 예전엔 고객을 설레게하는 거였는데 지금은 우리가 설레야 고객도 설렌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굳이 BAT프로젝트와 일반 쇼룸을 구분하자면 BAT 프로젝트는 컨텐츠적인 실험을, 쇼룸은 공간에 대한 실험을 계속 보여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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