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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준의 발롱도르]손흥민의 리그 두자릿수 득점, 월드클래스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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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두자릿수 득점과 리그 두자릿수 득점은 엄연히 다르다.

시즌 득점은 각급 대회에서 기록한 골 수를 모두 더한 기록이다. 컵대회, FA컵, 유럽 클럽 대항전이 포함된 숫자다. 유럽에서 컵대회, FA컵 득점수는 그렇게 공식력 있는 지표가 아니다. 하부리그 팀들과의 대결에서 소나기골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컵대회, FA컵에서 공식 득점왕을 뽑지 않는 이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순위 경쟁을 두고 매 라운드 치열한 다툼을 펼쳐지는 리그다. 리그에서 두자릿수 득점은 리그 수준을 막론하고 일단 특급 공격수의 첫번째 기준이다.

손흥민은 바로 이 커트라인에 들어섰다. 손흥민은 8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화이트하트레인에서 열린 왓포드의 2016~2017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32라운드에서 멀티골을 터뜨렸다. 초반부터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준 손흥민이 전반 44분 환상적인 왼발 슈팅으로 왓포드 골망을 흔들었다. 코너 플래그쪽으로 뛰어가던 손흥민은 곧바로 손가락 10개를 펼쳤다. 리그 10호골. 그 어떤 아시아인도 점령하지 못한 EPL 두자릿수 득점이었다. 손흥민은 후반 10분에도 멋진 발리골을 성공시키며 11호골 고지에 올라섰다.

기록을 분석해보면 손흥민의 리그 두자릿수 득점은 더욱 특별하다. 손흥민은 현재 EPL 득점순위 12위에 올라있다. 이 중 주전이 아닌 선수는 손흥민이 유일하다. 출전시간에 그대로 들어난다. 손흥민은 올 시즌 리그에서 1523분을 뛰었다. 상위 득점랭커 중 2000분 미만을 뛴 선수는 19골로 득점 2위에 오른 해리 케인(토트넘·1928분) 뿐이다. 감각이 중요한 공격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한 출전이다. 부진을 거듭하는 공격수에게 믿음을 주는 이유가 바로 '한방' 때문이다. 하지만 손흥민은 선발과 교체를 오가는 속에서도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순도도 높다. 손흥민이 올 시즌 기록한 11골 중 페널티킥으로 넣은 골은 한 골도 없다. 전부 필드골이다. 오른발로 6골, 왼발로 5골을 넣었다. 손흥민 보다 상위 랭커 중 페널티킥 득점이 없는 선수는 '득점 선두' 로멜루 루카쿠(에버턴)와 사디오 마네(리버풀) 밖에 없다.

무엇보다 손흥민의 득점기록이 인상적인 것은 그의 포지션이다. 손흥민은 중앙에서도 뛸 수 있지만, 그의 주 포지션은 측면이다. EPL 득점왕 레이스에서 손흥민보다 높은 순위에 있는 선수들 중 윙어는 단 세명이다. 이도 올 시즌 대부분의 경기를 원톱에서 뛰고 있는 알렉시스 산체스(아스널·18골)를 포함시킨 수치다. 에당 아자르(첼시)가 14골, 사디오 마네(리버풀)가 13골을 넣었다. 2선 공격수로 전체로 범위를 높여도 델레 알리(토트넘·16골)만이 더해질 뿐이다.

측면 공격수가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두자릿수 득점에 성공한 윙어는 안드레이 크라마리(호펜하임·12골), 세르쥬 나브리(브레멘·10골) 둘 뿐이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도 측면과 중앙을 오가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27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19골) 두 '신계 공격수'를 비록해 파블로 피아티(에스파뇰·10골) 단 3명에 불과하다.

선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희소성이다. 메시와 호날두로 촉발된 '가짜 7번' 전술은 여전히 현대축구의 핵심 트렌드 중 하나다. 이 전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득점력을 갖춘 측면 공격수의 존재가 필수다. 손흥민이 부진한 가운데서도 파리생제르맹, 인터밀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비야 등의 러브콜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흥민의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손흥민은 이번 두자릿수 득점으로 그 가능성을 현실로 바꿨다.

런던 이브닝스탠다드에서 평가했듯이 아직 손흥민은 쉬운 찬스를 자주 놓치고, 기복도 있다. 하지만 그 약점을 빠르게 고쳐가고 있다. 전술적으로 더 영민해지고 있으며, 신체적으로는 더 단단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데뷔때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던 폭발력은 여전히 그대로다. 최근 경기에서 보듯 조금의 공간만 주어지면 그 어떤 선수보다 위협적인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조금씩 월드클래스에 다가서고 있다. 이번 두자릿수 득점이 그 지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